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야. 어쩌면 또또 다리를 만들 수 있겠어"

[연재동화] 안내견 뭉치와 로봇 친구 또또 (9) - 또또에게 다리를

등록 2012.02.06 11:55수정 2012.02.0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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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야. 잘하면 이번에 또또 다리를 만들 수 있겠어."
"삼촌. 무슨 말이야?"
"또또를 안내견 로봇으로 만들고 싶다며? 그러려면 네 말대로 계단이던 어디든 이동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냐."
"물론이지. 현재 계단이 제일 문제야."

"이번에 나랑 박사 공부를 같이 했던 선배가 잠깐 한국에 들어올 일이 있어. 그 선배는 로봇 전문이거든. 또또는 사실 로봇이라기보단 컴퓨터에 가까워. 이 삼촌은 유비쿼터스 전공이라서 로봇 개발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특히 센서 전공이라 어떤 상황을 인식시키는 기능에 대하여는 전문가이지만 로봇 기능에 대하여는 다른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거야. 이번에 오는 장재석 박사는 그런 면에서 네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어. 장 박사님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이용하는 로봇을 주로 연구하거든. 로봇팔이나 로봇 다리 같은 거 말이야. 두다리 보행 로봇 개발 경험도 있고."


"그럼 또또가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거야?"
"글쎄? 아직은 잘 모르지. 장 박사님하고 의논해 보면 좋은 해결책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거야."

민재는 삼촌이 전해 준 말에 흥분하였습니다. 현재 가장 큰 고민이 바로 또또가 계단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삼촌의 선배 박사님이 또또에게 다리를 만들어 줄 수만 있다면 또또는 진짜로 안내견 로봇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민재는 그토록 바라던 자신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로봇 전문 박사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또또가 돌아오자 민재는 다시 바빠졌습니다. 이것저것 시험해 볼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뭉치는 심심해졌습니다. 민재형이 전혀 뭉치하고 놀아 주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껏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산책 하는 일이 전부입니다. 모든 것이 또또 때문이라고 생각한 뭉치는 다시 한 번 또또를 혼내줘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민재의 창문이 환하게 밝았습니다. 그러나 민재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새벽까지 컴퓨터와 씨름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밤을 꼬박 새운 민재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겨우 잠에 들었습니다. 민재의 침대 밑에서 뭉치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서 빨리 민재형이 일어나기를 기다렸지만 민재형은 전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형. 나 응가 마려워요. 빨리 일어나서 산책하러 가자고요.'


뭉치는 침대에 앞다리를 올려놓고 민재의 얼굴을 핥았습니다. 그러나 민재는 끙하고 돌아누워 버렸습니다. 뭉치는 침대에는 올라오지 말라는 민재의 말도 잊은 채 침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민재형. 일어나요. 나 정말 급하다니까!'


뭉치는 민재를 혀로 핥기도 하고 앞다리로 건드려도 보았지만 민재는 전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귀찮게 구는 뭉치를 피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쿨쿨 잠만 잤습니다. 뭉치는 할 수 없이 문을 열려고 했지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앞다리로 벅벅 긁어서 엄마 아빠를 부르기도 했지만 아무도 민재의 방에 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지금 집에는 민재와 뭉치. 그리고 또또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빠도 엄마도 삼촌도 모두 밖에 나가고 없다는 걸 뭉치는 알지 못했습니다. 벌써 한 시간째 침대 위로 방문으로 이리저리 노력을 해보았지만 응가만 점점 더 마려워졌습니다. 뭉치는 할 수 없이 방문 곁에서 응가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민재 침대 밑에서 자기도 배를 깔고 엎드렸습니다.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민재가 일어났습니다.

"아휴. 잘 잤다."

민재는 기지개를 크게 폈습니다. 그런데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습니다.

"엥? 이게 무슨 냄새지."

민재는 킁킁거리며 냄새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방 안을 이리저리 살폈습니다. 냄새를 따라 방 안을 돌아다니던 민재는 뭔가를 밟았습니다.

"이크. 이게 뭐야!"

바로 냄새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한 민재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뭉치이이~~~!! 일어나아앗~~!!"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부르는 소리에 엎드려서 눈치만 보고 있던 뭉치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뭉치. 방에다 응가를 하면 어떡해."
'형. 그게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니까요. 내가 아무리 불러도 형이 안 일어났잖아.'

뭉치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앞발을 들어 민재형의 가슴에 올려놓았습니다. 

