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 차별하는 학교가 '미친학교'다

[서울시학생인권조례②] 바뀌어야 하는 것은 인권조례가 아니라, 학교다

등록 2011.12.16 18:07수정 2011.12.1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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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학생인권조례안이 오는 16일 서울시의회 교육상임위원회에서 다루는 것을 시작으로 19일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입니다. 서울시학생인권조례안을 두고 많은 논란이 일고 있어, 본회의 처리 결과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이와 관련한 청소년들의 글을 2회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학교와 교사들은 참 오지랖이 넓다. 그들은 입시를 위해 학생들의 성을 억압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성 규범을 벗어난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렇게 행해지는 폭력들은,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정당화되고 심지어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당연히 여겨진다. 특히나 청소년 성소수자와 임신·출산 청소년 등에 대한 혐오범죄는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학교에서 청소년 성소수자와 임신·출산 청소년들의 입지는 매우 좁다.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수업 중 교사들의 발언, 교과서 내용, 학생들끼리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주위엔 당연히 없는' 존재이면서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자신의 소수성이 학교에 알려지는 순간, 학교로부터 또 같은 학생들로부터 온갖 직·간접적 폭력에 시달리게 된다.

아웃팅 당해서 학교전체에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물론이고, 징계위에 회부되어 징계를 받기도 하고, 퇴학당하거나 자퇴를 권고받기도 한다. 굳이 그런 직접적인 폭력을 당하지 않더라도, 임신·출산 청소년들은 대개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양육과 생계비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기도 한다. 교육을 받고 싶은 학생들(물론 자퇴생·퇴학생들 중에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겠지만)의 학습권이 침해당하는 것이다.

성소수자인 내가 학교를 박차고 나온 이유

a  지난해 7월 7일 오후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 발족식 및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지난해 7월 7일 오후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 발족식 및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최인성


나는 탈학교 레즈비언 청소년이다. 내가 학교를 그만둔 데엔 교사들의 이런저런 폭력, 말도 안 되는 온갖 교칙들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성소수자 혐오적이거나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교육과, 호모포비아인 교사들과 학생들도 한몫 했다.

학교에서의 커밍아웃 경험이 있는 다른 성소수자들에게 '커밍아웃을 했을 때 일어날 일들은 차마 상상도 못할 정도로 끔찍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으니, 커밍아웃은 상상도 못 하고 이성애자인 척하면서 생활했다.

10년 가량을 그러고 살았더니, 이게 내 삶인가 싶고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 자퇴를 결심했다.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학교가 인권 친화적이면서 내 돈을 안 들이고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변한다면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보수 단체들이 "학생들을 동성애자로 만들고 임신·출산시키는 학생인권조례"라는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코웃음이 나온다. 동성애자와 임신·출산 청소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차치하더라도, 어째서 '소수자들을 차별하지 말자'는 말을 '다 같이 소수자가 되자'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인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장애인들을 차별하지 말자는 말에, 혹은 여성을 차별하지 말자는 말에, "그럼 나보고 장애인이 되라는 이야기냐!", "그럼 나보고 성전환수술 받아서 여자가 되라는 말이냐!"라는 식으로 발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바뀌어야 하는 것은, 폭력적인 '미친 학교'다

학생인권조례의 차별금지 조항은 학교를 다니는 성소수자 청소년, 임신·출산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인간은 누구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진리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그나마 만들어지는 안전망이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임신·출산을 했다는 이유로 학습권을 침해당하고 폭력에 시달리는 학생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최소한의 안전망마저 이 사회의 편견과 청소년 보호주의에 근거한 보수 세력들의 주장들에 의해 사라진다면, 학교를 다니고 싶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냔 말인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임신·출산을 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차별당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학생인권조례는 없느니만 못하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차별해도 된다고 법으로 정해놓은 것은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교내의 성소수자들과 임신·출산 청소년들이 아니라, 현재의 폭력적이고 다수자 중심적이고 청소년들의 성을 억압하는 걸 당연하다 생각하는 미친 학교들이다. 그러한 학교들을 바꾸기 위해 학생인권조례의 성소수자, 임신·출산 청소년 차별 금지 조항은 들어가야만 한다.

덧붙이는 글 | 기사 작성자의 사정에 의해 가명처리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기사 작성자의 사정에 의해 가명처리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서울시학생인권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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