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핵심 쟁점으로 대두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에 대한 합의안 도출이 실패하며 여야에 전운이 감돌고 있는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남경필 위원장이 위원장실에 붙어 있던 '한미FTA 강행처리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떼어내고 있다. 이날 남경필 위원장은 회의장 문을 막고 있던 야당 의원들에게 "한미FTA 비준동의안은 오늘 처리하지 않을 것이며, 통일부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 대한 2012년도 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안 만을 심사하겠다고 설득해 회의가 개최됐다.
사진공동취재단
최근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몇 차례 본 적이 있는 한 출판업자의 목소리였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전화했다"며 "정말 중요한 문제이니 제대로 보도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한미FTA의 내용을 잘 모른다, 어떤 부분이 쟁점인지 알려주는 친절한 기사를 써 달라"고 주문했다.
10분간의 전화 통화 후, 언론이 한미FTA 국회 비준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 국면만 주로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쟁점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보도를 찾기 어렵다. 국민에게 한미FTA 내용을 제대로 알리자는 취지에서 한미FTA 끝장 토론회가 열렸지만,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1일 한미FTA저지 범국민본부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한미FTA의 쟁점을 국민에게 보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들은 끝장토론회를 통해 정리한 한미FTA 핵심 쟁점 15가지의 문제점과 과제를 설명했다. 15가지 쟁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국제 금융위기 영향과 경제효과 검증 ▲ 협정문의 양국 내 법적 지위 논란 ▲ 한미FTA와 충돌하는 미국 법 개정 여부 미확인 ▲ 의약품 허가-특혜 연계로 인한 제약산업 피해 ▲ 개성공단 한국산 인정 문제의 어려움 ▲ 영리병원 도입 철회의 어려움 ▲ 건강보험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대상 여부 ▲ 중소상인 보호대책의 ISD 대상 여부 ▲ ISD 폐해 ▲ 학교급식에서 우리 농산물 의무화 가능 여부 ▲ 한미FTA와 상충되는 시행령·시행규칙·고시·지자체 조례 파악 여부 ▲ 농어민 보전대책 부실 논란 ▲ 쌀 개방 재논의 약속 논란 ▲ 건강보험 약가 결정 독립기구의 인정 여부 ▲ 번역 오류"한-EU FTA 발효 100일, 작년 무역흑자 다 까먹어" 이날 보고회에서 전문가들은 한미FTA가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마련된 만큼, 위기 이후 문제로 드러난 내용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생상품 등 위기의 요인으로 지목됐던 미국 월스트리트 시스템이 한미FTA를 통해 한국에 도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한미FTA 협정문 내에 전반에 걸쳐 점검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경제 효과 전망치 또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한-유럽연합 FTA 발효 100일 이후 무역흑자가 20억 달러 감소했다, 이미 2010년 유럽연합과의 무역에서 기록한 18억 달러의 흑자를 다 까먹은 것"이라며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경제 불황이라는 조건에서 한미FTA를 한다 해도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달 20일 끝장토론회에서 "경제 질서는 완벽하지 않다, 다만 거기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점은 세계가 공동의 노력을 통해서 보완책을 마련해나갈 것"이라며 "또한 경제적 전망은 틀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전망을 통해 플러스라는 그 방향성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한미FTA 협정문의 지위가 다른 것에 대한 논란도 거세다. 한국에서는 협정문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지만 미국에서는 국내법에 비해 후순위인 것을 두고 "불평등 조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국내법의 효력을 갖는 한미FTA와 충돌하는 법안은 수정된다. 이미 국회에서 수정됐거나 앞으로 수정돼야 할 법안만 25개다.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에서도 한미FTA가 미국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면, 미국도 한미FTA와 충돌되는 법안은 수정돼야 한다"며 "하지만 정부는 이를 확인하지 못했고, 확인하고 있다는 말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한미FTA와 상충되는 국내법의 시행령, 시행규칙, 고시 등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해영 교수는 "특히 지방자지단체 조례를 전혀 검토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미FTA가 발효되면, 서울시가 한미FTA를 위반하지 않고 각종 정책 등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