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점 비석제오리 공룡발자국 바로 옆에 있는 문익점 비석. 제오리는 문익점의 후손이 목화를 재배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비석은 너무 낡아 보기에 안쓰러울 지경.
정만진
하지만 목화가 처음 재배되었다는 공룡발자국 앞에 가보면, 밭[田]만 남긴[遺] 채 목화는 가고 없고 초라한 비석만 외로이 남아 슬픔을 표(表)시하고 있다. 공룡발자국 옆에 글자가 보일 듯 말 듯한 낡은 얼굴로 남아 있는 '忠宣公 三憂堂 文先生 木緜 遺田表(충선공 삼우당 문선생 목면 유전표)' 비석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위태로워 보인다.
금성산 고분군 앞에서 본 1991년의 기념비에는 '주변을 정비하고 면화를 파종하여 선생의 큰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를 쓴다고 했지만, 바람 같은 세월의 무상함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무서운 귀신인 모양이다.
'우리 겨레에게 따뜻한 옷을 선물했던 선생의 비석이 눈비에 젖고 폭염에 짓눌려 이제 그만 제빛을 잃었구나…. 목화도 가고 공룡도 사라져버린 이곳에 저 희뿌연 비석과 무거운 발자국만이 상처처럼 남아 인간들의 가벼운 무심(無心)과 자연의 무거운 이치를 가르쳐주고 있구나….'물레, 무명, 문익점 손자들의 이름에서 온 말목화에서 실을 뽑는 기계를 '물레'라 한다. 기계를 만든 사람의 성명 '문래'에서 따온 이름이다. 문래(文來), 문익점의 손자이다. 그런가 하면, 목화를 재배하여 만들어낸 옷감을 '무명'이라 한다. 옷감 짜는 베틀을 만들고 베 짜는 방법을 창안한 사람의 성명 '문영'에서 따온 이름이다. 문영(文英), 역시 문익점 선생의 손자이다.
그리고 의성에 목화를 크게 심어 우리 민족 모두가 '백의민족'의 따뜻함을 맛볼 수 있게 해준 사람 문승로 또한 문익점의 손자이다. 처음으로 목화 재배에 성공하고, 그것으로 옷감을 만드는 방법까지도 연구해낸 정천익은 문익점 선생의 장인어른이다.
정천익과 문익점 선생도 하늘나라로 가고, 선생의 손자들인 문승로, 문래, 문영 또한, 선생을 따라 목화를 심고 가꾸고 사랑하였던 것처럼 그렇게 그 뒤를 따라서 갔다. 뿐만 아니다. 목화마저도 이제는 자신을 지켜주었던 그분들을 따라가려는 것인지, 찾아보기가 힘들 지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