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규제' 빠진 교과서... 전경련 참 좋겠네

[2009개정+2011개정교육과정 문제③] 시장실패·국가개입 빠지고 자산관리 넣은 사회 교과서

등록 2012.02.07 11:16수정 2012.02.0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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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들어 교육과정이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크게는 2009년 12월에 2009개정교육과정(총론), 2011년 8월 9일에 2009개정교육과정에 따른 교과교육과정(각론, 이하 2011개정)이 고시되어 내년부터 새교과서로 배우게 됩니다. 먼저 2011개정교육과정 교과별 내용을 알아보고, 2009개정교육과정과 학교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기자말>

연초부터 재벌가 3, 4세들이 빵과 순대 사업까지 하면서 골목 상권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통령까지 가세하자, 일부에서는 발 빠르게 빵집 사업에서 철수하고 있다. 경제 활동과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업 행태가 비판받는 이유는 헌법에 시장 경제에 국가가 개입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은 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다. 사회 교과서에서 이미 배웠기 때문. 그런데 앞으로는 교과서에서 이런 내용을 배울 수가 없게 되었다. 내년부터 배우는 '2011개정교육과정'에서는 이런 내용이 거의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시장 만능주의만 최고? 1%를 위한 교과로 전락

초등 6-1 사회 63쪽 정부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지라도 사회적으로 피해를 주면 정부가 불공정한 거래를 막고,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경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이번 2011개정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 이런 내용이 거의 사라졌다.
초등 6-1 사회 63쪽정부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지라도 사회적으로 피해를 주면 정부가 불공정한 거래를 막고,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경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이번 2011개정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 이런 내용이 거의 사라졌다.교과부
현재 사회 교과는 초등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우리나라 경제 체제가 자유경쟁체제라는 것과 동시에 시장 기능의 한계와 정부의 역할을 균형 있게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최종 시안에서도 있었던 내용이 빠진 채 고시되었다.

2011시안 : 시장 기능의 한계를 독과점 사례를 통해 탐구하며, 시장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 및 그 한계를 제시할 수 있다.(중3)

'2009개정교육과정'부터 고등학교가 다 선택과목 체제가 되어서 중학교 사회에서 이 내용이 사라졌다는 것은 공교육과정에서 이런 항목을 배울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고등학교 경제 과목은 어떨까? 여기서는 2009개정 내용에 비해 한 단원 제목 자체가 없어지고 축소되었다. 

2009개정 경제교육과정 - 시장 기능의 한계와 정부 개입(2009.3.6 고시)
2011개정 경제교육과정 - 시장과 경제활동(2011.8.9 고시)


'노동' 관련 내용도 대폭 축소되었다. 시장 경제에 대해 이해하라면서 정작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의 지위나 역할, 사회적 권리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중학교는 '실업'의 영향에 한정해 가르치고 있다. 고등학교 <법과 정치> 과목에서도 노동법이 사라지고, <경제> 과목도 축소되었다. 노동 문제 전반을 다뤄야 함에도 직업 변화 예측 측면으로 한정짓고, 경제 주체는 소비자와 공급자로서의 역할만 강조하고 있다.

중학 사회 : 실업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고용안정과 바람직한 노사관계 확립을 위한 방안을 탐구한다.
고교 경제 : 노동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회 변동에 따른 직업의 변화를 예측한다.


때문에 중학교 사회는 경제 교과서 느낌을 주고, 고등학교 경제 과목은 "자본가 이데올로기로 편향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회 교사들은 선진국 사례에 비추어 중학교부터는 노동의 중요성과 노동법, 노조활동에 대해 한 단원 정도는 다뤄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조차도 중학교부터 노동조합의 발달, 노동조합, 단체교섭(협상, 파업과 경영자 대응, 단체교섭의 감소 추세)을 다루고 있다.

중학생, 자산관리 해라 실패하면 네 책임

시장 실패와 국가의 역할, 노동이 빠진 자리에는 무엇이 들어갔을까? 바로 자산관리이다.  중학생부터 한 단원에 걸쳐 자산관리를 배운다.

중학 사회 : 일생동안 이루어지는 경제생활을 탐구하고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생활을 하기 위해 자산관리의 필요성을 인식한다
고교 경제 : 경제생활과 금융 - 수입, 지출, 신용, 저축, 투자/자산과 부채의 관리/ 재무 계획 수립

중·고등학교에 전반에 걸쳐 자산관리를 가르치는 건 자산관리 산업 부문을 키우려는 배려일까? 아니면 가정경제 실패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려는 것일까? 사회 교사들은 지금도 국민들의 20%가 신용불량이고, 가계부채가 1000조에 이르는 것은 국민들이 자산관리를 못해서가 아니라 시장 기능의 실패와 국가의 적절한 역할개입이 되지 않아서라고 비판하고 있다. 생활비를 벌기 어렵고, 중산층조차 암 환자가 생기면 신용카드 돌려막기로 빈민층으로 전락하는 사회에서 과연 자산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최선일까? 이번 교과서는 혹시 시장과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닐까?

