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학생들이 괘씸해서 이러시는 거죠?

본관점거 학생 징계 시사한 대학 당국... 2007년을 떠올리다

등록 2011.12.14 09:32수정 2011.12.1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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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후 학과구조조정에 반대하며 총장실 점거 농성을 벌이던 도중 교직원들에 강제해산에 쫓겨난 동국대 학생들이 규탄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13일 오후 학과구조조정에 반대하며 총장실 점거 농성을 벌이던 도중 교직원들에 강제해산에 쫓겨난 동국대 학생들이 규탄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최지용

12월 12일 새벽, 동국대학교의 학제개편에 반발하며 본관 총장실을 점거하고 학문구조개편안에 대한 재논의를 요구하던 동국대 학생들이 수십여 명의 교직원들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학교는 홈페이지에 게시한 '학사업무를 정상화하며'라는 교무위원 명의의 성명을 통해 "총장실을 점거하고 학제개편의 부당함을 주장한 학생들의 행위는 동국대가 '8개월여 동안 구성원들과 함께 진행해왔던 수많은 논의와 절차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며 비민주적인 해교행위"라고 맹비난했다.

또한, 언론이 학제개편 항의농성 과정을 적극적으로 보도할 수 있도록 학생들이 협조한 것을 두고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행위"라고 질책했으며, "이들을 다시금 배움의 자리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총장실 점거행위 등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해당 학생들에 대한 징계를 시사했다.

행정자치부 장관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을 역임하고 2007년 "대학을 기업보다 더 효율적이고 스피디한 경영을 실천하는 곳"으로 바꾸겠다며 동국대 총장으로 취임한 오영교 총장이 주도한 학제개편은 2011년 취임한 김희옥 총장의 학문구조개편으로 이어졌다.

동국대 학과구조조정 갈등의 핵심은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학사행정에 있었다. 2007년에는 교무팀에서 만든 폐과기획안이 해당 학과에 제출될 때까지 이해당사자인 해당학과 교수조차도 몰랐으며, 2011년에는 기획안을 통보하고 일주일 후 간의 여유를 두고 회의를 거쳐 학장회의에 '구두'로 통보하였다. 이 과정에서 폐과대상이었던 북한학과의 교수는 이 사안을 학생들로부터 전해 듣는 등 웃지 못할 상황이 있어, 학교의 학문구조개편 추진이 얼마나 졸속적이었는지를 잘 대변해준다.

학과 교수도 몰랐던 '폐과' 계획...졸속 구조조정 

물론 학교가 교육철학에 따라 학문구조조정 정책을 계획할 수는 있다. 이번 항의농성을 주도한 '우리들의 학문을 지키기 위한 동행(이하 동행)'의 대표인 최장훈(정치외교4)씨도 10월 11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학령인구 감소 등에 따른 학제개편의 불가피성은 어느 정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이해 당사자인 학생의 의견을 반영할 기회가 없는 일방적인 학문구조개편 추진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을 비롯하여 해당학과의 교수 및 동문들의 의견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어야 함은 당연한 학사행정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학과의 폐지 혹은 통합은 자신이 선택한 학과를 매개로 요긴한 삶의 방식을 배워가는 학부생들이나 동문이라는 인연으로 삶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유대를 이어가는 졸업생들과의 생활공동체를 크게 변화시킨다.

실제 이번 동국대 학제개편 계획을 통해 2013년부터 신입생 모집이 중지되는 윤리문화학과는 비인기학과라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직이수를 통해 매년 우수한 윤리교사를 배출하고 있으며, 동문회에서 후배 학부생들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학술 행사 때마다 끈끈한 유대를 자랑하는 학과로 알려져 있다. 신입생 모집 중지로 얼마나 이런 유대의 끈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윤리문화학과 학생들과 동문들은 회의적이다.   


비장하게 삭발을 하며 "우리 과에 입학하는 새내기들에게 연례 행사처럼 학제개편의 아픔을 겪게 해야 하고 그때마다 신입생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게 너무 슬프다"며 울먹이는 윤리문화학과 선배 학생의 절절한 사연…. 학제개편을 주도적으로 기획한 학술부총장 같은 분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나 있는 것일까?

