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마치 만나자마자 헤어지는 그런 속도

[ADRF와 함께 만난 네팔②] 발칼라얀 초등학교에서의 끝인사

등록 2011.10.23 11:25수정 2011.10.2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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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you again 발칼라얀 아이들과의 끝인사 ⓒ 고상훈

▲ See you again 발칼라얀 아이들과의 끝인사 ⓒ 고상훈

네팔에서의 세 번째 날. 계란 스크램블만으로도 행복한 아침 끼니를 해결하고 다시 발칼라얀 학교로 향했다. 교실 페인트칠이 생각보다 상황이 어려운 노력봉사팀과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자 하는 교육봉사팀 모두 발걸음을 재촉했다.

 

특히 노력봉사팀은 발칼라얀의 아이들과 헤어짐을 알리는 '명랑 운동회'도 준비하는 터라 여간 바쁜 것이 아니었다. 오래지 않아 도착한 발칼라얀의 좁다란 골목에는 언제나처럼 아이들이 노란 물결을 정겨운 손인사와 눈인사로 맞이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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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혈액형 검사 수업을 위해 피를 내는 아이 ⓒ 고상훈

▲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혈액형 검사 수업을 위해 피를 내는 아이 ⓒ 고상훈

 

"Who is next? Nobody?"

 

첫 수업은 손가락에 피를 내어 혈청을 이용한 혈액형 검사였다. 아이들은 손가락에 바늘을 대는 것이 무서웠는지 선뜻 손을 들지 못하고 옆 친구들을 부추기기만 했다. 앞서 몇 안 되는 남자 아이들이 기세 좋게 자신의 손가락을 우리에게 내어주었다가 따끔한 바늘 맛을 보고 한풀 꺾여 자리로 돌아간 것이 화근이었다. 그 덕에 뒤에 앉은 여자 아이들은 선뜻 나오지 못하고 친구들이 겁먹은 모습만 까르르 구경하고 있었다. 어디를 가나 무서운 건 무서운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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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도시락 아이들과 우리가 먹는 점심 ⓒ 고상훈

▲ 점심 도시락 아이들과 우리가 먹는 점심 ⓒ 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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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도시락 주세요 점심 도시락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아이들 ⓒ 고상훈

▲ 점심 도시락 주세요 점심 도시락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아이들 ⓒ 고상훈

 

페인트칠이다 교육봉사다 해서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노라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되었다. 점심을 받으려고 줄지어 서있는 아이들에게 점심을 하나하나 나눠주고 나도 점심 도시락 하나를 받아 열었다. 어제와 같은 도시락이었다. 어제도 입맛이 맞지 않아서 입에 대지 못한 터라 한숨을 푹 쉬었지만 샌드위치를 집어 들고 입으로 갖다 대었다.

 

"우리가 네팔에 봉사 활동을 온 취지를 생각해봐요." 

 

그 전날 나의 졸음을 확 달아나게 해준 같이 봉사활동을 온 한 봉사자의 말이다.

 

ADRF(아시아아프리카난민위원회)의 봉사자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항상 그 날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오후 10시 즈음에 하는 바람에 항상 꾸벅꾸벅 졸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이 말은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해주었다.

 

선명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강의 내용을 말하자면 네팔의 아이들에게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봉사를 하기 위해서 온 우리가 과연 점심 도시락을 가려 먹고 물, 휴지 등을 한국에서처럼 실컷 낭비하면서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봉사를 할 수 있겠냐는 물음이었다. 나의 답은 너무나도 '아니다'였다. 적어도 여기 네팔에서 봉사자로서 참가한 지금이라도 마음을 고쳐먹어야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다가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내가 어제는 입에도 안 대었던 점심 도시락에 입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도시락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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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도시락 맛있어요 맛있게 점심 먹는 아이 ⓒ 고상훈

▲ 점심 도시락 맛있어요 맛있게 점심 먹는 아이 ⓒ 고상훈

 

정말이지 발칼라얀의 아이들은 점심 도시락을 받아들면 끼리끼리 모여서 어느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운다.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가슴이 시렸다. 간사님에게 물었더니 아이들은 이런 조그만 도시락도 갖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문득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있는 우리가 불쌍했다. 쓰레기통에는 우리가 버린 음식물이 잔뜩 있는 도시락 쓰레기와 아이들의 종이 박스만 남은 도시락이 가득했다.         

 

갑자기 후두둑하고 빼곡한 슬레이트 지붕 위로 비가 떨어졌다. 점심을 먹고 명랑운동회 진행을 위해서 옹기종기 운동장(마을에 있는 공터를 발칼라얀 학교의 운동장으로 쓰고 있다.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운동장의 모습은 아니다.)에 모여 있던 아이들은 손 우산을 하고 학교로 다시 뛰어갔다. 운동장에 나가서 아이들과 운동회를 준비하던 우리들도 아이들을 데리고 좁다란 골목을 내달렸다.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학교로 돌아오니 거짓말처럼 하늘을 얼굴을 싹 바꾸고 햇볕을 쨍쨍하고 내리쬐었다.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간 운동장에는 금방은 보지 못했던 큰 연못이 하나 있었다. 그새 쏟아진 비가 운동장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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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공 축구 물 고인 운동장에서의 축구 ⓒ 고상훈

▲ 배구공 축구 물 고인 운동장에서의 축구 ⓒ 고상훈

물 고인 운동장 비가 고여 연못이 되어버린 발칼라얀의 운동장 ⓒ 고상훈

▲ 물 고인 운동장 비가 고여 연못이 되어버린 발칼라얀의 운동장 ⓒ 고상훈

 

"Hey! Soccer?"

 

잘생긴 남학생 한 명이 수줍게 배구공을 내밀며 축구를 하자고 했다. 더 이상 명랑운동회는 없었다. 운동장 저편에서는 사진을 찍고 저 만치에서는 이야기를 나누고 가운데에서 나는 모래밭인지 연못인지도 모를 곳에서 아이들과 공을 차고 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아이들과 함께했다.

 

몇 분 만에 생겨버린 연못에 자꾸 공이 빠지는 바람에 아이들은 수영인지 축구인지도 모를 뜀박질을 해댔지만 그냥 그대로가 너무 즐겁고 아름다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조금 솔직해지자면 나중에 숙소로 돌아가 흙탕물이 잔뜩 묻은 신발과 바지를 세탁할 때는 그냥 아이들이랑 사진이나 찍을 걸하고 후회도 조금 했었다.

 

이틀간의 만남이란 너무 빨리 지나가 발칼라얀을 떠나야 했다. 요즘 TV에 자주 나오는 광고를 인용하자면 '이건 마치 만나자마자 헤어지는 그런 속도'쯤 할 수 있겠다. 애석하게도 헤어짐의 순간에 다시 비가 쏟아졌다. 몇 몇 아이들의 얼굴에는 비인지도 눈물인지도 모를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또다시 가슴이 시렸다. 하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것이 아이들과 내가 마음속에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인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헤어짐은 아쉽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래도 고개가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Do not say good-bye, just say 'See you again'."

덧붙이는 글 | 11. 07. 23 ~ 11. 08. 04 네팔에서 ADRF와

2011.10.23 11:25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11. 07. 23 ~ 11. 08. 04 네팔에서 ADRF와
#ADRF #네팔 #해외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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