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여름 머리를 한창 기르던 때
송춘희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뒤졌다. 그녀의 말대로 한국에서도 소아암환자들을 위해 가발을 만들어 주는 단체가 있었다. 날개달기 운동본부! 그리고 가발을 만드는 하이모에서는 가발을 가공하는 과정을 함께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25센티미터 길이의 머리카락을 10명이 보내오면 한 개의 가발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래! 좋아 나도 해보는 거야 내 나이 43세! 앞으로 50세, 60세가 될 텐데 그때 긴~ 생머리를 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추할 거고 일생에 한 번 마지막일지도 모르지만 길러보는 거야!' 그리고 2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긴 생머리가 어울린다던 사연을 모르는 친구들도 하나둘씩 "이젠 자를 때도 되지 않았냐?"며 은근히 마음에 안 든다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발을 만들기 위한 머리는 퍼머를 해서는 안 된다. 머리카락이 상하기 때문에 뜨거운 바람으로 드라이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어떨 때는 빨리 외출해야 하는데 머리를 감는 것도 힘들지만 말리는 것이 더 힘들 때가 있다. 또 더운 여름에는 늘어뜨리면 너무 더워서 항상 머리를 올리거나 묶어야 해서 머리가 수도 없이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가장 좋은 머리카락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2년 동안 미용실에서 퍼머도 하지 않았고 뜨거운 바람으로 드라이를 하지도 않았다. 그 반대로 머릿결을 좋게 하는 영양제를 바르고 가끔 미용실에서 비용을 들여 관리를 받기도 했다.
아침 저녁으로 불기 시작하는 찬바람이 이젠 제법 겨울을 느끼게 하는 지난 토요일 저녁! 나는 미용실에 미리 예약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처음 마음 먹었을 때처럼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그동안의 시간들이 생각나서 왠지 가슴이 떨렸다.
머리 컷트가 시작되었다.
"싹둑! 싹뚝!"저절로 작은 한숨이 나왔다.
'휴~ 이제 얼굴 미워지면 어쩌지?'눈을 꾸욱 감았지만 마음이 너무 떨린다.
"네 끝났습니다." 미용사 언니의 말이 끝나자 마자 눈을 번쩍 떴다. 아… 익숙하지 않은 내 모습이 거울을 통해 보인다. 아무리 봐도 내가 아닌 것처럼 어색했지만 잘린 머리카락을 묶어서 건네 받으니 마음이 아련해졌다.
나는 아침이 되면 사연을 쓰고 이 머리카락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책과 함께 가발 만들기 단체에 보낼 것이다. 어린 나이에 암으로 고통받는 어린 환우들이 내가 보낸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을 쓰고 좀 더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면. 그것으로 작은 희망이라도 가지게 된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