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불똥' 떨구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대의 모순을 비판하는 작가 박불똥의 '형이하 악'전

등록 2011.10.22 15:19수정 2011.10.2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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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불똥 전이 열리는 인사동거리에 있는 관훈갤러리 카페 쪽 입구 ⓒ 김형순


1980년대 민중미술의 대표적 아이콘이었던 박불똥작가의 '형이하 악'전이 관훈갤러리에서 10월 25일까지 열린다. 그는 시대의 모순에 대해 도발적 표현으로 일침을 놓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에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지만 디지털카메라로 재구성한 이번 전은 그런 부담 없이 볼만하다. 전시회 제목도 그답게 예술의 허위의식을 비꼰 것이다.

박불똥은 홍익대 서양학과에 다닐 당시 박서보 화백에게 그림을 배웠는데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아 미술을 포기할까 여러 번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0년 <현실과 발언>이 발표되자 이에 고무돼 '바로 이거야!'라며 그림을 다시 시작한다. 


그는 1985년 7월 22일 아랍미술관(서울 경운동)에서 열린 '한국미술, 20대의 힘(힘전)'에 참가했는데, 경찰이 전시장에 들이닥쳐 출품작을 압수·훼손 당하는 봉변을 당한다. 다음 날 언론에 이 사건이 대서특필되면서 민중미술이 일반인에게도 알려지게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민족미술협의회'가 생겼고 박불똥 작가도 이 단체에 가담했다.

그는 1993년 쿠바에서 열린 '제3세계 미술전'에 한국작가로 처음 참가했고, 1998년 88올림픽 10주년기념 조각공원 작가 10인 선정에 회화작가로는 유일하게 뽑힐 만큼 독보적이다. 최근 전시가 뜸하다가 올해만 2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내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교 '쾨니히슈타인 갤러리' 초대전(3월 2일~4월 15일)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대통령이라도 국민 괴롭히면 '불똥'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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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불똥 I '우리나라 대통령이 부(끄)럽다' 1986. '호치키스 2' 2007(아래) ⓒ 박불똥


그의 그림에는 대통령이라도 국민을 괴롭히면 그의 이름대로 '불똥'이 떨어진다. 극악무도한 공포정치의 상징인 전두환 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맥락에서 지난 대선 당시 "절 찍어주세요"라고 유세했던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도 있다. 사실 살기등등한 5공 시절에 이와 같은 그림을 그린 것은 굉장한 용기다. 이는 시대가 그만큼 절박하고, 작가의 고민도 컸다는 뜻이다.

지난 19일, 전시장에서 본 박불똥 작가의 얼굴은 편해 보였다. 모든 걸 내려놓은 도인의 모습이다. 전시회에서 만난 그의 아내 조경연씨 역시 문학소녀처럼 미소가 잔잔하다. 작가는 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디지털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닌다. 그의 촉수에 뭔가 걸리면 바로 찍힌다.


밀착된 일상으로 파고드는 즐거움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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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불똥 작가 그는 착상이 떠오르면 언제나 디지털카메라를 들이댄다 ⓒ 김형순

작가가 이번 전시회를 열면서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를 <오마이뉴스>에 소개한다.

첫마디는 "나는 '시나브로 (민중 속으로)'로 들어간다"로 시작한다. 작가는 "신작들이 삶의 생생한 현장에 밀착돼 있고, 그런 밀착된 창작이 즐겁다"고 말한다. 또한 "사사로운 일상을 컴퓨터로 통해 색다른 이미지로 만든다"고 전한다.

사진이 찍히는 대상에 대해서는 "가까운 가족과 지인은 물론이고, 이름 모를 벌레, 작업실 안팎의 곤충, 철따라 피고 지는 화초뿐 아니라 식사 후 남은 음식 찌꺼기, 길에서 주운 자질구레한 쓰레기 따위도 모두 해당된다"고 설명한다.

