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결방, 가슴 아프지만...포기하지 마시라

MBC 노조 파업, '2010년' 교훈삼아 끝까지 나가길

등록 2012.02.02 10:14수정 2012.02.0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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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박대기 기자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세를 탔던 것이 1년 전 이맘때였다. 폭설이 내리는 현장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꼼짝하지 않고 눈을 맞으며 보도를 한 탓에 그의 머리와 어깨엔 새하얀 눈이 수북이 쌓였고, 다소 우스꽝스러운 그 광경에 시청자와 누리꾼들은 폭소하면서도 그 '열혈' 보도정신에 대해서만큼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뒤인 지난 1월 31일에도 전국에 많은 눈이 내렸다. 수도권 지역에 유독 눈 소식이 드물었던 올 겨울 상황을 돌이켜 보면, 방송사의 뉴스 프로그램에서 폭설과 한파에 대한 보도가 첫머리에 등장할 것이란 걸 쉬 예상할 수 있었다. '올해는 어떤 기자가 제2의 박대기가 되어 시청자와 누리꾼들의 관심을 받을까?'하는 궁금증도 슬며시 솟아올랐다.

별반 기대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MBC <뉴스데스크>에 '제2의 박대기'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박대기는커녕 '기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1월 31일자 <뉴스데스크>의 폭설 보도는 기자 대신 이현승 기상캐스터가 했고, 그나마도 1꼭지에 그치고 말았다. 4꼭지씩 방송을 내보낸 KBS <뉴스 9>와 SBS <8시 뉴스>에 비하면 너무나도 빈약한 보도였다.

<뉴스데스크>에선 왜 폭설 보도를 기자 대신 기상캐스터가 했을까? 익히 알려져 있듯이 MBC 기자들이 지난 1월 25일부터 전면 제작거부에 돌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12월 23일과 24일 방송된 전국 폭설 보도는 기상캐스터가 아닌 기자가 했다. 기자들의 제작거부로 MBC의 뉴스는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폭설 보도를 기자 대신 기상캐스터가 한 것은 애교 수준에 불과했다.

기자들 제작 거부... 엉망진창 된 뉴스

a  1일 오후 MBC 김재철 사장의 연례 업무보고가 예정된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앞에서 총파업중인 MBC노조원들이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1일 오후 MBC 김재철 사장의 연례 업무보고가 예정된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앞에서 총파업중인 MBC노조원들이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아침에 방송하는 <뉴스투데이>는 10분으로 축소 편성됐고, 저녁뉴스와 마감뉴스는 아예 편성에서 사라졌다. MBC 뉴스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뉴스데스크>의 경우 사정은 더 처참하다. 방송시간은 종전 50여 분에서 15분 내외로 대폭 줄어들었고, 여기에 스포츠 뉴스와 일기예보를 제외하면 시간은 더욱 줄어든다.

시간만큼이나 내용 면에서도 현재 <뉴스데스크>에서 방송되는 뉴스들은 도저히 공영방송의 메인뉴스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부실했다. 종전 30여 꼭지에 이르던 보도는 절반 이하인 13꼭지 남짓으로 줄어들었고, 그나마도 2, 3꼭지는 기자가 아닌 권재홍 앵커가 리포팅을 했다. '집중취재'나 '뉴스플러스', '현장M출동' 같이 <뉴스데스크>를 지탱해온 꼭지들도 자취를 감췄다.


자사의 메인뉴스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이번 제작거부의 직접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김재철 MBC 사장은 요지부동이다. 친정부 성향의 보도에서 탈피해 뉴스의 공정성 회복을 위해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의 사퇴 및 전면적 인적쇄신을 주장한 기자들의 목소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모양새다.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MBC는 공영방송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친정부 성향을 띠었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은 시사 프로그램은 하나 둘 폐지되거나 시간대를 옮겼고, 정권에 호의적이지 않은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뉴스 또한 김재철 체제가 들어선 이후 공정성을 잃어갔다.


김재철 체제 이후...MBC 뉴스,정치 사회 현안 '실종'

정권과 관계된 민감한 현안에 대한 보도는 축소되거나 아예 보도되지 않는 일들이 허다했다. 장관 인사청문회 의혹은 축소 보도됐고, KBS 도청의혹 보도는 통제되었으며, <PD수첩> 대법원 판결은 왜곡 보도됐다.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의혹은 편파 보도됐고, 얼마 전까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119' 전화 논란은 아예 외면당했다.

