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 전문 폭로 1년, 기로에 선 위키리크스

[진단] 어샌지, 스웨덴 송환 관련 항소심 패소... 돈줄 막혀 사이트 운용도 어려워

등록 2011.11.03 21:29수정 2011.11.16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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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위키리크스 사이트와 그 설립자 줄리언 어샌지는 뉴스의 중심에 서 있었다. 2010년 11월 어샌지는 미국 외교 전문 25만여 건을 공개하기 시작하며 전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비밀이 폭로된 권력자들은 어샌지를 '공공의 적 1호'로 지목하며 눈엣가시로 여겼고, 어샌지 지지자들은 권력의 치부를 드러낸 영웅으로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어샌지는 위기에 놓여 있다. 어샌지는 지난해 스웨덴 여성 2명을 성폭행·성추행한 혐의와 관련해 보석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어샌지를 자국으로 보내달라는 스웨덴 당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재판이다.

어샌지는 여성들의 동의 아래 이뤄진 성관계였으며, 영국 법에 저촉되는 행위가 아니므로 송환될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펴왔다. 또한 자신이 스웨덴으로 송환된 후 간첩죄로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는 미국으로 넘겨질 것이며, 이를 위해 미국이 영국, 스웨덴 등에 압력을 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법원은 어샌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월에 열린 1심에서 어샌지를 스웨덴으로 송환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어샌지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러나 영국 고등법원은 2일(현지 시각), 자신을 스웨덴으로 강제 송환하라는 판결은 부당하다는 어샌지의 항소를 기각했다.

<알 자지라> 등 외신에 따르면, 고등법원 판사들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어샌지가 (스웨덴에서) 한 행동을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했어도 기소됐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이번 사건이 사소한 위법 행위가 아니라 심각한 성 범죄라는 점은 자명하다."

어샌지가 2주 이내에 대법원에 이의제기를 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면 영국에서 더 재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10일 이내에 스웨덴으로 송환된다.


a  줄리언 어샌지가 스웨덴 송환 관련 항소심에서 패한 것에 대해 보도한 <가디언>.

줄리언 어샌지가 스웨덴 송환 관련 항소심에서 패한 것에 대해 보도한 <가디언>. ⓒ <가디언>


스웨덴 송환 위기, 자금난, 등 돌린 우군... 곤경에 처한 어샌지

위기에 처한 건 어샌지만이 아니다. 어샌지가 만든 위키리크스도 기로에 서 있다. 10월, 어샌지는 위키리크스의 기밀 공개 활동을 일시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내년에 사이트를 운용하는 데 필요한 350만 달러를 마련해야 하는데 돈줄이 막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샌지는 비자카드, 마스터카드 같은 미국 기업들이 위키리크스와 관련된 금융 거래 서비스 제공을 중단한 탓에 당분간 자금 확보에 주력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 봉쇄'가 올해 말까지 풀리지 않는다면 위키리크스가 문을 닫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어샌지 스스로 말할 정도로 자금 압박이 심한 상태다.


1년 전 미국 외교 전문 25만 건을 공개하기 시작한 후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는 물론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페이팔 등도 위키리크스 관련 금융 거래 서비스 제공을 중단했다. 또한 아마존닷컴은 위키리크스에 대한 서버 제공을 중단한 바 있다.

위키리크스가 처한 곤경은 말라버린 돈줄만이 아니다. <로이터통신>은 위키리크스 사이트의 기술적으로 핵심적인 요소에 몇 달 전 장애가 생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보자들이 위키리크스에 기밀 자료를 은밀히 전하는 데 필요한 장치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어샌지와 가까운 몇몇 사람들이 '어샌지가 인편과 메일을 활용해 폭로 자료를 받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위키리크스는 지난해 말부터 미국 외교 전문 25만여 건을 순차적으로 공개하다가 9월 초에 나머지 전문들을 한꺼번에 공개했다. <로이터통신>은 위키리크스가 미국 외교 전문 25만여 건 이외의 새로운 자료를 폭로하는 일이 거의 없어진 이유가 이러한 어려운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미국 외교 전문을 폭로하기 전에 위키리크스에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약 5명의 직원과 수십 명의 자원봉사자, 그리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800명의 자원봉사자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어샌지는 <가디언>을 비롯한 각국의 유력 언론사들과 손잡고 미국 외교 전문을 공개했다.

그러나 지난 1년 사이에, 어샌지와 함께했던 동료 중 일부는 어샌지를 비난하며 떠나갔다. <가디언>을 비롯한 매체들과도 사이가 틀어졌다. 9월 초 위키리크스가 나머지 전문들을 모두 공개한 후 <가디언>, <뉴욕타임스>, <슈피겔>, <엘 파이스>, <르몽드>는 이를 비판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위키리크스가 정보 제공자들의 이름을 지우지 않고 전문을 공개했으며, 이는 어샌지가 매체들과 맺은 합의를 어기고 독단으로 내린 결정이라는 비판이었다.

미군, 브래들리 매닝 청문회 준비 중

한편 위키리크스에 기밀 자료를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브래들리 매닝 일병은 현재 미국 캔자스 주의 포트 리븐워스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지난해 체포된 브래들리 매닝은 올해 3월 미군 당국이 자신에게 "불법적 형벌"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그들은 매일 밤 내 알몸을 빤히 쳐다본다"> 참조).

브래들리 매닝은 올해 초보다는 나은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0월에 브래들리 매닝의 변호사는 매닝이 독방에서 나와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텔레비전도 보고, 운동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군 당국은 브래들리 매닝을 정식 군사재판에 회부할지를 결정하는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a  브래들리 매닝 일병.

브래들리 매닝 일병. ⓒ <가디언>


#위키리크스 #줄리언 어샌지 #브래드리 매닝 #성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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