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위키미디어커먼스
프랑스인의 생활수준이 날로 저하되고 있다.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경제 위기로 많은 중산층이 일상의 생활고를 겪어야 하는 서민층으로 날마다 하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소와 피용 국무총리가 지난 7일 프랑스 재정 긴축안을 발표하였다. 이로써 이미 상당히 조여진 프랑스 서민들의 허리띠가 다시 한 번 조여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프랑스 정부가 내놓은 이번 긴축안의 요점은 2012년에 70억 유로를 추가로 절약하는 데 있다. 그중 18억 유로를 지출 억제로 창출해 내고 나머지 52억 유로는 세금 인상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이와 같은 재정 긴축 정책을 2016년까지 실행할 경우 프랑스 정부는 174억 유로를 확보해 세입과 세출이 비슷한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세율이 높은 프랑스에서 세금 인상은 서민 경제에 치명적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현재 5.5%인 부가가치세율이 7%로 상승할 예정인데 이로써 정부는 18억 유로를 확보하게 된다. 또한 소득세와 재산세 인상으로 17억 유로, 대기업의 수익세 인상으로 11억 유로, 정부에서 지급하는 각종 사회수당 인플레이션 가산 책정 동결로 400만 유로 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출 억제 방편으로는 국가 재정과 질병 보험의 긴축을 통해 12억 유로를 확보할 계획이다.
이는 결국 지금까지 사회보장 관련 비용을 부담해온 정부가 서서히 손을 들면서 뒤로 물러난다는 얘기다. 또한 그동안 정부가 부담했던 비용을 이제는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다. 결국 사회보장 제도가 부실해진다는 얘긴데, 문제는 가뜩이나 얇아진 프랑스 서민들의 지갑에서 나올 수 있는 돈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 달을 버티기 힘든 프랑스인들 정해진 한 달 수입으로 방세와 각종 세금을 내고, 남는 것으로 먹고살기 힘들어진 프랑스인들에게 한 달은 너무나 긴 기간이다. 불어 표현으로 "매달 말 생기는 경제적 부족을 메우기 위해" 퇴근 후에 작은 돈벌이가 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가 늘고 있다. 또한 파장을 기다렸다가, 상한 과일과 야채를 주워가는 사람들 혹은 슈퍼마켓 앞의 쓰레기통을 뒤져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찾는 프랑스인도 늘어나고 있다. 불과 10~20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현재 경제 선진국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존재했다. 그러나 예전에는 의도적으로 혹은 어떤 특정한 개인 상황으로 인해 노동을 부정하거나 노동에 근접할 수 없었던 일부 아웃사이더들에게 한정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활고가 모든 평범한 사람에게 파고든 상태다.
남들 보기에는 떳떳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한 달 내내 힘들게 일해서 한 달을 지탱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 프랑스의 현실이다. 가장 안정적인 직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교사들 중에는 고장 난 컴퓨터를 새로 바꿀 경제적 여유가 없어 컴퓨터 없이 지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당연히 내야 할 세금을 내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특히 11월은 주민세, 사회세, TV 수신료 등 각종 세금과 공과금을 내야 하는 버거운 달인데 이것들을 다 낼 여유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 일부 세금을 차후에 낼 수 있게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할 수가 있는데, 이렇게 요청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세금만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출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방세를 내지 못하는 프랑스인도 점점 늘고 있다. 프랑스인의 지갑이 점점 얇아진 2001년에서 2010년까지 10년 사이에 파리의 아파트 임대료는 50% 상승했고 파리와 인접한 근교는 43%, 조금 더 먼 곳은 42% 인상했다고 Olap(파리지역 임대료 관측소)이 밝혔다. 같은 기간에 18.7% 상승한 물가지수에 비해 임대료 인상률이 훨씬 높았다.
프랑스 임대료는 해마다 물가지수를 바탕으로 일정한 선까지만 인상할 수 있도록 제한되어있지만 이것은 세입자가 동일인일 경우에 해당한다. 세입자가 바뀔 경우에는 주인 맘대로 방세를 올릴 수 있게끔 되어 있다. 보통 한 세입자가 떠나고 나면, 주인은 집을 수리해 새로운 세입자를 구한다. 이때 집주인은 수리비용을 가산한 새로운 방세를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임대료 인상률이 물가지수 인상률을 훨씬 웃도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얇은 지갑이 날아가는 임대료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몇 달 방세가 밀리게 되면 방을 비워달라는 주인의 편지가 날아오게 된다. 2008년과 2010년 사이에 시에서 소유한 건물의 임대료 체납자율이 5.4%에서 6.7%로 증가하였다. 2009년에 방세를 내지 못해 법적인 절차를 거쳐 집에서 쫓겨난 수가 10만6938가구에 이른다. 이는 10년 사이에 3분의 1이 증가한 수치이다. 또한 경찰에 의해 쫓겨난 가구가 2000년에서 2009년 기간 동안 한 해에 1만 가구에 이르는데, 이것은 이전보다 두 배나 증가한 수치이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10월 31일 '임대료 체납자 증가'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이에 따르면 파리 북서쪽 근교 클리쉬에 사는 한 젊은 부부는 아이 둘과 함께 면적 21제곱미터의 작은 스튜디오(원룸)에서 산다. 이들 부부가 한 달에 버는 소득이 1300유로(208만 원)인데 방세로 나가는 비용이 659유로(105만4400원)이다. 방세가 소득의 절반이 넘는다는 말이다.
또한 29세의 직장 여성인 바네사는 파리의 부자 동네인 16구에 있는 면적 27제곱미터의 스튜디오에 살고 있다. 개인 화장실이 없어 복도에 있는 공용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방세가 800유로(128만 원)이다.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바네사의 월급은 1700유로(272만원)로 소득의 거의 절반이 방세로 나간다. 당연히 바네사는 옷도 충분히 사 입지 못하고 문화생활도 불가능하며 값비싼 고기나 생선을 사는 일도 드물다. 휴가도 남쪽 지방에 사는 부모님 집에서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은 매달 들어오는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비정규직마저 잃을 경우 어떻게 방세를 감당해야 할지 바네사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작년 6월 여론조사 기관인 TNS Sofrds가 행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 5명 중 한 명이 매달 방세를 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 35년 사이에 프랑스인들의 소득에서 방세로 나가는 부분이 2배로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이런 수치가 나올 만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