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버려진 자동차
김수복
이십대 초반 시절부터 북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었던 후배 녀석은 그 즈음 십오 년 넘게 끌어온 꿈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포기라기보다 빼앗겨 버렸다는 말이 더 옳은지도 모르겠다.
북 카페 운영에 관한 꿈이 어찌나 크고 깊었던지 녀석은 담배, 술, 오락 등등 삶과 직결되지 않는 모든 행위를 별나라의 일로 돌린 채 눈을 꾹 감고 돈을 모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마친 이후부터 모아온 돈이 이십 대 중반에 벌써 시골에 논을 사도 열 마지기는 삼직한 액수가 되었다. 이것이면 그런대로 시작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장소를 물색할 즈음 외사촌 형님이 돈 냄새를 맡았다고나 할까, 하여튼 급하게 석 달간만 높은 이자를 쳐 줄 테니 빌려 달라고 했다.
광주에서 유통업 경험을 쌓은 외사촌 형님은 그 무렵만 해도 군소도시에서는 유일한 대형 마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까지 해서 종업원만도 이십여 명을 넘나드는 그 무렵의 마트는 영업이익이 제법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해의 그 달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해서 급전이 필요하게 되었다나 어쨌다나. 사업을 하다 보면 그런 일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후배 녀석은 외사촌 형님의 그 말씀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지금 당장 쓰지 않는 돈이 있으면서도 없다고 시침 뚝 떼고 눈이나 깜빡거리고 있어야 할 이유 또한 발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재주도 없었다.
그렇게 돈을 빌려간 외사촌 형님께서는 약속한 석 달이 지나고 육 개월이 지나도 돌려줄 줄을 몰랐다. 기다리다 못한 후배가 결국 찾아갔을 때 외사촌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돈은 빌린 게 아니라 투자를 받은 것이라는, 그러므로 외사촌 형제가 이제부터 힘을 합해 열심히 사업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돈을 빌려주며 누구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자랑을 하면서 빌려준 것은 아니었다. 외사촌일망정 형제간에 돈을 주고받으면서 무슨 각서나 차용증서 같은 것을 쓰는 것 또한 면구스러워서 얘기도 꺼내보지 않았다. 외사촌 형님이 그 돈은 빌려간 것이 아니라 투자를 받은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 돈의 성격은 그대로 투자금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후배 녀석은 하루아침에 마트의 주주가 되었고, 몇 달 뒤에는 아예 정식으로 동업자 등록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마트 부사장에서 신용불량자가 되기까지대외적으로는 총무 과장이었다. 과장님, 과장님, 소리를 하루에도 수백 번씩 들었다. 내부적으로는 부사장이었다. 부사장님, 부사장님, 하는 소리를 금융권 인사들로부터 한 달에 몇 번씩 들었다. 거의 모든 물류관련 서류에 총무과장의 서명이 들어갔고, 운영자금이나 사업 확장 자금을 신규로 대출받을 때마다 부사장의 서명이 들어갔다.
밖에서는 과장이요, 안에서는 부사장 역할을 해야 하는 생활이란 당연하게도 눈코뜰새 없음의 연속이었다. 시간은 일 년이 하루처럼 흘러갔다. 이십대를 훌쩍 넘어 삼십대도 끝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지만 그 연령대에 흔하디흔한 연애 한 번 해볼 틈조차 갖지 못했다. 그렇다고 돈을 모은 것도 아니었다. 동업자 생활 십 년이 넘도록 애초의 '투자금'을 회수하기는커녕 임대아파트 보증금이나 간신히 납부했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마트의 재정상황은 계속 내리막을 달렸다. 손님이 줄어든 것도 아닌데 부채는 계속 늘어났고 수익은 모두 이자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하루 사장인 외사촌 형님은 사업포기 선언과 함께 종적을 감춰 버렸다. 사업체는 즉각 채권자들 손으로 넘어갔다. 그토록 허무하게, 그토록 속절없이, 그토록 어처구니없이 끝나는 것인가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끝난 게 아니었다. 후배 녀석은 자신의 이름으로는 핸드폰 한 개 가질 수 없는 신분이 되고 말았다. 가장 먼저 통장의 예금인출이 정지되었다. 그 다음은 임대아파트 보증금이 압류되었다. 그 다음은 자동차가 압류딱지와 함께 끌려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신용불량자로 공식 데뷔했다.
아직은 삼십대 후반이었다. 젊음이라는 무기가 아직은 있었다. 결혼을 한 적이 없으니 가족도 없었다. 그야말로 마음먹기에 달린 상황이었다. 친구들 집을 떠돌며 두 달 정도 신음하던 후배 녀석은 이를 악물고 우유 배달을 시작했다. 두 달 뒤에는 제과점 빵배달을 추가했다. 그리고 그 수입으로 요리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일 년 남짓 밤잠 안 자고 눈을 크게 뜬 결과로 한, 중, 일 세 개의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제 됐다. 다시 할 수 있다. 사람이란 역시 대단한 존재로구나.
이중 삼중의 빚쟁이가 되고만, 후배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