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 기른 긴 생머리를 자르며...

긴 머리 가지신 분, 우리 함께 기증해요

등록 2011.11.21 09:24수정 2011.11.2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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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봄날  머리를 기르려고 결심하고 ...
2009년 봄날 머리를 기르려고 결심하고 ... 송춘희

머리를 감고 나면 수건으로 탁 탁 머리를 털고 뒤로 넘겨 빗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  2009년 가을부터 기르기 시작한 머리는 처음엔  잘 자라더니 길이가 길어질수록 점점 자라는 속도가 느려졌다. 거울을 들고 뒤로 내 머리를 바라본다. 지난 몇 달간 자라는 속도가 너무 느렸지만 이젠 제법 어깨를 훌쩍 넘어 25센티미터를 자르고도 단발머리가 될 수 있겠다. 중년의 아줌마가, 그것도 흰머리도 하나둘씩 생기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머리를 기르는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내 친구 B의 따뜻한 마음을 본받아서다. 그녀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전형적인 백인여성이다. 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거나 땋아 다닐 만큼 긴~ 머리가 상징이었던 그녀가 어느날 숏커트를 하고 나타났다. 모두들 관심이 집중됐다.

"혹시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으세요?"

"애인하고 헤어졌나?" 하며 장난을 치는 친구들도 있었다.

"머리 긴 거 정말 예뻤는데…."

그 모든 질문을 웃어 넘기며 그녀가 남긴 한마디는 "암환자 아이들에게 기부했어!"였다.


금발인 그녀는 그해까지 3년간 기른 머리를 암환자 아이들을 위해 아무런 미련 없이 과감하게 머리를 자르고 미국 가발 만들기 캠페인을 펼치는 단체에 보냈던 것이다. 놀람을 금치 못하는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자기도 더 늦기 전에 해봐. 한국에도 그런 거 있을 거야!"


 2010년 여름  머리를  한창 기르던 때
2010년 여름 머리를 한창 기르던 때 송춘희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뒤졌다. 그녀의 말대로 한국에서도 소아암환자들을 위해 가발을 만들어 주는 단체가 있었다. 날개달기 운동본부! 그리고 가발을 만드는 하이모에서는 가발을 가공하는 과정을 함께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25센티미터 길이의 머리카락을 10명이 보내오면 한 개의 가발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래! 좋아 나도 해보는 거야 내 나이 43세! 앞으로 50세, 60세가 될 텐데 그때 긴~ 생머리를 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추할 거고 일생에 한 번 마지막일지도 모르지만  길러보는 거야!'

그리고 2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긴 생머리가 어울린다던 사연을 모르는 친구들도 하나둘씩 "이젠 자를 때도 되지 않았냐?"며 은근히 마음에 안 든다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발을 만들기 위한 머리는 퍼머를 해서는 안 된다. 머리카락이 상하기 때문에 뜨거운 바람으로 드라이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어떨 때는 빨리 외출해야 하는데 머리를 감는 것도 힘들지만 말리는 것이 더 힘들 때가 있다. 또 더운 여름에는 늘어뜨리면 너무 더워서 항상 머리를 올리거나 묶어야 해서 머리가 수도 없이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가장 좋은 머리카락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2년 동안 미용실에서 퍼머도 하지 않았고 뜨거운 바람으로 드라이를 하지도 않았다. 그 반대로 머릿결을 좋게 하는 영양제를 바르고 가끔 미용실에서 비용을 들여 관리를 받기도 했다.

아침 저녁으로 불기 시작하는 찬바람이 이젠 제법 겨울을 느끼게 하는 지난 토요일 저녁! 나는 미용실에 미리 예약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처음 마음 먹었을 때처럼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그동안의 시간들이 생각나서 왠지 가슴이 떨렸다.

머리 컷트가 시작되었다.

"싹둑! 싹뚝!"

저절로 작은 한숨이 나왔다.

'휴~ 이제 얼굴 미워지면 어쩌지?'

눈을 꾸욱 감았지만 마음이 너무 떨린다.

"네 끝났습니다."

미용사 언니의 말이 끝나자 마자 눈을 번쩍 떴다. 아… 익숙하지 않은 내 모습이 거울을 통해 보인다. 아무리 봐도 내가 아닌 것처럼 어색했지만 잘린 머리카락을 묶어서 건네 받으니 마음이 아련해졌다.

나는 아침이 되면 사연을 쓰고 이 머리카락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책과 함께 가발 만들기 단체에 보낼 것이다. 어린 나이에 암으로 고통받는 어린 환우들이 내가 보낸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을 쓰고 좀 더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면. 그것으로 작은 희망이라도 가지게  된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2011년 11월 머리를 자르고  낙엽이 떨어진 아파트 앞에서 머리를 자르고
2011년 11월 머리를 자르고 낙엽이 떨어진 아파트 앞에서 머리를 자르고 송춘희

덧붙이는 글 | 가발을 만들어 소아암 환우에게 기증하고 싶으신 분은" 날개달기 운동본부"로 연락하시면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 날개달기운동본부 wingshang.new21.org


덧붙이는 글 가발을 만들어 소아암 환우에게 기증하고 싶으신 분은" 날개달기 운동본부"로 연락하시면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 날개달기운동본부 wingshang.new21.org
#날개달기 운동본부 #하이모 #가발만들기 #소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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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입니다.세상에는 가슴훈훈한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힘들고 고통스러울때 등불같은, 때로는 소금같은 기사를 많이 쓰는 것이 제 바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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