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법원이 영화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을 계기로 깊어지는 사법 불신에 관련해 개최한 '소통 2012 국민 속으로'의 행사. 사법피해자들은 이날 현장에서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행사 시도자체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후한 평가를 내렸다.
행사에 참가해 목소리를 높였던 사법피해자들은 "지금 현재는 실망이지만 법원이 목소리라도 들어준 것에 대해서는 만족한다"고 평가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중앙지법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행사는 사법부에 불만을 품은 일부 참가자들에 의해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또한, 행사 마지막에는 법원의 일방적인 행사 진행에 불만을 품은 일부 참가자들에 의해 행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는 등 아슬아슬하게 진행됐다.
소동으로 시작된 '소통'
행사가 열린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대회의실에는 500여 명의 시민과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 등을 연출한 이정향 감독, 판사 출신인 김상헌 엔에이치엔(NHN) 대표이사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그러나 시작 직후부터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숨진 아들과 관련한 재판 결과에 불만이 있다는 50대 남성이 단상 맞은 편에 영정사진을 들고 앉아 있다가 법정 경위들에게 밖으로 끌려 나간 것. 이에 대해 일부 참석자들이 "얼마나 억울하면 그렇겠느냐. 그냥 놔줘라"며 이 남성의 행동에 동조했다. 장내는 크게 술렁였다.
또, 행사에 참가한 일부 사법피해자들은 법원 측이 행사를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다며 행사장 곳곳에서 고함을 지르며 사법부에 대한 원망과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특히 행사 마지막 순서인 '시민과의 대화' 시간에는 법원 측이 "사전질문서를 제출한 사람에게만 질문 기회를 주겠다"고 하자 사법피해자들은 "무작위로 말하게 해 달라" "누구를 위해 토론회를 하는 거냐"며 강력하게 항의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조국 "울부짖음을 불만으로 치부하지 말고 귀 기울여야"
패널로 참석한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화 <부러진 화살> 사태를 거론하면서 "영화 <부러진 화살>은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영화와 사실 사이의 '싱크로율'을 따질 일은 아니다"라며 "국민들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울부짖는 것을 사회적 불만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판결에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또한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권위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재판을 경험하고 있으며, 판사라는 전문가들에 의한 속도와 효율 중심의 재판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위기와 불신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살인사건 피해자를 다룬 영화 <오늘>의 이정향 감독은 재판에서 피해자 보호 강화를 주문했다. 이 감독은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은 재판과정에서의 수치감과 모멸감으로 인해 자살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며 "가해자를 위해서는 심지어 국선 변호사라도 있지만 피해자를 대리하는 것은 검사일 뿐이고 검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바꿀 수도 없을 뿐 더러 목소리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상헌 엔에이치엔 대표는 "사회 전반적으로 권위주의가 해체되는 과정으로 법원에만 한정되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법관들이 일반인의 마음으로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패널들의 이같은 의견에 대해 법원 측 패널인 양현주 부장판사는 "갈등을 풀어야 되는 법원이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현재 상황이 유감스럽다"며 "재판 과정에서 당사자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법정 변론을 최대한 보장해야 하며, 재판부 역시 서둘러 결론을 내기보다 적극적으로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답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는 없지만 60점 주고 싶다"
영화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 상영을 계기로 깊어지는 국민 불신에 대해 법원이 나름대로 고심해서 마련한 이날 행사에 대해 사법피해자들은 어떻게 평가를 했을까?
실제 이날 행사자에는 법원 근처에서 1인 시위 등을 통해 자신의 불만을 표출해왔던 낯익은 얼굴들이 상당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행사에 대해 큰 목소리로 항의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 시민과의 대화 순서에서는 어렵게 마이크를 넘겨받은 뒤 자신들이 가졌던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행사에 참가해 의견을 피력했던 최종주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법 피해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법정 녹음을 의무화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며 행사 자체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후한 평가를 내렸다.
그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60점은 주고 싶다"며 "일단은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은 다행"이라고 밝혔다. 이어 "물론 뚜렷한 결과나 확답은 없었지만 이런 행사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면 사법피해자들도 극한적 불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종주씨는 2300여 명의 사법피해자들이 참가해 활동하고 있는 '좋은사법세상'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한편, 2200여 명의 사법피해자들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관청피해자모임' 정대택 공동대표는 "법원은 쌍방향 소통을 하겠다고 이번 행사를 개최했지만, 사전 질의서를 접수하겠다며 구색만 갖춘 후 실제로는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선정한 패널과 사전에 선정한 질의서만 채택하는 등 일방적 소통만 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법원이 처음으로 연 이 행사의 의미는 깊다"며 "법원이 진정으로 국민들과 소통하려는 진지한 자세를 끝까지 취한다면 국민들의 시선도 차갑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행사 내내 가장 큰 목소리로 거친 항의를 했던 배광심(62)씨는 행사 종료 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행사의 정례화를 주장했다. 그는 "사법부가 오늘과 같이 소통을 시도한 것에 대해서는 옳다고 생각한다"며 "사법피해자들의 사연은 너무나 깊고 깊어서 한 번의 시도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행사를 열었다는 비난을 면키 위해서 앞으로 이런 행사를 정례화해야 할 것"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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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피해자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행사 정례화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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