'헤헤. 형. 미안하다고요.'

뭉치는 민재에게 애교를 부렸지만 민재는 정말 화가 난 것 같아 보였습니다.

"너 오늘부터 밥도 굶을 줄 알아!"

민재는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가 걸레를 들고 들어 왔습니다. '형. 바닥은 내가 닦을게.'뭉치는 걸레를 앞발로 잡았습니다.

"발 치워!"

뭉치의 앞발을 훽 뿌리친 민재는 대충 방을 닦은 후 거실로 나갔습니다. 뭉치도 민재형 뒤를 졸졸 따라갔습니다. 민재는 거실에 있는 전화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여보세요. 거기 안내견센터죠? 이광훈 선생님 좀 부탁드립니다."
"네. 저는 뭉치를 사용하고 있는 김민재라고 합니다."

민재는 잠시 수화기를 들고 기다렸습니다.

"이광훈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민재예요. 사실은요. 뭉치가 방에다 응가를 했어요."
"뭉치가 방에 응가를? 그거 이상한 일이네. 민재가 많이 놀랐겠구나. 혹시 뭉치 어디 아프지 않니?"
"아니. 잘 모르겠어요. 특별히 몸이 안 좋거나 배가 아픈 것 같지는 않고요."
"그래? 그럼, 다른 날과 뭐 달라진 것은 없니?"

"글쎄요. 제가 늦잠을 자서 다른 날처럼 아침 산책을 못했는데…. 분양 받을 때 배운 것처럼 언제나 아침 산책 때 응가를 시키고 있거든요."
"그래. 그럼 뭉치가 아침에 응가를 못 참고 그랬나 보구나. 혹시 뭉치가 민재 널 깨우진 않던?"

"글쎄요. 제가 잠이 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르는 스타일이라…. 꿈 속에 뭉치가 절 깨우려 한 것도 같고…."
"아마 뭉치가 널 깨웠을 거다. 조금 엄하게 야단을 치렴. 똥은 치우지 말고 바로 뭉치 앞에 두고 말이야."

"이미 똥은 치웠는데요.그럼 어떡하죠? 벌로 며칠 밥 주지 말고 굶길까요?"
"글쎄. 내 생각엔 밥은 주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방에다 똥을 싼 건 뭉치가 잘못한 것이지만 뭉치로서도 어쩔 수 없이 그랬을 수도 있고 말이야."

민재는 이광훈 선생님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눈 후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뭉치를 바라보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뭉치. 다음에 또 그러면 정말 혼날 줄 알아. 밥도 안 줄 거야."

뭉치는 민재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마구 핥았습니다.

'민재형. 미안하다니까. 그렇게 무섭게 하지 말고 나 용서해 줘~.'

뭉치가 자신에게 안겨 오자 민재도 뭉치를 끌어안고 같이 바닥을 뒹굴었습니다.

"아, 참! 오늘 삼촌하고 약속했는데 이거 늦겠다 "

민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외출 준비를 하였습니다. 뭉치에게도 노란 조끼도 입히고 하네스도 채웠습니다. 뭉치도 오랜만에 외출이라 신이 났습니다. 삼촌이 근무하는 회사는 시내 중심가에 있습니다. 민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입니다.

민재는 휴대전화를 꺼내어 내비게이션 기능을 작동시켰습니다. 먼저 갈아타야 할 역과 도착역을 확인했습니다. 안내견이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더라도 시각장애인이 길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장애물을 피하거나 알려 주는 역할은 할 수 있지만 길을 가르쳐 주지는 못합니다.

시각장애인이 가야 할 길은 스스로 미리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민재는 자신이 개발한 휴대폰 내비게이션 시스템으로 미리 길을 확인한 것입니다. 일반 핸드폰 기능에 시각장애인이 사용 가능하도록 음성 기능을 넣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가르쳐 준 대로 지하철을 갈아타고 삼촌네 회사 근처 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지하철역 내부에서는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하철을 갈아탈 때 몇 사람에게 길을 물어야 했습니다.

'또또가 안내견 로봇이 되려면 지하철역 내부 구조의 데이터베이스도 필요하겠는 걸.'

민재는 도착역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며 생각했습니다.

"뭉치. 개찰구 찾아."

뭉치는 민재형의 말에 개찰구를 향해 움직였습니다.

'어! 예쁜 누나다.'