"신입생들에게 미안하다 말해야 하는 게 너무 슬프다"

학술부총장, 학사지원본부장, 교무팀 직원 등 14명으로 구성된 동국대 학문구조개편위원회라는 조직이 만든 학문구조개편안에 대해 학문구조개편안의 대상이 되는 학과 학생들은 '동행'이라는 학생연대기구를 구성하여 학문구조개편 회의 자료공개 및 논의과정의 참여를 요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동행' 대표인 최장훈씨는 총학생회 선거에 학과구조조정 철회의 공약을 걸고 당선되었다. 이는 동국대 학생들로부터 학문구조개편에 따른 학과구조조정 문제의 해결노력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학교는 학생들의 문제제기를 소수의 반발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다시금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학교는 학생들이 제안한 최종요구안인 '학문구조개편안 전면철회'와 '학교 학생 간 동수의 협의기구 구성'에 대해 "교육법령의 근간을 몰각하는 초법적인 태도"라며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생들의 본관점거 항의행동이 진행되었다. 필자는 같은 일을 겪었던 학생으로서 안타까웠다. 필자 역시 2007년 당시 오영교 총장이 주도한 학제개편에 항의하면서 학생들과 항의농성을 기획했다는 혐의(?)로 징계위원회에 불려갔다.

그 자리에서 징계위원이던 법과대 교수님이 "다시 한번 이렇게 학생과 학교당국이 갈등할 때, 점거 등의 물리력 행사를 후배들에게 추천할 것인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 답변에 따라 징계수위가 결정되겠구나!'라고 판단하였고 "추천하고 싶지 않다. 대화로 풀었으면 좋겠다"라고 답변했던 기억이 있다.

학교는 12월 12일 본관을 점거 중인 학생들을 해산시키고 김희옥 총장 명의로 학문구조개편안 확정 시행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대로 교무위원 명의의 성명을 통해 본관 항의농성 학생들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당시 징계위원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얼마나 허무했던 것인가를 되새겨본다.

징계 시도 철회하고 다시금 학생들과 대화에 나서길 

중앙대 앞 건물에 내건 현수막 중앙대 징계 처분 이후 저지 활동 때마다 쓰인 현수막을 한데 모아 내걸었다.
중앙대 앞 건물에 내건 현수막중앙대 징계 처분 이후 저지 활동 때마다 쓰인 현수막을 한데 모아 내걸었다.노영수씨 제공

학교가 내세운 징계의 가장 큰 근거는 물리력을 행사한 점, 언론 등에 본관 항의농성 관련 제보를 하여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점이다. 물론 물리력을 행사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태도는 비민주적이다. 하지만 맥락이 중요하다.

막강한 행정권한을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중요한 학사행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배제되었다면, 이들이 할 수 있는 민주적 행동이란 어떤 것일까? 실질적 폭력이 없었음에도 학교당국이 징계를 운운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학사행정의 실질적 협의권을 요구한 것이 괘씸하기 때문이 아닐까?

동국대 당국이 교육법령까지 들어가며 학생들의 학문구조개편 협의기구 구성요구에 대해 초법적이라고 흥분하는 것은, 2009년에 중앙대를 인수하고는 취임 일성으로 "대학사회에 경계를 넘어서는 과도한 주인의식이 퍼져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킨 박용성 이사장과 이런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들에게 과감한 징계를 시사한 중앙대의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학교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안타깝게도 이번과 같은 충돌은 계속될 것이다. 한나라당까지 나서서 등록금 협의기구에 학생들의 구조적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하는 마당에 동국대 당국은 교육법령을 언급하며 초법적인 발상이라고 흥분하기 이전에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금 차분하게 해당학과 학생들과 대화하는 것이 어떤가?

물론 실질적 폭력이 없었던 만큼 항의농성 학생들에 대한 징계를 철회하는 것이 그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당국이 본관항의농성 학생들에 대한 징계를 계속해서 고집한다면, 이는 총학생회 선거에서 당선된 학생대표에 대한 징계로 의미가 확대될 것이고 고려대와 중앙대 학생징계 사태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의 갈등비용 역시 학교나 학생자치구로서는 커다란 역량손실이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4학년(독일학 전공) 휴학 중인 학생입니다.


덧붙이는 글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4학년(독일학 전공) 휴학 중인 학생입니다.
#동국대 #학과 구조조정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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