이런 사례는 지난 7차 교과서에서도 있었다. 교과부는 '외환위기가 국민들의 과소비 탓'이라고 10년 동안 가르쳤고(관련기사: IMF가 국민들의 과소비 때문이라고? ), 2007개정 실험본 교과서에도 실었다. 그러다가 기사가 나간 후 작년 6학년 사회 교과서에는 비로소 시장과 국가의 잘못을 시인하였다. 이런 의도가 아니라면 사회 교과서를 왜 이런 방향으로 만든 것일까? 이는 전경련을 비롯해 경제계의 요구 때문이다.

결국 전경련을 위한 교과서로 전락?

 왼쪽은 2007년 2월에 고시된 2007개정교육과정문서이고, 오른쪽은 2009년에 MB정부가 새로 고친 사회교육과정이다. 사회는 이 정부들어서만 두 번째 바뀌고, 내용도 편향적이다.
왼쪽은 2007년 2월에 고시된 2007개정교육과정문서이고, 오른쪽은 2009년에 MB정부가 새로 고친 사회교육과정이다. 사회는 이 정부들어서만 두 번째 바뀌고, 내용도 편향적이다. 교과부

다른 교과는 2007년에 이어 4년 만에 바꿨지만, 사회 교과서는 2009년에 고등학교 1학년 사회만 고쳤다. MB정부 취임과 함께 교과부장관이 교과서가 좌향좌라고 비판하고, 뉴라이트 진영의 근·현대사교과서 비판과 맥을 같이 해 경제 단체가 사회 교과서가 경제 내용이 부족하다고 비판하였기 때문이다.

원래 2011년에 나온 고1 <사회>는 통합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 "문화·정의·세계화·인권·삶의 질"을 주제로 주제통합 교과서로 만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교육과정이 사회 변동과 문화, 정치 과정과 참여민주주의 식으로 개정되어 수정된 것이다. 그 교과서를 다시 1년 6개월 만에 고시하면서 재벌기업이 거북스럽게 생각하는 내용은 다 빼 버린 것이다.

8월 초에 재경부를 필두로 "경제 신문들이 경제 내용이 축소되었다"고 교육과정 고시를 연기한 것도 직접적인 원인이다(관련기사: 경제계가 졸속교육과정개정 반대한 이유). MB정부는 경제계 요구만 받아들여 급하게 내용을 고쳐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완성한 것이다. 이는 헌법 31조가 보장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거늘, 몇 개월 만에 1%만을 위한 교육과정으로 뜯어고쳤다.

뒤죽박죽 체계로 초등은 과식, 중·고등학교는 편식 교육?

2011개정 사회교과 내용  실제 개정 내용에 비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만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초등은 성취 기준을 118개에서 80개로 줄였다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중고등학교보다 많고 어려운 내용을 실었다.
2011개정 사회교과 내용 실제 개정 내용에 비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만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초등은 성취 기준을 118개에서 80개로 줄였다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중고등학교보다 많고 어려운 내용을 실었다.서울시교육청

사회 교과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회적 현상이나 지리, 경제, 민주주의, 역사에 대해 배운다. 교과 교육과정은 크게 일반사회, 지리, 역사 영역으로 나뉘는데, 다루는 내용의 양이나 폭이 너무 넓어 학생들에게 너무 어렵게 다가온다. 여기에 역사나 경제 부분에서는 사진이나 문구 하나 잘못 들어가도 편향성 논쟁을 낳기 때문에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또 중학교까지만 사회 교과를 공통으로 배우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꼭 알아야 할 기본 내용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학생들 수준에 맞게 배치해야 한다. 위에서 지적된 문제 말고 다른 내용들은 제대로 되었을까?

초등학교 교과 과정을 보면 학자 수준에서나 배울 만한 사회 교과의 모든 내용이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외국에서는 초등학교부터 노동교육을 다루는데, 중학교에서 전혀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학생 본인이나 균형 있는 사회적 시각을 기르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고등학교는 법과 정치, 경제 등 선택 교과체제이므로 과목마다 내용이 다르다. 그런데 학생 개인을 생각하면 어떤 선택 교과를 배우더라도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필수적인 내용은 채우면서 특정 영역에 대한 전문성이 길러져야 한다. 과연 이 과목들의 내용은 어떨까?

