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 만들기 작업아내와 장모님이 곶감 만들기 1단계, 꼭지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이종락
한 번 얼어버린 감은 나중에 보니 새까맣고 딱딱하게 굳어져 곶감으로서의 상품 가치를 잃어 버렸다. 결국 감나무 임대료에 따고 깎는 수고비까지 이중 삼중의 비용까지 들어간 곶감의 대부분은 주변에 거저 주거나 우리 집 개들의 간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차라리 얼어버린 상태에서 깨끗이 포기했으면 추가 부담의 후회는 안 했을 터이나 만시지탄이었다.
올라가지도 못하면서 또 임대한 감나무, 이상기후로 절반도 안 달려감나무에 올라 갈 재주도 없으면서 감나무 임대의 제안은 뿌리치기가 힘들었나 보다. 한 번의 만시지탄을 겪고도 작년 말 집 주변의 감나무 열 몇 그루를 150만 원에 임대해 보라는 제안을 또 다시 받아 들였다.
감나무는 수요가 많아서 그런지 임대료가 선불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 상당히 불만이 있지만 곶감을 해야 하는 아쉬운 처지에 왈가불가할 수도 없었다. 예로부터 농사는 도지(임대료)가 거의 후불이었다. 천재지변을 만나 흉년이 들 경우 지주도 어느 정도를 감안해 도지를 조정해 주곤 했는데 감나무는 여지없이 선불 받는 것을 보면서 돈 욕심 앞에 농심도 옛말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산비탈 곳곳에 자리잡은 감나무 관리를 위해 올해 세 차례의 풀베기를 해야 했다. 그 면적이 자그만치 천여 평이 넘었다. 예초기의 소음과 매연을 맞아가며, 늦가을 주렁주렁 달릴 수확의 기대를 안고 수고를 감수했다. 하지만 작년 겨울 극심한 동해 피해에다 기나긴 장마로 감나무의 감들이 절반 이상이나 빠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이상기후로 감나무가 피해를 입은 것이다.
감나무에서 감을 찾기가 힘들다는 말이 숱하게 들려왔다. 또 허망했다. 한 해도 아니고 두해씩이나...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감나무 주인 역시 이미 임대료는 받았지만 얼굴에는 민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천재지변으로 이렇게 됐으니 임대료 중 일부라도 돌려 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올해는 혹시라도 작년처럼 갑작스런 추위가 찾아 올까봐 주변에선 서둘러 감을 따기 시작했다. 임대료만큼의 감이나 나올까 하는 우울한 심정으로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감을 땄다. 안 그래도 부족한 감, 한 개의 감이라도 더 따겠다는 작심으로 무리하게 올라갔지만 높은 곳의 감까지 딸 수는 없었다. 한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