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전편액
이정근
사자 일행이 왕비 집에 도착했다. 허나, 이제는 낳고 자랐던 송현수의 집이 아니다. 사가에서 자란 여자가 궁에 들어가 내명부 수장노릇을 하려면 궁중 법도를 익히고 배워야 한다. 궐에서는 말 한마디, 걸음걸이 하나 까지도 다르다. 책비를 마친 왕비는 효령대군 사저에 들어가 왕실 법도를 배우고 있었다.
뿐만 아니다. 후궁으로 간택된 예원군사 김사우의 딸은 숙의로 봉해져 밀성군 이침의 집에서 왕실법도를 익히고 있었고, 전 사정 권완의 딸 역시 숙의로 봉해져 대사헌 권준의 집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왕비를 시종하여 궁으로 들어가기 위해 효령대군 집에 집결하여 대기하고 있었다. 사자 효령대군은 자기 집에서 왕비를 모셔가는 입장이 되었다.
효령대군 사저는 사람으로 넘쳐나고 골목길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임금의 누이 경혜공주와 문종 후궁 양씨 소생 경숙옹주는 물론 종친과 문무백관 1품 이상의 부인들이 총 출동하여 효령대군 사저로 모여들었다. 왕비를 봉영하기 위해서다. 흥인문 밖 효령대군의 저택은 말 그대로 잔칫집이었다.
궁중법도 교육장 효령대군 사저는 잔칫집 분위기말에서 내린 사자가 막차에 들어가 교서를 진열했다. 뒤이어 경창부 소속 관원들이 대문밖에 의장(儀仗)을 도열했다. 사복시 윤은 왕비가 타고 갈 가마를 대문 밖에 대기하고, 6상궁 이하 여관(女官)들은 내문에 들어가 시위했다.
적의(翟衣)를 갖춰 입은 왕비가 내문 밖 사당 앞에 섰다. 그 뒤에 조복을 갖추어 입은 송현수와 그의 부인이 배석했다.
"신 효령대군 이보는 교서를 받들어 왕비를 모시려 합니다."정사 효령대군이 정중하게 읍했다.
"신(臣)이 삼가 전교를 받들겠습니다."송현수가 나아가 네 번 절하고 북향하여 꿇어앉았다.
"정사 효령대군과 부사 호조판서가 예를 갖추어 왕비를 맞이하게 한다."
교서 선포를 마친 효령대군이 송현수에게 교서를 건네주었다. 송현수가 뒷걸음으로 물러가 교서를 좌우에게 주고 그대로 북향하여 꿇어앉았다. 부사로부터 기러기를 전해 받은 효령대군이 송현수에게 주었다. 송현수가 기러기를 받아 좌우(左右)에게 주고 북향하여 섰다.
"주상 전하의 명을 받아 사자 효령대군이 교서를 선포하고 예를 갖추어 맞이하시므로 외람되게 소신이 대례를 받드니 송구하고 두렵습니다. 삼가 옛날의 전장을 이어받아 엄숙히 전교(典敎)를 받들겠습니다."낭독을 마친 송현수가 전교관에게 전함을 건네주었다. 전함을 받든 사람이 먼저 나가고 그 뒤를 봉례랑의 인도에 따라 사자가 나갔다. 뜰 서쪽에 서서 국궁(鞠躬)하고 서있던 송현수는 전함이 집을 빠져 나갈 때 까지 허리를 구부리고 서있었다. 이어 상궁이 왕비를 인도하여 배위(拜位)에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