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왜 나를 체포하지 않았나

부러진 화살보다 더 기가 막힌 강정의 현실

등록 2012.02.11 14:11수정 2012.02.1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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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4일 저녁 볼 일이 있어 강정마을을 방문했다가 그날 '신짜밴드'라는 노래 팀 맴버들이 제주해군기지 사업부지 내 구럼비 바위에 들어가서 노래 부르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신짜밴드' 맴버들은 그래도 구럼비 바위를 봐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얼마나 구럼비 바위가 보고 싶었으면 체포당할 것을 각오하고 들어갔을까? 한편 구럼비 바위에 들어가서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체포됐다는 사실이 의아스러웠다. 현행범으로 체포까지 당할 사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구럼비 바위에 들어갔다 체포됐된 사람은 신짜밴드 맴버들만이 아니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체포됐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강정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은 구럼비 바위에 들어가기만 하면 당연히 체포된다고 믿고 있었다.

 

무슨 죄명으로 체포·연행됐는지 알아보니 경범죄처벌법 상의 무단출입죄였다. 구럼비 바위는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고 '신짜밴드' 맴버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구럼비 바위로 들어갔기 때문에 체포됐던 것이다.

 

죄명을 알고 나니 황당했다. 무단출입죄와 같은 경범죄는 주거가 불명하지 않은 이상 현행범 체포를 할 수가 없다고 형사소송법에 명백하게 규정돼 있다. 그런데 신짜밴드 맴버들은 체포 당시 신원확인을 통해 주거가 분명한 자들임이 확인됐었다. 그럼에도 경찰은 무조건 체포한 것이다. 형사소송법을 위반한 체포라 아니할 수 없고 경찰이 불법체포죄를 범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또한 무단출입죄가 성립하는지조차 의문이 들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거주·이전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기본권을 누린다. 이러한 거주·자유는 법률로만 제한할 수 있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제한해야 한다. 구럼비 바위에 대한 자유로운 출입도 거주·이전의 자유에 속한다.

 

따라서 출입을 금지시키려면 권한이 있는 자가 법률에 근거하여 적법한 절차를 따라 조치를 취해야 한다. 더군다나 형사처벌까지 하고자 한다면 죄형법정주의에 의해 더욱 엄격한 법률의 근거가 요구된다. 그런데 구럼비 바위는 공유수면이라 법상 도지사에게 관리권이 있다. 따라서 도지사가 법률에 근거해 적법한 절차에 의해 출입금지 조치를 하지 않은 이상 구럼비 바위를 출입금지구역으로 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구럼비 바위에 들어간다 해도 무단출입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에 나는 강정마을 회장에게 혹시 도지사가 구럼비 바위에 대한 출입금지조치를 취한 적이 있는지 물어봤다. 회장은 그런 조치가 있었다면 당연히 공문이 왔을 것인데 그렇지 않은 것으로 봐서 없었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경찰이 무고한 사람들을 범법자로 몰아 체포했을 가능성이 매우 큰 셈이다.

 

나는 경찰의 이러한 불법 체포를 더 이상 묵과할 수가 없었다. 누구나 체포의 두려움 없이 구럼비 바위를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기본권이 한낱 장식품이 아니라 국민의 생활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것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강정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해군과 경찰이 훨씬 심한 불법을 저질러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곳이 강정마을 아니냐고 반문했다. 자신들이 아무리 규탄 기자회견을 해도, 고소·고발을 해도 해군과 경찰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데 뭘 어떻게 하냐고 했다. 그러면서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작년에 해군은 여성도 폭행하고, 대학생들도 수차례 폭행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처벌은커녕 가벼운 문책이라도 받은 군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작년 가을에는 송강호 박사가 기도하러 구럼비 바위에 들어가다가 바다 한 가운데서 해군의 특수부대 대원들에게 폭행과 물고문을 당하는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군인이 민간인을 폭행하고 고문하는 것은 전쟁 때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때 강정주민들과 제주지역 시민단체들은 격분해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형사 고발도 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강정마을은 인권의 사각지대로 전락했다는 사실만 절감하게 만들 뿐이었다.

 

고심 끝에 내가 직접 구럼비 바위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야만 불법 체포가 더 이상 자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구럼비 바위로 들어갈 것임을 밝히고 만일 경찰이 체포한다면 소송을 통해 경찰의 불법을 밝혀낼 것이며 처벌을 한다면 무죄투쟁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2월 9일 오후 2시경 카약을 타고 구럼비 바위로 들어갔다. 신고가 들어갔고 경찰이 출동했다. 공사업체 측에서는 처벌을 원한다고 했고 필자는 경찰에게 현행범 체포를 요구했다. 체포하지 않으면 구럼비 바위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나를 체포하지 않았다. 또한 처벌 여부는 상부의 지침을 받아 결정하겠다고 했다.

 

구럼비 바위에 들어온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더 이상 구럼비 바위에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나는 이제 나가겠다고 하며 경찰에게 에스코트를 요구했고 경찰차를 타고 해군기지 사업단 정문으로 당당히 나올 수 있었다.

 

내가 경찰에 체포되지 않고 돌아오자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무사히 돌아올 수 있냐고 놀랍다고 했다. 나는 경찰이 법대로 했을 뿐이며 앞으로는 주민들과 활동가들도 구럼비 바위에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반신반의했다. 필자가 판사 출신의 로스쿨 교수니까 봐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몹시 분개해 했다. 자신들은 힘도 없고 빽도 없으니까 경찰이 마구 체포한 것이 아니냐며 어떻게 사람을 이런 식으로 차별할 수 있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그런 주민들과 활동가들을 보며 마음이 몹시 좋지 못했다. 경찰이 판사 출신 로스쿨 교수라서 봐준 것이 아니다.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법을 잘 모르니까 우습게보고 불법적인 체포를 남발했으나 필자는 법률전문가라 후환이 두려워서 마음대로 불법을 저지를 수가 없었을 뿐이다.

 

요즘 영화 <부러진 화살>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재판이 개판되는 현실을 리얼하게 그려낸 탓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며 사회적으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부러진 화살보다도 더 기가 막힌 현실이 매일 벌어지는 곳이 있다. 강정이 바로 그곳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주지역 인터넷 신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2.02.11 14:11 ⓒ 2012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주지역 인터넷 신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기본권 #구럼비바위 #해군기지 #강정마을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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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헌법가치가 온전히 구현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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