대신 공영방송의 메인뉴스에서 다루지 않았던 아이템들이 쏟아져 나왔다. 케이팝(K-Pop)의 한류 열풍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거나, 문화현상을 짚어본다는 명목으로 <계백>, <반짝반짝 빛나는>과 같은 자사 드라마를 슬며시 홍보하는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 사회 현안과 정치적 이슈는 실종되고 그 자리를 연예, 건강, 여행 관련 뉴스들이 채워갔다. 이에 누리꾼들은 "대체 언제부터 <뉴스데스크>가 <섹션TV 연예통신>이 된 거냐"며 비꼬았다.

그 결과는? 시청률 하락과 현장에서의 시민들의 외면이었다.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MBC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시청률 조사기관 TNmS에 따르면 지난 1년간 MBC <뉴스데스크>의 평균 시청률은 7.8%로 18.4%인 KBS <뉴스 9>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9.5%인 SBS <8시 뉴스>에도 뒤져 방송 3사 메인뉴스 경쟁에서 꼴등으로 밀려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현장에서의 시민들의 반응도 냉랭해졌다. "취재거부를 당했다"든가 "취재현장에서 쫓겨났다"는 기자들의 한숨 섞인 탄식이 연일 언론을 장식했다.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 ⓒ MBC


이에 사측이 내놓은 해결책은 ▲ 평일 <뉴스데스크> 시간대 이동 ▲ 대표 리포트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뉴스 개선안이었다. 사태의 본질을 비껴나도 한참이나 비껴난 대안에 MBC 기자들은 반발하며 뉴스 정상화를 위한 보도책임자 사퇴를 주장했다.

사측의 대응은 기민하고 강경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주도한 혐의로 박성호 기자회장을 <뉴스투데이> 앵커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이와 같은 사측의 움직임에 결국 MBC 기자들은 제작거부에 나섰고, <뉴스데스크>를 비롯한 뉴스 프로그램들이 파행을 겪고 있다.

설상가상 MBC노조마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1월 30일부로 총파업에 돌입, 뉴스뿐만 아니라 예능, 교양 프로그램 등의 파행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PD들이 제작, 편집 등에서 손을 놓은 까닭에 당장 이번 주부터 <우리 결혼했어요> <무한도전> <위대한 탄생> 등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모두 결방될 예정이다.

MBC 언론노조의 총파업은 지난 2010년 4월에 있었던 총파업 이후 약 1년 8개월여 만이다. 당시에도 노조는 황희만 특임이사의 부사장 낙하산 인사, 이른바 '조인트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에 대한 명예훼손 고발조치 미이행 등을 이유로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노조원 피해 다니는 사장...호텔에서 업무

a  김재철 MBC사장

김재철 MBC사장 ⓒ 이정민


사실상 MBC가 '올스톱' 상태가 되었는데도 김재철 사장은 '뉘 집 개가 짖느냐'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기자들의 제작거부가 시작된 1월 25일에는 케이팝(K-Pop) 관련 패션쇼 참석을 이유로 일본 출장길에 오르더니, 총파업이 시작된 1월 30일에는 경남 합천으로 가 드라마 <무신>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다.

노조원들을 피해 신입사원 사령장 수여식을 연기하고, 방문진 업무보고에도 참석하지 않아 물의를 빚은 김재철 사장은 <미디어스>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월 31일 여의도 모 호텔에서 반나절 동안 집무를 보았다고 한다. 이는 지난 2010년 총파업 당시 호텔에서 국장단 회의를 주재하며 집무를 본 것과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행동이다.

기자들이 제작거부에 나서고 노조가 총파업을 단행했지만 상황은 낙관적이지 못해 보인다. 김재철 사장과 사측의 요지부동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할 때마다 이렇게 흘러가다간 2010년 총파업의 재현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문득 문득 엄습한다. 지난 총파업에서 노조는 파업 39일 만에 파업을 일시중단하고 현장 투쟁으로 전환, 현장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MBC는 더욱 나빠져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 MBC는 막다른 길의 맨 끝에 서 있다. 여기서 더 물러날 데도 없다. 총선과 대선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MBC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정권으로부터 독립하고 공영방송으로서 자율성과 공정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MBC에 미래는 없다. MBC의 드라마와 예능, 시사·교양 프로그램과 뉴스를 사랑하고, 또 사랑했던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노조에 간절히 바란다. 포기하지 마시라. MBC를 국민의 방송으로 되돌려 놓으시라.
#김재철 #뉴스데스크 #총파업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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