개찰구를 향해 걷던 뭉치에게 미현 누나가 보였습니다. 민재형이 마음속으로 좋아하고 있는 누나입니다. 뭉치도 그걸 잘 알고 있습니다.

'형을 예쁜 누나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면 칭찬해 줄 거야. 오늘 응가한 실수도 용서해 줄거고.'

뭉치는 생각하며 미현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습니다. 예쁜 누나는 개찰구 전에 오른쪽으로 향했습니다. 뭉치도 누나를 따라갔습니다. 뭉치가 누나가 들어간 곳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습니다.

"학생. 여긴 여자 화장실이야. 어디 가려고 그래?"

화장실에서 나오던 뚱뚱한 아줌마가 민재에게 말했습니다.

"어? 이쪽 개찰구 방향 아닌가요?"
"개찰구? 아닌데. 여긴 여자 화장실이야."

민재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뭉치. 이 녀석. 개찰구 찾으라니까 여자 화장실엔 왜 온 거야?"

민재는 무안해서 뭉치를 나무랐습니다.

"호호호! 그랬구나. 이 녀석 바보같이 개찰구도 못 찾은 거야? 학생 날 따라와. 내가 알려 줄게."

아줌마는 민재의 팔을 잡고 개찰구로 안내해줬습니다. 민재는 아줌마가 뭉치를 바보 같다고 하자 조금 속이 상했습니다.

"아줌마. 그게 아니고요. 오늘 우리 뭉치가 이 역이 처음이라서 조금 헛갈렸나 봐요. 원래는 무지하게 똑똑하거든요."
"그래? 얼굴은 그렇게 보이네. 아주 똑똑해 보여. 이 녀석아. 앞으로 여자 화장실엔 가지마라."

아줌마는 깔깔깔 웃으며 뭉치에게 말했습니다.

'어.그게 아닌데. 저 안에 형이 좋아하는 예쁜 누나가 있다고요.'

뭉치는 계속 화장실 쪽을 쳐다보며 걸었습니다. 지하철역을 나온 민재는 다시 내비게이션 모드로 휴대폰을 전환했습니다. 역에서부터 삼촌네 회사까지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으로 제대로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 도착하자 삼촌과 장 박사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가 민재로구나. 발명왕. 민재. 반갑다."
"안녕하세요? 김민재입니다."
"장 박사님. 우리 민재가 지금 안내견 로봇을 만들고 있어요."
"안내견 로봇이요?"

"네. 지금 민재가 데리고 있는 뭉치처럼 안내할 수 있는 로봇인 거죠. 현재 가장 어려운 문제가 계단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민재야. 계단을 걸을 수 있도록 로봇을 만드는 일은 그리 간단한 기술은 아니야. 지금 세계적으로도 서서 걷는 로봇. 즉 직립 보행을 하는 로봇은 그리 많지 않단다. 개발된 로봇들도 지금은 연구실 수준에서 개발된 것이고 실제 생활에서 사용되는 로봇은 거의 없어."

"그럼 우리 또또는 걸을 수 없다는 말인가요?"
"민재가 오기 전에 김 박사와 또또의 설계도를 살펴보았는데 또또에게 다리를 만들어 주기는 조금 어려워 보이는구나. 억지로 만들려면 가능도 하겠지만 또또는 처음부터 계단을 이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제품이 아니어서 말이야."

"왜요? 그냥 걸을 수 있는 다리를 또또에게 붙여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단다. 우선 또또가 움직이는 운영체제가 로봇을 움직이는 운영체제와 근본적으로 다르거든. 그래서 내가 그동안 개발했던 로봇 다리 말고 다른 형태로 계단을 걸을 수 있도록 연구해 봐야겠구나. 아무래도 쉽지는 않겠어."

"박사님 말대로 또또에게 다리를 만들어 줄 수 없다면 또또가 계단을 올라갈 수 있는 건 포기해야 하는 건가요?"
"그렇게 포기할 문제는 아니고. 예를 들어 현재도 로봇 다리 말고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방법들은 많이 개발되어 있단다. 휠체어 중에서도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제품도 있고. 무한궤도를 이용한 계단에서의 이동이 가능한 기술도 있어. 다리만이 유일하게 계단을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라는 이야기지."

민재는 장 박사님의 설명을 듣고 조금 안심했습니다. 사실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어야 안내견 로봇으로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삼촌네 회사를 나온 민재는 집으로 향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또또가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을까?'라고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안내견 뭉치 #로봇 또또 #로봇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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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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