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이어진 철길에서 파도에 취하다

[포토에세이] 제주시 삼양동 포구에서

등록 2012.01.17 15:59수정 2012.01.1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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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포구 바람에 포구에 정박한 배가 흔들리고 있다.
삼양포구바람에 포구에 정박한 배가 흔들리고 있다. 김민수

바람의 섬 제주도는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밋밋하다.
한 겨울 불어오는 습기 가득한 바람이 살을 에듯 추워도 바람이 불어야 제주라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다.


삼양포구를 찾았던 1월 13일, 하루를 마감하는 해를 어서 보내려는듯 잠자던 바람이 깨어나 구름을 서편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작은 바람에도 바다의 파도는 더 높아지고, 포구의 물결도 자잘하게 부서진다. 그 자잘한 부서짐에도 포구에 정박한 작은 배는 흔들린다.

이렇게 작은 배들을 지켜주는 곳이 포구다.
이보다 큰 배들은 항구로 가서 몸을 의탁해야 한다. 이렇게 작은 포구는 작은 배를 위한 쉼터요, 잠자리인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왜 포구가 항구보다 더 정겹게 다가오는지 알겠다.

이 레일을 타면 바닷속을 여행할 수 있나요?

선박수리소 삼양포구 한 켠에 있는 선박수리소, 철길같이 바다로 이어진 길이 있다.
선박수리소삼양포구 한 켠에 있는 선박수리소, 철길같이 바다로 이어진 길이 있다.김민수

검은모래가 유명한 삼양 해수욕장, 모래가 마치 기름을 머금은 듯 검다.
처음보는 사람은 "기름때가 끼었나요?"라고 할 정도로 검은모래지만, 그 검은모래의 효력을 아는 사람들은 여름이면 이곳에 와 모래찜질을 하곤 한다. 관절염에 좋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삼양포구 한쪽에는 선박수리소가 있었다.
바다로 기찻길 같은 레일이 이어져 있다. 바다로 가는 기차가 있다면, '이 레일을 타야하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이 레일을 타고 가면 저 깊은 바닷속을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래, 이 레일 역시도 항구에 있는 선박수리소와는 다르구나.
작은 배들을 위한 크기의 레일일 터. 포구를 바라보니 그들뿐 아니라 정박한 배도 방파제 위의 등대도 모두 작다. 작고 아기자기하다.

파도가 하는 말이 들립니다


삼양바다 제주의 검은 돌과 파도가 어우러진 삼양바다
삼양바다제주의 검은 돌과 파도가 어우러진 삼양바다김민수

제주의 검은 돌에 파도가 부닥치며 하얀 포말을 만든다.
그 순간을 겹치니 안개 같기도 하고, 흰눈 같기도 한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그냥, 바다에 흰눈이 내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운치가 있는 듯하다. 안개는 아니지만, 해무는 일상적인 것이니까.

밀려왔다가 다시 바다로 가기를 반복하는 세월은 헛된 세월이 아니었다.
파도는 무의미한 오고감으로 자신의 삶을 마친 것이 아니라, 그 오고감으로 바다를 정화시키고 있었다. 바다가 살아있다는 증거, '살아가는 것들이 무엇을 하는가'라는 상징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있는 것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생명. 무언가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혹은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큰 바다에도, 큰 항구에도 여전히 생명은 꿈틀거리며 살아가겠지만, 이 작은 포구에서도 그런 생명 운동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파도는 큰 것만 추구하는 세상에서 작은 것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온 몸을 바위에 던져가며, 부서져가며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제주도 제주의 검은 돌과 흰 파도의 조화로움
제주도제주의 검은 돌과 흰 파도의 조화로움김민수

한참을 바라보다 보니 인간이 만든 끈 하나가 바위의 목을 조르고 있다.
아무리 파도가 그것을 풀려해도 더욱 견고하게 목을 쥐고는 놓아주질 않는 듯하다.

그래, 지금은 너의 승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시간은 곧 지나갈 것이니, 자만하지 마라.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기어이 그것을 풀어 버릴 날이 올 것이니 자만하지 마라.

삼양포구 바람이 불어도 포구가 있어 안전한 배
삼양포구바람이 불어도 포구가 있어 안전한 배김민수

작은 배들에게 포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작은 사람들에게도 저마다의 포구가 있어야 한다. 그 작은 포구가 돼주는 이들도 있는 이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큰 것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작은 것을 노래하는 사람도 있고, '빨리 빨리'를 외치는 세상에 느릿 느릿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그래, 좋은 것 바라보면서 살자. 그렇게 살자.
작은 배를 지켜주는 포구에서 사람살이를 본 이날, 나는 오랜만에 고향에 품에 안긴 듯 행복했다.
#삼양동포구 #제주도 #바람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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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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