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행차하시는 날히잡으로 머리를 둘러 감았지만, 여학생들의 발랄함은 결코 가릴 수가 없다.
박경
내가 중1 때, 1980년이었다. 한동안 우리는 뻔질나게 거리로 불려나갔다. 학교가 아닌 공덕동 길거리로 등교를 해야 했다. 극성 맞은 담임들은 거기까지 출석판을 들고 나와 거리에서 출석 체크를 하곤 했다.
그 길은 김포공항에서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길, 2, 3초 만에 휙 지나가버리는 국빈들을 환영하기 위해 교복 입은 우리들은 손에 태극기를 든 채로 몇 시간을 지루하게 기다려야 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우리는 국기를 흔들어댔다. 그저 수업을 빼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철없던 시절이었다.
그것은 꽤나 자주, 여러 번 반복되었고, 수업을 건너뛰는 재미조차 심드렁해질 무렵, 학생주임은 전교생 앞에, 짠~하고 나타났다, 어깨에 20인치 TV만한 비디오 카메라를 얹은 채. 대통령 각하께서 하사하셨단다. 허구헌날 불려 나가, 어린 학생들까지도 당신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라는 걸 국빈에게 보여 준, 우리의 노고에 대한 대가란다.
어라,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받는다더니, 고생한 건 우리인데, 왜 아무 쓰잘데기없는 비디오 카메라를 주냔 말이다. 우리들한테 떡볶이라도 쏴야지, 엄마 생일날 생활용품 선물한 격이지, 억울하다 싶었다. 딱 고만큼, 세상 물정 모르는 우리들에게 그땐 딱 고만큼의 억울함이었다.
이집트 여학생들은 카메라를 든 나를 향해 해맑게 웃고 있다. 재깔거리는 소녀들의의 수다가 생기발랄하게 공기 속으로 퍼져 간다(잠시 후에 알게 된 일인데, 그 사진 속의 주인공은 영부인이시란다. 그날은, 30년 독재 정권의 무바라크의 아내가 아스완으로 친히 납시는 날. 그 소녀들은 30년쯤 후에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펠루카 선착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