또 그는 "30여 년만에 찾아간 고향의 비좁고 남루한 골목은 물론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 용산참사 희생자의 묘지 광경, 이소선 여사의 삼우제를 마치고 떠나가는 유족들, 촛불 정국 때 광화문 명박산성 등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도 뺄 수 없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그는 "인물이든, 정물이든, 풍경이든 그것은 하나같이 그림과 사진의 접경지에서 내 나름대로 경작해낸 '일말의 진실'임"을 강조한다. 이어 "민중은 철지난 유행어가 된 지 오래고, 그림은 그림일 뿐이지만 이번 전에서 스스로 위로와 격려를 얻는다"고 고백한다. "이번 전에선 최소한 뜬구름잡는 소리는 없다"며 익살도 부린다.

그의 광팬 이철수 작가의 박불똥 론(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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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불똥 전시장 2층에 적혀있는 작가노트를 보고 웃고 있는 이철수 작가 ⓒ 김형순

박불똥 작가의 열렬한 팬이자 지지자인 이철수 작가가 그의 전시를 보러 왔다. 미술관 내 찻집에서 이철수 작가의 '박불똥 미술론'을 듣게 됐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우리 속에 누구나 다 금기가 있습니다. 박불똥 작품이 정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몸을 사리지 않고 다 보여준다는 점'일 겁니다. 난 저렇게까지 다 못 보여줘요. 그래서 권력기관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그의 작품들은 각별한 깊이와 가치가 있기 때문에 평론가들이 정리해줘야 하는데, 그들도 눈 감고 있으니….

관객들은 '저 사람 혼자 용감하네'라고 속으로만 생각하지 감동이 온다고 해서 제대로 표현해 주지 않아요. 그러니 시장성은 더욱 없죠. 하지만 저는 자기검열이 없어 보이는 박 작가의 작품을 보면 속이 시원해집니다.

그를 처음 봤을 때부터 내가 계속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꼭 있어야 할 존재인데 세상이 그를 너무 안 알아주기' 때문이에요. 나라도 열심히 알아줘야 하지 않겠어요?(웃음)"

너무 자연스럽고 한국적인 콜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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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불똥 I '常록樹' C-프린트 25×27cm 2011 ⓒ 김형순


이제부터 그의 작품을 몇 점 감상해 보자. 그는 그린다기보다는 뒤샹(프랑스 화가)처럼 오브제를 가져다 놓는 것이 맞다. 게다가 현대미술의 거장 리히터(독일 화가)처럼 사진을 그 바탕에 둔다. 이런 방식이 디지털시대에 맞는 콘셉트이다. 1980년대부터 박불똥은 이런 경향을 보였는데 가히 놀랍다. 그는 서양에서 온 콜라주 기법을 자연스럽게 한국식으로 바꿔냈다.

그는 1990년대에 오프셋(Off-Set) 판화도 선보였는데, 당시 '이게 복사품이냐 예술품이냐'는 논란 속에 휩싸이기도 했단다. 당시는 첨단기술과 접목된 것을 미술로 보지 않은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첨단기술과 결합된 작품도 당연히 예술로 인정받는다. 그는 여러모로 앞선 에술가였다.

강대국에 끼여 사는 분단국민 비애를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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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불똥 I '운구' C-프린트 28×17cm 2011 ⓒ 김형순


천안함 사건을 소재로 한 <운구>는 비장미가 넘친다. 그는 '분단국 사람들의 지지리 궁상으로 살아야 하는 현실', '누구에게 질 수 없어 열심히 살아야 함과 동시에 외국인에게는 다이내믹하게 보여야 하는 현실'을 넘어 분단국 사람들의 아픔을 드러냈다. 또 작가는 '분단국의 환경이 바꿔버린 우리의 냉전적 얼굴과 분단이라는 긴장과 불안이라는 질곡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를 염려하고 있다.

