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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시신을 확인하기 전에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주)OO수산 소속의 원양어선 오리엔탈 엔젤호의 부선장이었습니다. 지난 11월 16일 러시아 베링해에서 명태 잡이 중 선박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선장과 선원 89명은 탈출했지만, 당시 화재 진압을 진두지휘하던 남편만 빠져나오지 못한 채 연락이 끊겼습니다. 17일에 회사에서 찾아와 이 사실을 전하며 "날이 밝는 대로 보트로라도 (사고 현장에) 접근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로부터 피 말리는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러시아 영해라서 러시아 당국의 허가 없이는 접근할 수가 없어 러시아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구조선은 9일 후에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사측에서는 남편의 사망을 확신했지만, 사고 당시 남편의 사망을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살아있으리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던 저는 애가 탔지만 부산 항구에서 기다리는 것 외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일분 일분이 지옥 같았건만, 구조선의 도착은 하루하루 연기되기만 했습니다. "내일이면 간다, 내일이면 간다, 아무리 늦어도 12월 첫 주 안에는 꼭 도착해서 구조하겠다"는 회사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40마일 앞까지 왔다, 1시간만 더 가면 된다던 회사에서 말을 바꾸었습니다. 느닷없이 바다가 얼어서 못 간다, 구조를 중단한다, 내년 5~6월에나 재개할 수 있다는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이제 회사의 말을 온전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바다가 얼어서 접근할 수 없다더니, 1시간만 더 가면 된다던 연락은 사실이 아니었단 말인가요. 사고 발생 직후 러시아 국경 경비 요원들이 헬기를 띄워 선박을 찾아냈을 때는 기상이 여의치 않아 접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기상 상황이 호전되고, 구조선이 접근이 차일피일 지연될 때도 헬기는 단 한 번도 띄우지 않았습니다.
사고 발생 직후 러시아 국경 경비 요원들이 헬기를 띄워 촬영한 선박의 모습이 러시아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위치조차 모르겠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엔젤호에 다량의 기름이 실려 있어, 구조선이 도착하면 기름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된 보도였습니다. 유출된 기름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말인가요. 바다가 얼어서 접근할 수 없다니, 1시간만 더 가면 된다던 연락은 사실이 아니었단 말인가요.
한 사람이어도 목숨입니다. 겨울 바다에 혼자 남은 남편이 저를 부르는 소리가 떠나지 않습니다. 네살 때 아버지를 처음 바다로 보냈던 아들은 이제 대학생이 되고 군인이 되어 있습니다. 아들이 육지에서 자라는 시간 내내, 남편은 바다에서 가족을 그리며 점점 더 깊은 그릇이 되어 이야기를 남기고 시를 쓰던 사람입니다.
러시아 초코드카 주정부와 (주)OO수산의 책임 있는 대처를 간절히 바랍니다. 바다가 얼었다 해도 하늘마저 얼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헬기를 보내 주세요. 기적처럼 남편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변함없지만, 만약에, 만약에, 살아 돌아올 수 없다면 시신이라도 가족에게 돌아오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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