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4일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을 허가해달라'며 1만 배를 하고 있는 목원대생 김아무개씨.
홍현진
저는 지난 10월 13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1만배 후 분신자살하겠다며 학교의 서명운동 허락을 요구하던 대전 목원대학교 김아무개 학생의 부모입니다.
교사의 꿈을 안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며 학교로 간 아들이 10월 13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삭발을 한 채 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고 아무 일 없기만 바랐습니다.
학교 측 관계자는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며 "매사에 충돌하고 우발적이고 폭력적"이라고 아들의 상태를 말해주었고, 저는 가정교육을 잘못 시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1만배를 중단시키지 않으면 학교 관계자들이 함께 절을 해서 1인시위의 범위를 넘겨서라도(불법시위로 만들어 경찰이 진압하게 하겠다는 뜻) 신변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에는 감사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동행한 다른 학생들과 유인물 내용을 통해 2011년에 등록금까지 인상되어 '등록금 인하 요구사항 수렴을 위한 서명운동'을 준비하였으며 3달이 다 되어가도록 허가받지 못했다는 점과 서명운동의 시작 자체를 불허당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14일, 5천배를 넘겼고 이때까지도 학교 측에서는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아무개 방송국 관계자는 "아직 분신을 시도하지 않았으니 뉴스거리가 안 된다"며 방관했습니다. 저는 아들의 안전이 가장 우선이었기에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라고도 했습니다.
3일째 되던 15일, 7천배를 넘으면서 아들의 상태는 위험 수준이 되었습니다. 천둥 벼락이 무척이나 요란하던 그날, 지친 아들이 폭우 속에 지팡이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1만배를 향해가는 모습에서 저는,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겠다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부모로서, 대충 아무렇게나 요령껏 살라고 가르치지 않은 점을 반성했습니다. 이웃에 불이 나면 먼저 도망가라고, 사람이 죽어가면 의심받지 않게 주변을 외면하라고 가르치지 않은 점이 제 잘못이었습니다. 결국 그날 뒤늦게 학교 관계자들이 상경하여 서명운동을 허락하겠다는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15일 밤늦어서야 협상이 타결됐고 1만배는 중단되었습니다.
아들을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던 목원대학교학교에서 보장한 내용들을 서면으로 정리해 공증까지 했다는 말을 듣고 새로운 믿음이 생길 것이라는 희망까지 가졌습니다. 하지만 2달이 지난 12월 14일, 제 아들은 또 다시 무기한 단식투쟁이라는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고 목원대학교 도서관 앞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학교 측이 약속한 부분을 이행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것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학생이 조용히 학교 다니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아이가 바라는 것이 그렇게 무모한 일인지,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부분을 확인해보았습니다.
학내에서 표현의 자유 보장, 학생과 학교와의 소통구조 개선 및 학생들의 의견 수렴, 휴게실 조성 및 스쿨버스 운행, 강의실 물품 등 시설확충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학교 재학생이라면 누구나 충분히 요구할 수 있을 만한 30가지 요구사항을 확인하게 되면서, 더 이상은 보고만 있을 수 없겠다 생각했습니다.
광화문광장 1만배 시위 이후 아이는 학교에서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지난 두 달 동안 우여곡절 끝에 전체 학생 과반수의 서명을 받아 해결책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결론도 없이, 어렵사리 이끌어낸 약속마저 외면당했습니다. 다시 한번 분노를 느낍니다. 학교는 제 아들이 이 겨울에 추위를 못 이겨 꼭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바른 일이라면 어떤 유혹이나 압력에도 굴하지 말라고 가르친 탓에 어떤 설득이나 부탁도 듣지 않아 무슨 일이 생길지 너무나 우려스럽습니다. 제 아들의 요구가 잘못되었거나 무리한 것이라면 다시 한번 타이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해결의 열쇠를 학교 측이 갖고 있으면서도 약속을 어기면서 두 번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목숨을 담보로 얻은 '약속'... 하지만 다시 상처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