이 과목들은 85시간 동안 운영되는데, 과목 간 내용 수준 차이나 배우는 내용이 편항적인데다가 선택하지 않은 영역은 중학교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법과 정치>에서는 노동법이나 참여민주주의는 제대로 배우지 않고, 주로 대의제 민주주의 위주로 된 내용만 배운다. <사회문화> 과목은 대학 교양 과목 수준인 문화인류학 개론, 사회학 개론의 축소판과 비슷해 어렵기만 하다. 경제 과목은 더 심각하다. 대부분 학교 졸업자들은 졸업 후에 노동자가 된다. 하지만 노동 문제나 노동법도 제대로 안 배운 채 자산관리를 배우고, 시장경제 이데올로기로 세뇌교육을 받는다. 법과 정치 영역은 중학교 수준의 지식이라 편향적인 지식을 배우는 셈이다. 시수는 주는데 양은 더 많아져 교육 내용 20% 감축에도 맞지 않는다.

고등학교 선택 과목 체제에 의해 단편적인 지식만 배우면서 어떻게 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초등학생이 대한민국 해결사? 해도 너무 하네

큰 아이가 4학년인데, 반 친구가 사회 수행평가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 대책 - 65세가 되면 다 자살해야 한다."

"선생님이 너무 기가 막혀 읽어주고 아이들도 웃고 말았다"는데, 아이 수준을 생각하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저런 문제라면 국가 관료들이나 경제, 사회학자들이 머리를 맞대 정책을 추진해야지 왜 뜻도 이해하기 어려운 4학년들에게 대책을 요구하는 것일까?

초등 사회가 3학년에게 인문환경과 세계 환경을 가르치고, 4학년에게 지자체 구성과 역할, 경제와 사회 문제까지 가르치다 보니 생긴 일이다. 초등 사회는 2007개정교육과정부터 3, 4, 6학년에 일반사회, 지리 내용을 배우고 5학년은 역사를 배운다. 역사는 6학년도 배우기 어렵던 내용인데, 5학년으로 내리면서 초등사회 전체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이번에 2011개정 논의가 시작될 때 초등의 최대 관건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의논되어야 한다. 학생의 수준과 현장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경제계와 정권의 욕심대로만 바꿔버렸다. 여전히 '저출산고령화'를 비롯해 중·고등학교에서도 다루기 힘든 내용을 초등학교에 남겨놓았다. 초등 교사들은 물론 중등 교사들조차 초등학생들에게 어려운 내용이라고 꼽는 내용을 보자.

중등 교사도 어렵다고 보는 초등학교 사회 내용 일부
<3, 4 학년군>
- 자원의 희소성으로 인해 선택의 문제가 발생함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 합리적 소비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얻는 방법과 소비자 권리를 행사하는 방법을 설명 할 수 있다.
- 우리 지역의 문제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내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측면에서 그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제안할 수 있다


<5, 6 학년군>
우리 경제 성장과정과 문제점, 해결방안, 국제 경쟁력 확보 방안, 헌법, 국회, 행정부, 법원의 구조와 기능, 삼권 분립, 민주화 과정에 대한 이해, 분단 문제, 정보화 영향, 과학 기술 발달의 영향과 문제점


초등학생에겐 이렇게 어려운 내용들을 압축해서 실어놓고, 정작 제대로 배울 만한 중·고등학교에는 이런 내용이 거의 없거나 축소되었다. 경제 교육 입문을 자원의 희소성으로 인한 선택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지만 최근 경제학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3, 4학년까지 소비자로 규정하는 것은 아이들을 기업의 이윤추구 대상으로 삼고 싶어서일까? 경제 성장 과정이나 경제 활동의 3주체, 국제 경쟁력 확보 방안 등에 대해서는 중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낫다.

교과부는 국민들과 교육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생 부담을 줄이고 창의 인성 교육을 위해 교육 내용을 20% 줄인다고 하였다. 그러더니 예상했던 대로 교과 체계도 없고, 초·중·고 간 체계도 뒤죽박죽이며, 내용도 편향적으로 바꿔놓았다. 이런 내용으로 나온 교과서로 배우는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회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지게 될까? MB정권은 내년이면 임기가 끝나는데, 우리 아이들은 엉터리 같은 내용을 계속 배워야 하는 것일까? 이 대답은 교과부가 아니라 국민들이 답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된다.

덧붙이는 글 | 중등 사회 내용은 사회교과모임 선생님들의 연구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초등 사회에는 역사도 같이 포함되어 있는데 역사 내용은 다른 기사에서 다루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중등 사회 내용은 사회교과모임 선생님들의 연구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초등 사회에는 역사도 같이 포함되어 있는데 역사 내용은 다른 기사에서 다루려고 합니다.
#2011개정 사회교과 #2009개정교육과정 #경제교과서 #사회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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