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둥이가 "수학을 잘해?"

막둥이 일기장을 훔쳐봤더니

등록 2012.01.30 09:29수정 2012.01.3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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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가 수학을 좋아한다는 것 처음 봤습니다. ⓒ 김동수

막둥이가 수학을 좋아한다는 것 처음 봤습니다. ⓒ 김동수

언제나 다섯 살 같은 우리 집 막둥이, 한글을 깨우치지 못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 한 해 늦게 보내려고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학년이 됩니다. 참 세월 빠릅니다. 막둥이를 볼 때마다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어느 누가 멈출 수 있겠습니까?

 

"나는 소수를 잘한다"

 

학교 가기가 제일 싫고 올해부터 토요일은 무조건 '놀토'가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막둥이, 방학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아마 마음 한켠이 답답할 것입니다. 방학 숙제를 잘했는지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우연히(사실은 의도를 가지고) 일기장을 훔쳐봤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내용을 봤습니다.

 

나는 소수를 잘한다.

오늘 100점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한데 칭찬을 받았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다음에도 100점을 받아갔고 칭찬을 받을 것이다.

화이팅!

 

지난 14일(토요일)치 일기였습니다. 저는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벗으면 5미터 앞 아내 얼굴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가 잘못 읽은 줄 알았습니다. "나는 소수를 잘한다"고?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막둥이 수학 실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낙제 수준이기에 막둥이가 소수를 100점 받았다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에 실패했다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김막둥! 네가 소수를 잘해? 그런데 소수가 무엇인지 알아?"
"네 잘해요. '0보다 크고 1보다 작은 실수'를 소수라고 해요."
"아빠보다 낫네. 아빠는 소수 잘 못했는데. 막둥이는 잘하네."

"분수도 잘해요."
"분수도 잘한다고? 갈수록 아빠보다 잘하네."

"앞으로 소수도 잘하고, 분수도 잘할 거예요. 그런데 사칙연산 혼합계산하고 도형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아빠보다 잘하니까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을 거야."

 

수학을 그토록 싫어하고 못했던 막둥이가 수학 소수를 잘하다니. 공부에 목숨 건 아빠는 아니지만 아들이 공부를 잘하다고 하니 어찌 마음이 기쁘지 않겠습니까? 웃음을 머금고 일기장을 또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골'을 넣었다고 합니다.

 

축구는 못해도, 좋아한 막둥이 드디어 한 골 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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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잘 못하지만, 축구는 엄청 좋아하는 막둥이. 드디어 한 골 넣었습니다 ⓒ 김동수

축구는 잘 못하지만, 축구는 엄청 좋아하는 막둥이. 드디어 한 골 넣었습니다 ⓒ 김동수

오늘 축구부에서 A:B으로 나누어 경기를 했다.

5:4로 졌다. 내가 한 골을 넣었다. 박우판 형이 슈팅을 했는데 태권이가 막아서 나에게 공와 와 찼는데 골이 들어갔다.

다음부터 노력해서 골을 또 넣을 것이다., 어제는 비가와서 축구를 못해 아쉬웠는데 오늘은 축구를 해서 좋았다.

 

지난 20일(금요일)자 일기입니다. 아빠를 닮아 운동은 잘 못하는데 축구는 엄청 좋아합니다. 방학을 맞아 방과 후 학습으로 축구를 하고 싶다길래 거금 3만 원을 들여 축구부에 들어갔는데 헛일을 아니었나 봅니다.

 

"막둥이 골도 넣었는데, 소수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고 이제 못하는 것이 없네."
"아빠 축구 잘하고 수학도 더 잘하면 축구화 사줄 수 있었요?"
"아빠는 '공부 잘하면 축구화 사준다' 같은 약속은 하기 싫은데. 형아 축구화 있잖아."
"형아 축구화는 작아요."
"작아? 그럼 공부 잘하면 아빠가 생각해볼게."

 

공부 잘하면 축구화 사준다는 약속을 한 것이 잘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수를 잘한다는 것에 감동받은 아빠,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몸과 정신 모두가 건강한 아이로 자라는 것입니다.

#막둥이 #소수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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