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레에서 빈대떡 주던 시절도 있다

[푸드스토리 39] 빈대떡이 가난한 자들의 음식? 꼭 그렇지만도 않다

등록 2012.01.20 11:59수정 2012.01.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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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열심히 설 준비하고 계신가요? 시장에는 제수용품을 구입하는 사람들로 발 딛을 틈이 없더군요. 기사에 사용할 돔배기(돔발상어) 사진을 찍으려고 생선가게에 갔는데, 갑자기 손님이 와르르 들이닥쳐서 애를 좀 먹었습니다. 때가 때인지라 시장 골목마다 이것저것 맛난 냄새는 한 가득인데, 그중 지글지글 빈대떡과 전을 부쳐내는 손길이 가장 분주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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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떡 . ⓒ 조을영


빈대떡. 사실 이것은 우리 민족에겐 일상의 음식이나 다름없다고 해야겠지요. 대중적인 음식이면서 이와 관련한 여러 문화를 만들어낸 매개체이기도 하고요. 과거 1920년대에는 빈대떡이 길거리 간이음식점 최고 인기 메뉴로 등극했고, 이후 해방이 되고서는 빈대떡집이 대유행하면서 막걸리에 최고로 어울리는 안주로 이름을 올리게 됐습니다.

'빈자(貧者)떡', '빈대병(賓待餠)', '평양식 지짐이', '함흥식 지짐이' 등의 별스런 이름이 으로 불린 시절도 있었지만, 그 모든 이름들이 가지는 공통점은 '녹두를 갈아서 반죽한 지짐'이라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빈대떡이란 이름의 어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특히 '빈자떡'이라고 해서 '가난한 자들이 먹는 음식'이란 의미가 가장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 빈대떡집이 대성황을 이룰 당시엔 손님의 대부분이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였단 옛 신문의 기사는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해방 후 어려운 경제 탓에 어딜 가나 빈대떡집만 성황을 이루었고, 양복 입은 신사들조차도 궁핍한 처지에서 서로 돈을 융통하며 빈대떡집에 모여들었다네요.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는 그 시절 유행가 '빈대떡 신사'는 그런 의미에서 당시 사회상을 아주 잘 그려낸 것도 같네요.

저렴한 녹두 가격 덕분에 1960년대 중반까지 빈대떡은 주당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 었습니다. 옛날 흑백 영화에 보면,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 막걸리집에서 주인공이 들고 마시던 사발을 '캬' 하면서 내리곤, 젓가락으로 빈대떡을 쭉쭉 찢어 먹는 장면을 보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카바레에서도 막걸리와 빈대떡을 제공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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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떡 . ⓒ 조을영


이후 60년대 말부터 녹두 값이 매년 급속하게 오르고, 벼농사 위주의 정책으로 녹두 생산량은 갈수록 줄어든 데다, 먹을거리가 풍족해지면서 빈대떡의 인기도 급속하게 떨어졌습니다. 현재는 국내산 녹두 값도 비싸졌고, 그 속에 들어가는 재료도 국내산 찾기가 더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빈대떡은 '가난한 사람의 떡'이라고 부를 수도 없어졌습니다.

그런 반면 현재 빈대떡은 최고의 트렌드 상품이기도 합니다. 막걸리가 젊은이들 사이에 다시 유행하면서 빈대떡도 함께 유행하는 걸 보면 음식도 하나의 역사가 담긴 문화코드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지방에 따라 빈대떡에 넣는 재료가 조금씩 다르지만, 잘 간 녹두에다 잘 씻어 양념을 털어낸 신김치며 고사리나 숙주 같은 채소를 넣어 반죽 한 후, 돼지기름으로 부쳐내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지방마다 그 맛이 조금씩 다르고, 서민음식의 대명사인 반면 덕혜옹주도 즐겨먹던 궁중음식이란 점에선 매우 이채롭습니다.

한편 명절 차례 상을 빛내주는 것도 빈대떡의 역할입니다. 굳이 빈대떡뿐만 아니라 각종 채소나 육류 혹은 생선을 이용해서 부친 전도 그 지역의 특색을 보여주는 명절음식입니다. 경상도에선 상어고기를 이용해서 지진 돔배기전, 제주도에서는 실파와 고사리를 나란히 늘어놓고 계란물로 지져내는 누르미전이 있습니다. 특히 누르미전은 제주도의 향긋한 파와 고소한 먹고사리가 어우러져 풍미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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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누르미전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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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누르미전 . ⓒ 조을영


하여간 빈대떡과 전을 굽는 고소한 냄새가 가득한 요즘, 몸도 마음도 분주하지만 즐거운 시기입니다.
#빈대떡 #제주 누르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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