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가켄에 전해진 백제문화

정월에 지내는 히노쵸 지역의 산신제

등록 2012.01.02 19:53수정 2012.01.0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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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노쵸 마츠오(松尾) 마을에서 지내는 산신제입니다. 신목으로 정해진 나무 앞에 제물을 펼쳐놓고 제사를 지냅니다. 제사를 마치고 제물 일부를 신목에 묶어두거나 나무 밑동에 세워놓았습니다. 이것을 츠도라고 합니다. 볏짚으로 만들었는데 볏짚 속에 찰떡이나 자갈, 현미밥을 넣어두기도 합니다. 마을에 따라서 가족 수대로 이것을 만들어 가지고 산신제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아침 일찍 여섯시 무렵 산 속에 있는 신목 부근을 정리하고 준비해온 제물을 차려놓고 일곱 시 경 산신제를 지냅니다. ⓒ 박현국


시가켄 동쪽 산을 끼고 살아온 사람들은 설날, 한 해의 행복과 풍년을 기원하면서 산신제를 지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가켄 동쪽 히노초(日野町)는 한반도와 관련이 깊은 곳입니다. 백제가 멸망하자 백제 유민 약 5만 명이 바다를 건너서 일본에 옵니다. 이때 일본 조정에서는 이들을 일정 지역에 살도록 허가하였습니다. 그곳이 바로 히노쵸입니다.

히노쵸에는 백제와 관련된 유적이 지금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기시츠진자(鬼室神社) 신사는 백제 유민 가운데 우두머리였던 귀족(일설에 왕족이라고도 함), 기시츠슈시(鬼室 集斯, 귀실 집사)의 혼백을 모신 사당입니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백제사(百濟寺)는 백제 이름 그대로 지어진 절입니다. 그 옆에는 석탑사(石塔寺)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 절에 있는 석탑 역시 돌로 세운 백제계 탑입니다. 일본 절에는 목탑이 많고 돌탑은 그다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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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노쵸 서쪽 가모쵸(蒲生町) 다이(田井) 마을에서는 2일 아침 8시 반부터 마을 사람 23 세대가 참가하여 산신제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이날 저녁 8시부터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호비키(?引)라고 하는 놀이를 합니다. 그리고 3일 아침 8시쯤 마을 사람들이 다시 모여서 제물을 준비하여 산신당에 가서 산신제를 지냅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산신제를 위해서 준비해 놓은 제물을 마을 집회소 안방 도코로마에 펼쳐놓았습니다. 사진 왼쪽 아래는 금줄을 만들어서 공회당 안에 놓아두었습니다. ⓒ 박현국


백제 사람들이 살았던 히노쵸에서 정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산신제입니다. 일본의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산신제는 특정산 그 자체를 신앙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런데 이곳 시가켄 히노쵸 부근의 산신제는 한국 산신제처럼 특정 산악신이 아닌 인간의 생사화복과 농사의 풍년과 생활의 안녕을 가져다주는 신입니다.

또한 시가켄 히노쵸를 중심으로 지내는 산신제는 거의 대부분 볏짚으로 줄을 만들어서 금줄로 사용하고, 여러 가지 제물 역시 볏짚으로 장식하거나 볏짚을 활용하여 만듭니다. 볏짚을 활용하는 것은 벼의 생산, 즉 벼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이 담겨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벼농사가 한반도에서 일본에 건너갔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산신제 역시 한반도에서 벼농사 문화와 함께 일본 시가켄 부근에 전해진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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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노쵸 이시하라(石原)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이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서 마을 창고에 모여서 준비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나무를 잘라서 제물 받침대를 만들고 있는 모습, 횃불을 만들고 있는 모습, 남녀 상을 만들고 있는 모습, 볏짚으로 금줄을 만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 박현국


