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에 그럴 듯하게 판서를 하고 현미경을 준비하니 간단한 수업 준비는 끝이 났다. 아이들의 시선은 늘 그렇듯이 우리를 향해 쏠려 있었다. 파란색의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눈망울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름다웠다. 차례로 아이들에게 식물세포와 동물세포(상피세포)를 관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이들은 곧 자리로 돌아가 공책에 세포 모양과 이름을 잉크가 다 떨어진 펜으로 꾹꾹 눌러 적었다. 말도 통하지 않을뿐더러 우리가 뭐 그렇게 과학적 지식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빽빽이 공책에 적었다. 아이들에게는 이 순간이 소중해 보였다.
이러한 아이들의 선생님은 저절로 신이 나기 마련. 나와 고등학생 봉사자 친구는 전자 현미경을 들고서 아이들에게 달려가 아이마냥 아이들과 전자 현미경을 들여다보았다. 호기심 어린 한 아이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여느 네팔의 아이들처럼 맑고 큰 눈망울을 가진 아이였다. 나도 많이 접하지 못한 전자 현미경이라 신기하기는 네팔 친구들과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전자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즐거워하고 또 무언가를 눌러 적었다. 문득 지난밤이 생각났다.
"부럽지 않은 환경 속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익숙해져버린 행복이 그립다."
지난밤, 홈스테이를 하는 집에서 화장실 등보다 밝지 못한 불빛 아래에서 조막만한 책과 공책을 펴두고 아이들은 숙제를 했다. 잘 읽지도 못하고 영어를 유려하게 적어내지도 못했지만 작은 불빛 아래에서도 아이들은 서로 까르르 웃어대면서 영어 숙제를 열심히 했다.
너무 늦었고 불빛도 어두운데 영어 숙제 그만 하고 그냥 잠이나 자자는 나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아이들은 신나게 숙제를 했다. 변변한 책상조차도 없어서 그냥 흙바닥 위에서 쪼그려 앉아 하는 공부였지만 아이들은 너무나 즐거워보였다. 나는 이미 익숙해져버린 행복. 그 행복이 그리웠다.
"상훈씨, 이런 거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요?"
그 날, 상처를 치료받으려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을 치료해주던 간사님이 나에게 갑자기 물었다. 아이들의 상처를 치료해줄 때면 하나의 노란 티셔츠에 파란 교복 열대여섯쯤은 거뜬히 몰려든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 마다 그냥 제대로 상처를 치료받지 못하는 네팔의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나는 이 갑작스런 질문에 선뜻 '안쓰러워요'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간사님의 갑작스런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나만의 행복의 잣대를 들이대고 아이들을 바라보면 맞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조금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2500미터 위 구름의 부미마타 학교에 잠깐 들렀다가는 봉사자들이다. 2500미터 위의 아이들은 우리가 비춰주는 손전등 없이도 약상자 없이도 부족하지만 행복하게 지냈을 것이고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행복을 느꼈고 웃음을 찾았다. 우리의 잣대를 들이대면 아이들이 한없이 안쓰러워 보이고 행복해보이지 않지만 아이들은 그들만의 잣대로 행복을 찾았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기적인 나는 이미 익숙해져버린 행복이 그리웠다.
덧붙이는 글 | 11. 07. 23 ~ 11. 08. 04 네팔에서 ADRF와
2011.11.10 10:50 | ⓒ 2011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