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3주 남기고 벽화 그리는 '고딩'들

안성 달팽이학교 청소년들의 벽화현장을 가다

등록 2011.10.18 19:29수정 2011.10.18 19:2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벽화 청소년들 이날 벽화에 참여한 청소년들과 이기원 교장(안성 달팽이학교)이 향교 앞 민가 벽화에서 폼을 잡았다. 앞쪽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이기원 교장이다. ⓒ 송상호


지난 일요일(16일)은 빨간 날. 하지만 한국의 고3 수험생과 그들의 가족에게 지난 16일은 'D-25'로 통한다. 2011년 11월 10일, 수능일이 25일 남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에겐 '죽어라 공부하기도 바쁜 날'이다.


하지만 안성 가온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승민군은 아침부터 어디론가 향했다. 그가 간 곳은 독서실도, 도서관도 아니었다. 바로 안성향교 옆 어느 민가 벽이었다. 그곳에는 승민군 외에도 남녀 고등학생 16명이 더 와 있었다. 이들이 오늘 모인 목적은 하나, 민가 벽에 벽화를 그리기 위해서란다.

청소년들이 벽화 만드는 현장에 가보니

a

드릴 작업 중 박승민 군이 동료 학생과 함께 철제 벽화를 부착하기 위해 드릴 질을하고 있다. 재밌어서 온다는 이들에게 뭐라 말할 수 있으리. ⓒ 송상호


이날 날씨는 비, 우박, 맑음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게다가 부쩍 쌀쌀해진 날씨까지…. 그럼에도 승민군을 비롯한 청소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작업에 열중했다.

승민군은 전동 드릴을 잡았다. 벽화에 웬 드릴? 그렇다. 오늘 할 일은 단순히 벽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사전에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철제 모형을 벽에 부착하는 작업이었다. 남학생들은 바탕색을 칠하고, 사다리를 놓고, 드릴 질을 하고, 망치질을 하는 등 힘쓰는 일들을 했다.

한편 여학생들은 자기가 맡은 구역에 서있거나 쪼그려 앉아 연신 붓질이었다. 이렇게 그려 보고 저렇게 그려 보기고 하고…. 청소년들은 작품 완성 후 기뻐할 벽 주인을 머리에 떠올리며 열심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는 것에 열중하듯 열심히다. 


벽화 옆으로 지나가는 주민들이 대견스레 그들을 지켜본다. 인사하며 미소를 보내기도 한다. 그런 주민들의 모습에 학생들의 붓놀림과 망치질이 더 경쾌해진다.

어느덧 점심시간. 달팽이학교(바로가기) 이기원 교장이 시킨 자장면이 작업 현장에 도착했다. 땀 흘려 일하다 먹는 맛있는 자장면 한 그릇은 반갑고 또 반가운 모양이다. 서서 먹는 학생, 쪼그리고 앉아 먹는 학생, 받침대에 올려놓고 먹는 학생 등 먹는 모습도 다양하다. 이기원 교장도 학생들과 수다를 떨며 자장면 한 그릇을 어느새 다 비웠다.


무상으로 진행되는 벽화수업

a

벽화작업 청소년들 남학생들은 사다리에 올라 드릴과 망치로 벽화 모형을 부착하고 여학생들은 붓으로 벽화를 그리고 있다. ⓒ 송상호


알고 보니 이들은 달팽이학교 청소년 벽화반 고등학생들이다. 올해 4월부터 매주 어딘가에서 벽화를 그려왔다. 그동안 벽화를 완성한 곳은 안성 누들거리 2곳. 이번 안성향교 옆 민가는 그들의 3번째 작품이다. 앞으로도 양성 초등학교와 청소년 문화의집을 디자인할 계획이다.

경기문화재단과 안성시청의 지원으로 시작한 청소년 벽화 사업. 17명의 고교생이 지원해서 벽화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기획 단계부터 설계, 디자인 그리고 제작·완성까지. 말하자면 벽화 수업을 교실이 아닌 현장에서 받는 셈이다. 학생들은 모두 무상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다.

달팽이학교에서 추진하는 벽화에는 그림만 있는 게 아니다. 철재로 모형을 만들어 부착하는 형식이다 보니 학생들은 쇠를 자르고, 오리기까지 한다. 벽에 부착할 때도 드릴 질과 망치질은 필수다. 거의 막노동 수준이지만 그들은 다양한 삶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봉사를 넘어 능동적인 사회참여로

a

벽화 삼매경1 소녀들이 벽화 삼매경에 빠졌다. 이들은 마치 유명화가가 심혈을 기울여 자신의 작품을 그려나가는 듯 보였다. ⓒ 송상호


a

벽화 삼매경 2 역시 소녀들은 아기자기 하고 세밀했다. 자신의 맡은 구역을 서서, 때로는 쪼그려 앉아서 최선을 다해 벽화를 그려 나갔다. 후세에 길이 남을 벽화를 ㅋㅋㅋㅋ ⓒ 송상호


그런데 4월에 참가한 17명의 청소년 중 10월 현재까지 한 명도 중도 하차 하지 않았다니 가히 놀랍다. 그 이유가 뭘까.

"제 나이의 학생이 제가 사는 고장을 위해 사회에 참여해 뭔가 기여한다는 것은 정말 뿌듯한 일이죠."

승민군은 즐거운 얼굴로 대답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재밌고 보람차면 시키지 않아도, 아니 누군가 막아도 하고야 마는 법이다. 이런 사람들의 습성이 승민군과 동료 학생들에게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동안 벽화를 그리고 있으면 마을주민들이 "잘한다, 예쁘다"며 칭찬을 해주었다고 한다. 때로는 마을주민들이 간식과 물도 갖다 주고, 때로는 식사까지 대접하곤 했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마을주민들의 칭찬과 관심이 벽화를 처음 시작할 때 시큰둥하던 청소년들을 제대로 춤추게 해줬던 것이다.

앞으로 승민군은 영상·사진 등 예술 관련학과에 진학할 계획이다. 승민군은 고교 시절에 자신의 꿈을 미리 맛보는 짜릿함을 놓치지 않았다. 승민군은 '수능 D-25'라는 표현을 잊을 만큼 벽화 제작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이기원 교장은 "청소년들에게는 대학입시라는 유령 때문에 학교와 집, 그리고 공부의 울타리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서려있습니다. 이들에게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문화 활동을 하게 해 '자신이 능동적으로 사회에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라며 벽화반의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이 교장의 의도는 학생들의 손긑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안성 달팽이학교 031)676-0114는 대안문화학교로서 사진반, 영상반, 조형물반 등이 운영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안성 달팽이학교 031)676-0114는 대안문화학교로서 사진반, 영상반, 조형물반 등이 운영되고 있다.
#청소년 벽화 #달팽이학교 #이기원교장 #안성 #안성향교 #달팽이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김 여사 성형' 왜 삭제? 카자흐 언론사로부터 답이 왔다
  2. 2 '100개 눈 은둔자' 표범장지뱀, 사는 곳에서 쫓겨난다
  3. 3 카자흐스탄 언론 "김 여사 동안 외모 비결은 성형"
  4. 4 최재영 목사 "난 외국인 맞다, 하지만 권익위 답변은 궤변"
  5. 5 한국의 당뇨병 입원율이 높은 이유...다른 나라와 이게 달랐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