2일 아침 시가켄 히노쵸 이시하라(石原) 마을의 산신제를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7시 무렵 마을 집회소 앞에 있는 빈 창고에 모여서 산신제를 지낼 준비를 합니다. 이시하라 마을은 모두 57 세대가 살고 있는데 여섯 반으로 나누어서 해마다 그 중 한 반이 대표로  산신제를 지냅니다. 한 반에 8세대 정도인데 올해도 한 반 8 명과 내년 산신제를 지낼 반에서 두 분이 수습을 위해서 참석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창고 안에서 대나무를 잘라서 제물 받침대 두 개, 새끼줄 2 미터 두 개, 횃불 두 개 등을 만듭니다. 그리고 자규나무를 잘라서 남자상과 여자상을 각각 두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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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노쵸 이시하라(石原)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이 <사진 위>, 찐 현미를 쪄서 츠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진 아래>, 제물을 모두 마을 집회소 안방 도코로마에 펼쳐놓고 의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 박현국


제물 준비가 끝나면 마을 집회소로 옮겨서 츠도를 만듭니다. 츠도는 볏짚을 가지런히 잘 정리하여 위와 아래를 묶은 다음 가운데를 벌려서 그 안에 현미밥을 쪄서 집어넣어서 만듭니다. 현미밥을 집어넣기 전에 절구통에 현미밥을 담아서 마을 남자아기와 그 아버지가 절굿공이로 세 번 찧습니다.


제물 준비가 모두 끝나면 집회소 안방 위쪽 도코로마에 제물을 차려놓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둘러앉아서 절을 하고 박수를 치고 예를 표시합니다. 이것이 끝나면 횃불을 앞세우고 앞으로 동쪽에 있는 산을 향해서 떠납니다. 이때 횃불을 밝혀들고 갑니다. 비록 지금은 낮에 산신제를 지내지만 옛날 이른 아침 두, 세 시 무렵 산신제를 지낼 때 하던 풍습을 따라서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마을에서 모두 같이 출발한 마을 사람들은 산 입구에서 둘로 갈라져서 각각 두 곳에서 산신제를 지냅니다. 지내는 방법은 거의 똑같습니다. 마을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산 속에 있는 산제당에 도착하면 제물을 차려놓고 금줄을 친 다음 산신제를 지냅니다. 신목인 삼나무 앞에 남녀 상과 정어리, 말린 오징어, 멸치, 술, 소금, 쌀 등을 차려 놓고 마을 사람들이 절을 하고 박수를 치고 예를 마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두 손으로 남녀 상을 들고 부딪치는 행동을 보인 다음 합해서 신목 앞에 세워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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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노쵸 이시하라(石原) 마을 사람들이 <사진 위 왼쪽부터>, 횃불을 들고 산신당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신목 앞에 제물을 차려 놓은 모습, 신목 앞에 남녀 상을 세워놓은 모습, 마을사람들이 제를 지내는 모습입니다. ⓒ 박현국


의례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횃불을 불씨로 하여 주변에 마른 나무를 모아서 불을 붙여서 제물로 사용된 정어리, 오징어 등을 구워서 먹습니다. 이것이 끝나면 금줄을 칼로 자르고 불을 끈 다음 산에서 내려옵니다. 

산신제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오면서 나이든 분은 자신이 어려서 산신제를 지낼 때 이야기를 하는데 끝이 없었습니다. 어둡고, 추울 때 산신제를 지내면서 마을 사람들이 술을 마시시고 싸운 이야기, 산신제를 지내려 오고 갈 때 큰 짐승을 만난 이야기 등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듣고 있었습니다.

산신제를 마치고 돌아온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집회소 한 자리에 모여서 술을 마시고, 오조니라고 하는 설날 먹는 먹거리를 먹습니다. 산신제라는 마을 행사, 비록 신앙적인 목적은 약해졌거나 없어졌지만 나이를 묻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일을 하고, 같이 동공의 목표를 향해서 일하는 모습이 전통이고 미풍양속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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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노쵸 이시하라(石原) 마을 사람들이 산신제를 마치고 <사진 위 왼쪽부터>, 남녀 상을 붙여놓은 모습, 제물을 나누어 먹는 음복 모습, 음복을 마치고 금줄을 자르는 모습입니다. 금줄을 자르는 것은 이제부터 산에 들어가서 일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뜻합니다. ⓒ 박현국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류코쿠(Ryukoku, 龍谷) 대학에서 주로 한국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박현국 기자는 류코쿠(Ryukoku, 龍谷) 대학에서 주로 한국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산신제 #츠도 #음복 #히노쵸 이시하라 #시가켄 히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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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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