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방사가의 신방. 국립민속박물관
이정근
당황한 신부가 허리를 뒤로 젖혔다. 신부의 손을 따라가던 신랑의 어깨가 신부의 가슴에 닿았다. 그때였다.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촉감이 어깨를 타고 온몸에 퍼졌다. 전율이었다. 그것은 살도 아니고 근육도 아니고 뼈도 아니었다. 봉긋했지만 밀려들어 가고 밀려들어 가면서도 다시 밀어내는 오묘한 둔덕이었다.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미지의 땅. 그렇지만 향수를 자아내는 마력의 대지. 그곳은 가보고 싶었지만 가볼 수 없었던 곳.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 같았지만 찾아보면 없는 곳. 얼굴을 묻어보고 싶은 계곡에 살짝 피워 오른 소담스러운 봉우리였다.
어린 임금에게는 이성에 대한 기억이 없다. 생모 현덕비는 자신이 태어난 바로 이튿날 세상을 떠났고 단 하나의 혈육 경혜공주는 그의 나이 열 살 때 영양위에게 시집갔다. 유모의 손에서 성장했지만 아릿한 여성에 대한 추억이 없다. 정에 굶주렸고 혈육에 배고팠던 것이다.
몸으로 직접 성교육하는 상침궁녀세자는 시강원에서 경전과 대학연의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보정(保精)이라는 성교육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생리현상에 대한 교과서적인 교육일 뿐 실전에 약하다. 사가에서는 춘화첩(春畵帖)으로 보충수업을 받지만 궁에서는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세자의 몸이 성숙해지면 몸으로 부딪치며 성교육을 담당하는 궁녀로부터 집중 교육을 받았다. 상침(尙寢)소속 그 궁녀는 교육이 끝나면 6개월간 궁에서 머무르다 조용히 사라졌다. 그 기간은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시간이다. 이 때 임신 징후가 포착되면 말끔히 정리하고 떠나는 건 기본이다. 그리고 궐밖에 나가 입을 뻥긋하면 죽음이다. 신랑은 그 기회마저 없었다. 부왕이 갑자기 붕어했고 부랴부랴 등극했기 때문이다.
몽롱한 정신을 수습한 신랑이 신부의 옷고름을 잡았다. 그러나 신랑의 손은 더 이상 나가지 못했다. '오늘은 신부의 옷을 벗겨주는 날이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소서'라고 상궁으로부터 누누이 얘기를 들었지만 처음 본 사대부집 처자의 옷을 벗긴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자가 해서는 안 돼는 일이야. 있을 수 없는 일이지...그런데 왜 날더러 신부의 옷을 벗기라 할까?"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머리가 복잡하다. 혼란이 왔다. 옷고름을 잡은 신랑의 손이 더 나가지 못하고 멈춘 상태로 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