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철도만 타면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KTX 일부 민영화' 소식에 장애인인 내가 달갑지 않은 이유

등록 2011.12.27 18:18수정 2011.12.27 18:18
0
원고료로 응원

인천공항철도. ⓒ 코레일공항철도


저는 일본에서 살고 있는 1급 시각장애인입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올 일이 있을 때마다 인천공항에서 서울역까지 공항철도를 이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공항철도를 이용할 때면 불편함도 느끼고 어떤 경우에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공항철도의 안내 시스템이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역까지는 항공사 직원의 안내를 받습니다. 그리고 공항역 개찰구 앞에서 공항철도 직원에게 플랫폼까지의 안내와 서울역에서의 안내를 원하니, 그 쪽에 연락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서울역에 도착해도, 저를 기다리는 안내 직원은 별로 없습니다. 약속을 해 놓고도 서울역에 내리면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혼자서 개찰구까지 가야만 합니다. 평소에는 흰지팡이로 더듬거려가며 길을 찾지만 공항철도를 이용할 때면 여행가방 때문에 흰지팡이를 이용하기도 힘이 듭니다.

어떤 때는 한국말도 잘 모르는 외국 여성이 저를 개찰구까지 안내해 준 적도 있어, 괜히 우리나라의 불친절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같은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아내와 이제 6살, 3살 된 두 아이와 함께인 경우에는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그런 날이면 자연히 제 목소리가 커지고 서울역 개찰구 앞에서 직원과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공항철도를 탈 때마다 겪는, 이 불편함을 어쩌죠

그래서 공항철도를 이용하기 전에는 늘 스트레스가 생기고 노르아드레날린의 분비가 촉진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때도 일본에서 들어온 후 공항철도를 이용했는데 서울역의 안내를 부탁했지만 역시 안내하는 직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후 11시 30분이 내가 타야할 KTX 막차시간이라 마음은 초조해졌습니다. 낑낑거리며 가방을 끌고 겨우 개찰구까지 나왔습니다. 그리고 "공항철도는 왜 늘 이런식이냐?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제일 관문인 공항철도의 서비스가 이렇게 형편없으면 어떡하느냐?"며 항의를 했지만, 부역장이란 분의 아주 성의없는 사과만이 돌아왔습니다.


그날은 KTX 시간 때문에 그 정도에서 화를 참고 다음날 공항철도 본사에 항의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홍보 담당이란 간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주 정중한 사과와 함께 공항철도의 현 상황을 이해해달라며 자신들도 최대한 서비스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적은 예산과 인력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 간부에 따르면 공항철도가 처음부터 민영화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다른 철도에 비해 적은 예산으로 운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이용하는 승객들에 대한 서비스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공항철도 일부역은 야간의 경우 2명의 직원이 근무를 하는 형편이기 때문에 안전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 밖에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같은 안내가 필요한 승객들에게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는 실정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민영화로 시작한 공항철도는 다른 철도와는 달리 공익근무요원이 배정되지 않아 더욱 어렵다고 했습니다.

KTX 일부 민영화 소식, 이건 아닌 거 같아요

국토해양부가 현재 코레일에서 운영하고 있는 KTX를 민영화할지도 모른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경쟁을 통한 경영 합리화'와 '고객 서비스 향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잘 모르겠습니다. 저와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험으론 공항철도가 그리 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항철도가 예외일 수도 있고 민영화된 철도의 서비스가 무조건 나쁠 것이라고 단정지을 순 없습니다.

경제적 이유나 다른 이유는 제가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4대강 살리기도 그렇고 이번에 추진하는 KTX도 그렇고 왜 그렇게 빨리 추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보도를 보면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는 우선 오는 2015년 수도권 고속철도(수서~평택)가 개통되면 수서발(發) 경부, 호남선 400km를 민간사업자에 맡길 예정이고, 이를 위해 내년 상반기 중에 사업자를 선정하고 2015년부터 시행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빨리 일을 처리해야 할까요?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나 하려고 해도 몇 개월간 상권을 분석하고 시장을 파악하고 뭐 그러는 것 아닌가요? 국민 혈세를 들여 만든 고속철도의 일부 민영화를 결정하는데, 그 기간이 너무 짧은 것 같습니다.

민영화가 좋은지 공기업이 좋은지 저는 잘 모릅니다. 저같은 장애인은 그저 필요할 때 안내 잘해주는 것이 좋은 서비스입니다. 현재는 민영화된 공항철도보다 공기업인 KTX가 저는 이용하기 편합니다.
#KTX 민영화 #공항철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윤 대통령, 류희림 해촉하고 영수회담 때 언론탄압 사과해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