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밭에서 회의 했다고 징계?..."너무한다"

[인터뷰] 구조조정 반대 '잔디밭 회의' 때문에 징계위 소집된 중앙대 학생들

등록 2011.11.18 18:18수정 2011.11.2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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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중앙대 학생 3인이 학교의 구조조정 계획에 반대하는 원탁회의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소집됐다. 이 원탁회의는 지난 달 17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잔디 광장에서 진행됐고 4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중앙대학교는 2008년 두산그룹이 인수하면서면서부터 대학의 과들을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그 결과 지난해 18개의 단과대가 10개로, 77개의 학과가 46개의 학과로 통폐합됐다. 또한 현재 서울의 본 캠퍼스와 안성의 분교를 통합하려 하고 있다.

왜 잔디광장에서 회의를 진행했을까. 사실 그들은 불가피하게 잔디 광장에서 회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 측에서 원탁회의를 위한 교내 건물을 대관해주지 않아 교내 정문 앞의 잔디밭에서 원탁회의를 진행한 것이다.

그런데 11월 2일 중앙대는 문서를 통해 "다수의 학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회의에 참가했던 3명의 학생들에게 17일 오후 3시 징계위 참석을 요구했다.

17일 열린 징계위에서 학생들은 그 구체적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허가 없이 학교 시설물을 사용했다는 점', '면학 분위기를 해쳤다는 점', '부착물을 임의로 붙였다는 점', '외부인사를 초청했다는 점' 등이 그 이유였다. 원탁회의 당시 박자은 한국대학생연합 의장이 참여하여 연대 발언을 했고 코리아스픽스라는 회사가 진행에 도움을 줬다고 한다.

잔디밭에서 원탁회의 했다고 징계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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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학생 백시진(왼쪽), 김창인(오른쪽)씨 ⓒ 박의연


징계위에 회부된 학생들은 김창인(철학과 09), 안성원(철학과 09), 백시진(사회복지 09)씨다. 15일, 그들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 왜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원탁회의를 진행하게 됐나.
김창인 : "학생들의 의견은 전혀 수렴하지 않은 채 진행된 구조조정에 대해 답답해하는 학우들과 함께 터놓고 토론하고 싶었다. 올해에도 이어진 가정교육과 폐과, 안성캠퍼스와의 통폐합 등, 학생들은 어느 날 벼락처럼 일방적인 학교 측의 통보를 들어야만 했다."

백시진 : "항의하고 제기해도 학생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이 되지 않는 답답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원탁회의를 통해 의견을 공유하고 싶었다."

- 회의는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안성원 : "40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지만 학교 측의 탄압이 거셌다. 원탁회의를 홍보하려고 차려놓은 천막을 강제로 철거해갔고 원탁회의를 할 경우 징계를 내리겠다고 협박했다. 행사 당일에는 행사 시작 전부터 상당수의 교직원들이 행사장에 찾아와 원탁회의를 열지 못하도록 협박했다. 심지어 회의장 강제 철거 운운하더니 행사가 시작되자 주변에서 끝날 때까지 지켜봤다."

김창인 : "이러한 학교 측의 방해로, 오고 싶었던 친구들, 교수님들 중 상당수가 참석하지 못했다."

- 회의에서는 어떠한 내용들이 토론됐는가.
백시진 : "토론의제1은 대학본부의 구조조정, 무엇이 문제였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참석자의 50%가 교육의 공공성을 저버린 기업화, 자본화된 대학재단이라고 대답했고, 40%가 학생과 교수의 의견이 미반영된 민주성 결여와 소통 부족이라고 대답했다.

토론의제2는 앞선 문제들의 원인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참석자의 36%가 재단의 과도한 상업화 20%가 저항하지 않는 학생들의 수동적이고 이기적인 문화라고 대답했다. 토론의제3으로 어떻게 문제들을 해결할지에 대해 논의를 했다. 이에 대해서는 참가자들이 더 많은 학우들을 만나 의견을 모아내자고 결의를 하며 마쳤다."

"학생들의 꿈이 점수로 매겨지고 있다"


- 원탁회의 이후 징계위 출석 요구를 받았을 당시의 심정을 말해달라.
김창인 : "사실 우리 세 명을 징계위에 소집한 근거는 미약하다고 생각한다. 주최 단위는 우리 세 사람을 넘어 훨씬 많았다. 특히 백시진 당시 총여학생회장은 그저 행사 당일 날 참석한 정도였다. 이러한 학생에 대해 징계를 내린 것으로 보아 특정인을 의식한 징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안성원 :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나서는 화도 났지만 역시 '두산답다'는 생각이 훨씬 컸다. 작년에도 그랬다. 자신에게 비판을 가하거나 말을 듣지 않는 세력은 무조건 찍어눌러버리는 전형적인 대기업식 관리. 마치 노조를 짓밟는 그림과 흡사하다. 주변 학우들은 역시 '이건 너무한다'는 생각을 가장 크게 갖고 있다."

-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대표하여 그 이유를 말해달라.
백시진 :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 교육이란 기업가들의 이윤추구 행동과 달라야 한다. 교육을 담보로 기업을 인수합병 하듯 할 수는 없다. 만약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최소한 학생들과의 상의는 거쳐야 한다고 본다. 돈 되는 학문을 빼고는 다 통폐합을 하고 있다. 학생들의 꿈이 점수로 매겨지고 있다."

- 어떤 방향으로 사건이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백시진 : "학생들의 힘이 모여야 한다. 일방적이고 철저히 이윤 중심, 평가 중심인 대학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조용히 있으면 절대 변화는 있을 수 없다. 우리에 대한 징계는 비단 우리 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를 본보기로 삼아 절대 학교의 방침을 어기지 말라는 협박이다. 학생들이 모이면 두산과 학교본부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

한편, 17일 열린 징계위의 결과는 약 일주일 후에 통보될 예정이다.
#중앙대 #구조조정 #원탁회의 #백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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