토건주의가 낳은 자연파괴를 풍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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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불똥 I '연화장 가는 길' C-프린트 35×23cm 2011 ⓒ 김형순


<연화장 가는 길>, 즉 극락으로 가는 길이란 뜻인데 이는 전국을 몸살에 걸리게 한 토건 사업을 비꼰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은 위대한 국민운동이었다'며 4대강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이 작품은 유기적 생명체인 자연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삼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서양에는 무분별한 개발논리를 견제하는 정당인 녹색당이 있다. 우리나라엔 아직 원내에 진출한 이런 정당은 없다. 자연은 대대로 사용할 공공 자산이고, 문화유산이다. 또한 자연은 종잣돈과 같아서 너무 개발하면 그 이자를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우리 후손들이 뭘 먹고 살지, 원금을 까먹지 않는 범위에서 개발을 해야 하는데 요즘 그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경제 성장 속 빈곤해진 밥상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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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불똥 I '정물' C-프린트 35×22cm 2011 ⓒ 김형순


이 작품은 밥상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잘 살게 되었다고 하지만 대형 교회와 고층 아파트 그리고 자동차가 많아진 것을 제외하면 별로 나아진 것도 없는 듯하다. 게다가 휴대폰을 팔아 식량을 수입해 먹으니 밥상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검증도 안 된 외국산을 먹고 패스트푸드, 정크 푸드에 익숙해지니 비만이 사회문제로 대두된다.

우리 전통음식은 웰빙 푸드임과 동시에 슬로우 푸드다. 그러나 요즘은 김치 맛마저 우리 게 아니다. 다른 것을 말해 뭘 하랴. 가족애를 꽃피우던 밥상 공동체가 해체된 지 오래다. 다들 뿔뿔이 흩어져 혼자 먹는다. 삶의 소중함, 음식에 대한 고마움, 인간에 대한 예의 등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음식값에만 관심을 두니 식탁에서 축제가 일어날 수 없다.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해체된 밥상 공동체의 현실이 불현듯 스쳐지나갔다.

인간소외와 서늘한 도시의 그늘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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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불똥 I '비원 앞' C-프린트 36×21cm 2011 ⓒ 김형순


박불똥 작가는 '도시의 비인간화'를 염려하는 것 같다. 작품 <비원 앞>은 그런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도시는 이제 자동차의 홍수와 빌딩숲으로 숨쉴 틈도 없는 공황상태에 빠져있다. 그러니 사람이 오히려 위압적인 문명에 치여 소외감을 느끼고 주눅들 수밖에 없다.

그는 사회구조의 문맥까지 예리하게 읽어내는 눈이 있는 작가이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도시의 속을 더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하다. 그런 만큼 작가는 더 인간적인 도시를 꿈꾼다. 자본의 위세에 찌든 도시문명의 그늘을 고발하고 있다. 현대인을 도시의 고아로 전락시키고 처량한 찬밥 신세로 만든 것을 지적하면서 산다는 것이 뭔지를 되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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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갤러리 1층 전시장 작품 앞에 선 박불똥 작가 ⓒ 김형순


작가 박불똥(朴祓彤) | Park Bul-Dong I 본명: 박상모(朴相模) 1956년 경남 하동 출생. 1984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1985년 눈빛展(관훈미술관, 서울), 1987년 졸작展(그림마당 민·서울), 1989년 결사반대展(그림마당 민·서울), 1992년 관능의 불구에 대한 자백展(금호미술관·서울 I 다다갤러리·부산), 1993년 Reproductive 오리지널展(신세계갤러리·서울), 1996년 곤충채집展(사비나갤러리·서울), 1999년 사유재산展(사비나갤러리·서울), 2001년 토끼와 거북展(갤러리아츠윌·서울), 2011년 박불똥의 展(갤러리자인제노·서울)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사비나미술관, 학고재, 서울올림픽공원, 홈플러스 수원 인계점 스포타임 사옥, 제주 4.3역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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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순

덧붙이는 글 | 관훈갤러리 I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 02)733-6469 | 누리집 http://www.kwanhoongallery.com


덧붙이는 글 관훈갤러리 I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 02)733-6469 | 누리집 http://www.kwanhoongallery.com
#박불똥 #민중미술 #관훈갤러리 #'힘전' #민족미술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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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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