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화제로 소실되기 전 숭례문에 걸려있던 편액. 호방하고 자유분방함이 물씬 풍긴다. 양녕대군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이정근
뜻밖의 연타에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머쓱해진 수양이 화제를 바꿨다.
"편액을 누가 쓰셨는지 아십니까?""그야 숙부님의 백부님이시죠."정확히 알고 있다. 수양의 백부라면? 세종의 형님 양녕대군이라는 뜻이다.
"세상에는 자리에서 내려오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를 쓰고 오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욕심이 크면 오르려는 데 목적을 두고 욕망이 크면 자리에 연연하겠지요."혼잣말처럼 읊조리던 임금이 고개를 들었다. 목멱산 너머 관악산이 어슴푸레 시야에 잡혔다. 아우 충녕대군에게 세자 자리를 내준 양녕대군이 한동안 은거했던 곳이다.
"연주암에서 경복궁을 내려다보던 심정이 어떠하셨습니까?"가까이 있다면 묻고 싶었지만 이 자리에 없다. 효령대군은 바로 눈앞에 있지만 정치와 담을 쌓은 양녕은 멀리 있다. 폐위인지 양위인지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자리를 내준 것뿐인데 죄인이 되어 팔도를 떠다니고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유람 중이다. 아마 묘향산쯤에 있을 것 같다. 자신에게도 그러할 날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