▲시인 신현옥 첫 동시집 <콸콸>이 동시집은 어른 마음으로 아이들 마음을 다룬 그런 어른을 위한 동시가 아니다.
제3세대
"바람 부는 날 / 도시 한 복판 / 빌딩은 높다 / 쳐다보면 어지럽다 // 유리 닦는 아저씨들 / 밧줄에 매달려 / 유리를 닦는다 // 바라보고 있으면 / 가슴이 두근두근 // 이럴 때는 빌딩을 / 살그머니 땅위에 / 눕힐 수는 없을까 // 유리 닦는 아저씨들 / 무섭지 않게 / 유리창을 닦고 나서 / 제자리에 다시 / 세울 수는 없을까" -40쪽, '빌딩을 눕혔다가' 몇 토막신현옥 시인이 쓰는 동시는 티 한 점 없이 맑고 참 깨끗하다. 그는 너무 높아 어지러운 빌딩에서 밧줄 하나에 몸을 맡긴 채 유리창을 닦는 아저씨가 못 견디게 안쓰럽다. 오죽했으면 빌딩을 땅 위에 눕히면 좋겠다고 생각하겠는가. 이러한 동시는 결코 '어른 눈'으로 바라보고, '어른 마음'에 비추면 나올 수 없다.
문학평론가 김종철이 콕 찌른 것처럼 '어른이 아이로 돌아가서' 또는 '아이가 어른이 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동시가 나올 수 있겠는가. "키가 작아져야 되요 / 머리만 남아야 되요 / 아프게 맞아야 되요 / 그래도 언제나 / 꼿꼿해야 해요"(못)라거나 "눈 먼 장애인이 / 식당에 왔다... 점자 차림표가 식당에 없다"(김치찌개 주세요) 등도 마찬가지다.
시인 신현옥이 쓰는 동시가 봄볕처럼 따스하고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삼라만상을 티 없이 맑은 아이들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고 담는다는 것이다. "푸른 바다 오래도록 / 바라본 날은 / 내 마음도 파란 바다가 되고"(가슴에 담는 날), "붕어가 붕어빵을 보게 된다면 / 붕어는 뜨거운 불이 무섭고 / 붕어는 붕어빵이 무서울 거다"(붕어와 붕어빵) 등도 그러하다.
그 쑥부쟁이가 곧 시요, 그 시가 곧 쑥부쟁이다 들국화야산길에 피어있는보랏빛 들국화야누가 너를 여기에꽃피게 했니?너를 보면 나는시를 쓰고 싶단다-76쪽, '아기 들국화' 몇 토막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는 '아기 들국화'는 쑥부쟁이다. 시인은 보랏빛 꿈처럼 피어나는 쑥부쟁이를 바라보며 시를 떠올린다. "산길에 피어있는 / 보랏빛 들국화", 그 쑥부쟁이가 곧 시요, 시가 곧 쑥부쟁이다. 그 때문에 "말고 높은 네 향기"를 맡을 수 있고, 그 향기를 "가슴에 담아 / 너처럼 고운 시"를 쓰고 싶은 것이다.
"엄마 꾸중 듣고 / 밖으로 나와 / 전봇대 아래 혼자 섰는데 / 누가 따라와 / 곁에 서 있다"(그림자)에서는 제 그림자를 바라보며, 그 그림자가 "쓸쓸한 내 마음"을 엿보고 있다고 여긴다. 이 시에서 그 그림자는 곧 꾸중 듣고 전봇대 아래 혼자 서 있는 아이 마음이기도 하고, 그 아이 쓸쓸한 마음을 다시 토닥이는 엄마이기도 하다.
'복숭아'란 동시에서는 '군중 속의 고독'을 떠올리게 한다. "더운 여름날 / 할아버지 제삿날"에 제사상 위에는 여러 과일들이 아이들 친구처럼 사이좋게 올려져 있다. 근데, "틀니를 끼셨던 할아버지가 / 살아계실 때 / 좋아하시던" 여름철 과일인 봉숭아는 없다. "복숭아를 제사상에 올리면 / 저 세상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오시지 못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이 동시가 여기서 그냥 끝을 맺었다면 "동시 비슷한 동시"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시인은 제사상에 올라가지 못하는 복숭아를 통해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남은 아이를 떠올린다. "복숭아도 / 제사상에 / 올려지고 싶겠지 // 복숭아 저 혼자 / 섭섭하겠다"라며, 아이들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넌지시 일깨운다.
아이들 마음에 그리는 수채화, 아름다운 세상에 쓰는 아이들 시"자고 나니 하늘에서 흰 눈이 내려 / 온 마당에 하얗게 쌓인다 / 북쪽에도 오늘 아침 눈이 내릴까 / 산과 들에 쌓이는 하얀 이 눈이 / 모두모두 하얀 쌀들이라면 / 먹을 것이 없다는 북녘 땅에도 / 배고픈 동무들이 배부르겠지!" - 73쪽, '첫눈' 모두 문학평론가 김종철(전 연합뉴스 사장)은 '해설'에서 "인간의 가장 두드러진 미덕은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것"이라고 말문을 연다. 그는 "신현옥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본다"라며 "생명의 근원을 탐색하는 발상도 흥미롭다. 신현옥의 시편들은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짙은 문학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할 것"이라고 적었다.
시인 신현옥 첫 동시집 <콸콸>은 백지처럼 깨끗한 아이들 마음에 그리는 수채화요, 아름다운 세상이란 자판기를 두드려 쓰는 아이들 시다. 이 시집은 자연이 아이에게, 아이가 자연에게, 어른이 아이에게, 아이가 어른에게 보내는 따스하고도 부드러운 손짓이다. 그 아름다운 손짓에 아이가 웃고 어른이 웃고 이 세상이 웃는다.
"어린 시절 꽃들과 새들과 구름과 하나였다. 시시때때 불현 듯 다가오는 모든 존재들은 순수하고 경이로웠으며 그 속에 하염없이 합일되고 일체가 되었다"는 시인 신현옥. 그는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 우리 아이들이 아름답게 자라기를 꿈꾸며 유아교육을 공부했다. 오랫동안 서예공부를 한 그는 2010년 계간문예지 <창작21> 신인문학상 동시부문에 당선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세상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린다"는 일러스트레이터 김희경은 '우리 동네 문화 가꾸기' '어린이 놀이터' 등 여러 가지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맡았다. 작품으로는 대한민국 광고대상 수상작 삼성전자(제일기획) <또 하나의 가족> '포장마차 편' '장모님 생신 편' '원두막 편' 일러스트 작업과 <목 긴 청개구리> <천원의 행복> <자구 온난화의 부메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