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자 <중앙일보> 기사 <조종사가 종북세력...승객들은 아찔했다>
중앙일보 누리집 갈무리
지난 10월 19일과 20일 국내 주요 언론사들은 일제히 국내 한 항공사 기장이 종북카페에 가입해 활동하다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이 뽑은 기사 제목과 내용은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중앙일보>는 10월 19일자 기사에서 "조종사가 종북세력… 승객들은 아찔했다"라는 제목을 뽑아 해당 조종사가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등의 내용을 보도했다. 같은 날짜 "'종북' 조종사가 모는 여객기"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서는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우고 월북(越北)을 기도하는 제2의 요도호 사건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이제 북한 추종세력 탓에 비행기도 맘 놓고 탈 수 없는 세상이 됐단 말인가"라며 한탄했다.
<조선일보>는 10월 20일자 "연봉 1억4000 좌파경력 없는 그, 김정일을 찬미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해당 조종사를 '두 얼굴의 사나이'로 묘사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김정일과 북한 정권을 찬양하는 열렬한 '종북주의자'였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조용한 성격의 믿음직한 베테랑 파일럿이었다"며 "그러나 사이버 공간 속 김씨의 모습은 180도 달랐다"라고 보도한 것.
한 국내 항공사의 20년차 기장 김아무개(44)씨가 종북 사이트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에 가입해 활동한 혐의(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18일에는 가택 압수수색을 당한 것과 관련한 보도였다.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만난 기장 김아무개씨. 김씨는 <조선>과 <중앙> 보도에 대해 자신이 한 일을 왜곡하거나 곡해했을 뿐만 아니라 하지도 않은 일을 한 것처럼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조선과 중앙이 문제삼은 카페 게시글의 경우 현재는 삭제되거나 접근이 차단돼 확인이 어려운 상태다. 아래는 김씨와 일문일답이다.
"가족 사랑하는데 내가 여객기 몰고 월북을?" - <중앙일보>는 당신이 여객기를 몰고 북한으로 넘어갔을 것처럼 보도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상상도 못할 일이다. 가족들이 다 있고, 내가 식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쪽으로 갈 수 있겠나. 요즈음에 종교인들도 정식으로 신청해서 방북들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렇게 불법적으로 갈 이유가 전혀 없다."
- 개인 사이트인 '자유에너지'에 올려놓았다는 북한찬양 문건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리고 그 동기는 무엇인가."우연한 기회에 그쪽 분야를 알게 되어 남과 북이 같은 민족으로서 화해 협력을 이루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해서 알아야 하지 않는가 생각해 글을 올렸을 뿐이다. 문제를 삼고 있는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 카페에 가입해 활동한 것과 관련해서는, 가입한 것은 맞지만 오랫동안 활동한 것은 아니다. 가입한 지 몇 개월 안 되어 의견이 맞지 않아 탈퇴했다.
당시 올린 글 가운데 <조선의 딸들>이라는 시의 경우, 다른 사이트에서 보고 좋은 글인 것 같아 퍼왔을 뿐이다. 정갈하고 순결한 전통적인 여성상을 감동적으로 쓴 짤막한 시였을 뿐, 북한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 국가보안법에 걸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 수사기관이 문제 삼고 있는 다른 글들도 일반인이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범위에서 퍼다 놨을 뿐이다. 개인 사이트를 만든 것은 10여 년 가량 되는데 방문자 수가 하루 한 명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라고 올린 게 아니라 내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놓으려고 올린 것일 뿐이다."
- <조선일보>는 김씨가 올린 글을 인용해 "'SK(South Korea·남한)는 정치범수용소'라는 글에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는 담장과 철책이 없다고 하잖아 … 38선 남녘은 거대한 정치범 수용소, 스스로 깨닫길 바라고 있지'라고 써놓았다. 한국이 오히려 정치범 수용소와 마찬가지라는 말이다"라고 보도했다. 이 의미는 무엇인가."그것은 독일의 소설가 루이제 린저가 1977년 북한을 방문하고 쓴 <또 하나의 조국>에서 인용한 부분이었다.
전체적인 글의 의미는 일본이나 이탈리아 등 민주주의 국가들은 사회당과 공산당 또한 정치정당으로서 여야의 개념으로 존재하는데, 이런 게 진정한 자유가 아닌가 묻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아직까지도 이념논리에 매몰되어 사회당이나 공산당과는 공존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절름발이가 아니냐는 의미로 속마음을 감상문 식으로 적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