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혁명의 딜레마... 예견되는 폭풍의 우려

등록 2011.12.02 11:44수정 2011.12.0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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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의 일상, 그리고 혁명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움

카이로 시민들의 생활은 여느 날들과 다름이 없다. 사람들은 아침 일찍 눈을 뜨고 만원버스나 콩나물시루같은 메트로에 실려 직장으로 향한다. 오전 열 시쯤엔 티를 마시고 오후 네 시가 되기 전에 하던 작업을 마무리한다.

타흐리르광장의 혁명가들에게도 오후 네 시 이전까지의 시간들은 여느 시민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오전 열 시에는 노천카페에 앉아서 티를 마시고 네 시가 되기 전에 점심식사를 한다. 그들 중 상당수는 낮에 직장에 다닌다.

평일 한낮의 타흐리르광장이 평화로워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덥고 건조한 이집트의 기후는 사람을 나른하게도 하고 게으르거나 늘어지게도 만든다. 사람들은 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심신이 피로해지는 것에 질색한다. 이집트 국민들은 지나친 긴장의 연속에 이미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혁명. 내 귀에 익숙한 단어는 애초에 아니었다. 국사책 어디에선가 세계근대사 어디에선가 그저 외워야 했던 별의미 없는 단어였을 뿐이다. 그 혁명이 올들어 하루하루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도 비단 활자로서가 아니라 피와 죽음, 구급약, 구호물자, 투쟁, 순교 등 준엄한 회초리 같은 연관 단어들을 물고서 말이다.

혁명의 딜레마

외신은 타흐리르에서 젊음과 목숨을 내어놓은 이집트 청년들을 자극적인 소재로 포장하여 보도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실상을 들여다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들은 밤을 새워 투쟁을 하고 낮에는 자신과 가족의 빵을 벌기 위해 일하든지 가족의 미래를 위해 학업을 지속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모든 행위의 목적은 풍요가 아니라 생존이다. 구직은 어렵고 학비는 벅차며 빵값은 나날이 치솟고 있다.


오늘날 모든 이집트인들은 자유를 꿈꾼다. 과거의 질식상태로 돌아가는 것따위는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혁명 후 이집트 가계각층에서는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들이 주를 이루었다. 자유를 쟁취하는 동안 공장들은 문을 닫았고 회사들은 업무시간을 단축했으며 외국자본은 보따리를 쌌다.

이집트인들은 자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믿는다. 그 거류외국인들이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산업을 활성화시키고 국내 일자리를 늘린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덕분에 이집트 경제의 한쪽 축이던 관광업이 제일 먼저 무너졌다. 고고학과와 관광학과 출신들과 함께 호텔 렌트카 음식료점 수출용 토산품점 및 생산업 펠루카종사자 마차종사자 크루즈업계 철도청 항공사 소비가 줄어든 농수축산업계, 그리고 이집트 관광청이 직격탄을 맞았다.


자신들이 요구했던 '전보다 나은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일터가 작동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데 외국인들을 성급하게 내보내고 최소한의 치안마저 보장이 되지 않는 이집트에서 위에 열거한 국내 산업이 다시 기지래를 켤 날을 요원해보인다.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으니 높은 급료를 받을 확률도 줄어들었다. 실제로 알렉산드리아 부근 자유무역지대에서는 혁명 후 자진 폐업한 공장이 6백여 곳이나 된다.

이집트 전역을 살피면 수천 개의 사업체가 문을 닫았다. 국가적으로 전체 산업 질식의 위험성이 드러났다. 어렵더라도 스스로의 자원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보였던 당국은 마침내 IMF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어렵게 치른 혁명을 두고 타흐리르의 혁명가들이 딜레마에 빠진 이유이다. 자유가 이전보다 더한 빈곤을 몰고 온 것이다. 

예견되는 폭풍의 우려

타흐리르의 혁명가들은 정부의 수장이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갈아치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태도이다. 과도정부는 모두 전정권의 인물들로 채워져 있어서 혁명가들의 끊임없는 견제를 받고 있다. 군최고위원회는 구시대 위정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줄줄이 대기 중인 선거들을 완성시켜야 하며 치안 강화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탄타위 군최고위원장이 물러난다고 해서 탄타위시대보다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야권은 통합하지 못하고 이집트에 남아 있는 '경험 많고 재능 있는' 인재들은 거의 전정권의 녹을 먹었다. 이에는 타흐리르의 혁명가들도 긴장에 지친 국민들도 시원하게 답을 내놓을 수 없다.

'무바락만 아니면 돼'에서 '무바락정권의 인사들은 절대로 안돼'로 강경입장을 취한 혁명가들과 종교지도자들의 다음 장기알이 어디에 놓일런지 정확히 추론해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렇듯 야권이 갈팡질팡하는 동안에 군최고위는 착실하게 다음의 행보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차후 이집트는 강력한 민주주의 공화국이 아닌 역사상 전무후무한 경찰국가가 될 수도 있다.

이틀 전 밤 타흐리르광장 부근에서 하루하루 생업을 이어가던 노점상들과 이들을 시내에서 치우려는 경찰들간의 유혈충돌이 있었다. 노점상들은 한 사회 서민층의 가장 근간이 되는 존재들이다. 혁명가들이 아닌 일반서민들에게도 경찰이 무기를 들었다. 나는 그 사실이 몸서리치게 두려운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의 <마담 아미라의 이집트여행> 카페에도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의 <마담 아미라의 이집트여행> 카페에도 실립니다.
#이집트혁명 #카이로의봄 #서주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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