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는 '맥베스'를 읽어봤을까?

온가족이 함께 하는 독서토론 모임

등록 2012.01.14 15:38수정 2012.01.1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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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달과 6펜스' 독서 토론 후 다같이 사진 찍었습니다.

'달과 6펜스' 독서 토론 후 다같이 사진 찍었습니다. ⓒ 조은미


어느날 저녁, 전복죽을 한솥 가득 끓였습니다. 아이가 빈 그릇을 들고 다가옵니다. 국자로 죽을 담아 주자 아이가 한 마디 합니다.


"엄마, 올리버 트위스트 같아요."

우리 가족은 요즘 서로 나눌 이야기가 많습니다. 셰익스피어 '맥베스'에 나오는 명대사를 같이 외우고, 마크 트웨인의 소설에서 '톰 소여의 모험'이 나은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나은지 논쟁을 하기도 하고, 600페이지가 넘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다같이 힘겹게 읽기도 했습니다. 벌써 13회를 맞는 '고전에서 길을 찾다'라는 우리 가족의 독서 토론 모임 때문입니다.

발단은 집안에서 약간 독재자로 군림하는 저 때문이었습니다(제가 독재자라는 건 터무니없는 평가인데, 아들과 남편이 가끔 투덜대며 하는 소리가 그렇습니다). 제가 자유예술캠프라는 곳과 참여연대 아카데미에서 종종 문학강좌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퇴근 후 저녁에, 종종걸음으로 가서 강의실에 앉으면 셰익스피어도 만나고 그리스 비극도 읽고 또 호머의 '일리아드'도 읽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봄에는 19세기 영국문학을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인 에어'와 '워더링 하이츠', '위대한 유산'을 다시 읽으며 저는 마음 속 깊이 위로받고 행복해지는 체험을 한 것이지요.

가족들을 불러모았습니다(그래봐야 아이와 남편, 둘 밖에 없네요). 그리고 선언했습니다. "우리 이제부터 독서모임 합시다. 셋이서 같은 책 읽고, 번갈아가며 발제하고 같이 토론하고, 그럽시다."

a  '맥베스'에 대해 발표하는 남편.

'맥베스'에 대해 발표하는 남편. ⓒ 조은미


a  '모비딕'의 명대사를 읽고 있는 아이.

'모비딕'의 명대사를 읽고 있는 아이. ⓒ 조은미


가족들로부터 (역시 그래봐야 둘) 질문과 회의 섞인 의견이 나왔습니다. 왜 하필 고전이냐, 현대 소설이나 요즘 잘나가는 책들은 안되냐, 얼마나 자주 할 것이냐, 과연 몇 번이냐 하겠냐. 아이가 중학생 되고 고등학생 되고 할 자신있냐 등등.       


저는 독재자다운 카리스마로 단호히 대답해주었습니다.

"고전을 읽으면 행복해지니까 한다. 나는 제인 에어를 만나 양심에 대해, 건강한 인간성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되었고 용기도 얻었다. 이런 기쁨을 혼자 누리고 싶지 않다. 그러니 같이 읽고 같이 행복해지자. 우리 최소 백회는 한다. 그리고 우선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들만 한다."


마침 동생네 집에 쓰지 않고 처박혀 있던 프로젝터가 있어 빌려왔고 우리 가족은 '제인 에어'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격주로 시작한 것이 '모비딕', '주홍글자', '동물농장', '변신', '파리의 노트르담' 등을 거쳐 이번 주말에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합니다.


가족들만 고전을 읽는 기쁨을 누리기 아까워 친구들에게 소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고교 동창, 대학 친구, 동호회 친구, 남편 회사 동료, 그의 아내, 꼬마들, 친구가 가르치는 학생들, 친구 아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독서토론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이 좀 떠들면 어떻습니까. 책을 읽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부모를 보면서 아이들이 절로 배우는 것이 있지 않을까요. 개구장이 꼬마 아이가 하도 떠들어서 발표에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문학박사가 되고 책에 대해 전부 다 알려고 모인 건 아니거든요. 단지 각자에게 책을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또 서로의 마음을 비추는 계기가 되는 것만도 대단한 일입니다.

아이가 초등 6학년이어서 책 선정에 고심을 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합니다.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 글자'같은 책은 소재가 불륜이고,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에서도 애증과 폭력의 묘사가 강렬합니다. 그래도 저는 이 정도의 책들은 아이도 읽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의 사랑의 세계를 아이에게서 분리시킬 필요도 없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수위가 너무 높다고 여겨지는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것은 아이에겐 아직 이릅니다.

a  '톰 소여의 모험'에 대해 발표 중인 아이

'톰 소여의 모험'에 대해 발표 중인 아이 ⓒ 조은미


가족들과 그리고 친구들과 독서 토론을 하다 보면 서로 나눌 것이 아주 풍성해집니다. 우선 가족이나 친구끼리도 서로 모르던 마음을 더 이해하게 됩니다. 누구나 각자의 삶으로 작품을 읽고, 작품 속 주인공들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더 의젓해지고 공감 능력이 커지며, 어른들 앞에서 발표도 점점 능숙해집니다. 이젠 슬쩍 농담도 끼워 넣으며 발표를 할 정도입니다.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친구는 출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책을 끼고 다니면 은근히 뿌듯하다고 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거나 잠을 자고 있을 때, 흔들리는 전철에서도 고전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충만해지는 기분이 드는 거지요.

제가 가족들과 독서토론을 한다니까 흔한 반응이 이런 겁니다.

"아이 독서 논술 학원 따로 안 보내도 되겠네!"

의도한 바가 그건 아니었지만, 제 아이나 이 모임에 오는 다른 아이들이나 절로 논술 공부도 되고 사고력이 느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인문학 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 자랄 것이라 믿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청소년 폭력을 보며, 그 아이들이 고전을 제대로 읽었다면 그러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4대강을 전부 파괴해 죽이거나 서민들의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그들이 고전을 좀 읽었다면 저러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에, 저는 아이들과 열심히 고전을 읽을 것입니다.
#독서 토론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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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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