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발글발평화릴레이
김태형
대략적인 산술이지만 내 눈에 보이는 지평선은 5㎞쯤 될 것이다.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제주 강정마을까지 527㎞를 50개 구간으로 나누어 작가들이 걷는다고 하니 지평선을 100번쯤 넘어야 하는 광막한 거리다.
눈이 녹아 얼어붙은 길을, 인도마저 군데군데 끊긴 아스팔트 도로를 작가들이 선뜻 나서서 "1번 국도 따라 임진각에서 강정까지 생명평화 걷기"에 함께하고 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속도로 천천히 이 땅 위를 걸어 돌 하나 들꽃 하나가 그저 바람과 햇빛과 파도소리에만 흔들리고 피어나고 가득하기를 바라면서 걷고 있다.
우리 일행은 이른 아침부터 훈련비행 중인 전투기 폭음을 들으며 경기도 수원 세류동에서 모였다. 정한용, 박형준 시인, 그리고 등단한 지 갓 1년 된 박송이 시인 등이 용인에서 서울 북가좌동에서 대전에서 안산에서 오셨다. 운동회 말고는 달리 구호를 외쳐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조용한 시인들이 시린 주먹을 몇 번 치켜들고 '평화'를 선포까지 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전시에 비행기 활주로로 사용하기 위해 가로수마저 심지 않은 도로는 가속으로 질주하는 차량들에 의해 그 황량함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나마 차량의 속도가 느린 1번 국도 옛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지만 좀체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은 아니었다. 이 비좁은 길에도 10톤 트럭이 건설 폐기물 등을 가득 싣고 바삐 지나가고 있었다. 걸어갈 만한 공간도 없는데 시인들은 길 밖으로 자꾸만 떠밀리고 있었다.
어깨에 멘 우편 가방에는 강정마을에 보내는 작가들의 편지가 담겨 있고, 왼쪽 손에는 현수막이 들려 있었다. "돌멩이 하나 꽃 한 송이도 건드리지 마라!" 도심으로 들어서면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 앞으로 지나갔다. 몇 사람이 힐끗 우리가 들고 있는 현수막을 보다가 이내 버스가 내달려올 도로를 향해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강정마을에 보내는 편지 가방을 메고... 지평선을 건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