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4월 당시독일-터키 순방길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이 전세특별기 안에서 출입기자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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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역대 대통령들도 외국을 방문할 때면 대형 사건-사고나 정치적 악재가 터지곤 했다. 그러나 이런 '순방 징크스'는 어떤 인과관계가 있어서가 아니고 갈수록 국제관계가 중요해져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잦기 때문에 해외순방 중에 국내에서 사건-사고가 터질 '확률'도 그에 비례한 것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2003년 10월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 도중에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 비리 사건이 터지는 등 '순방 징크스'라고 이름붙일 만한 악재들이 많았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귀국 비행기 안에서 순방에 동행한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해외에 나가면 일정도 빡빡하고 몸은 고단하지만 기분은 좋은데 귀국할 생각을 하면 골치부터 아프다"고 푸념하곤 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순방 징크스'가 더 많았다. 1998년 3월 취임 한 달만에 영국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했을 때 한나라당의 김종필 총리서리 국회 인준 '발목 잡기'를 시작으로 ▲간첩선 침투사건(1998년 11월 APEC정상회의) ▲한일어업협상 비준동의안 파동(1998년 12월 아세안정상회의) ▲옷로비 사건(1999년 5월 러시아-몽골 국빈방문) ▲이회창 총재의 '제왕적 대통령' 비판(1999년 9월 APEC정상회의) ▲한빛은행 대출 사건 및 한나라당 장외투쟁(2000년 9월 유엔 '새천년 밀레니엄 정상회의') 등으로 거의 예외 없이 정국이 시끄러웠다.
문제는 해외순방 중에 발생한 국내의 정치적 악재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여론을 존중했지만 여론에 끌려 다니지는 않았다. 여론이 반드시 진실인 것은 아니며 여론은 또한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99년 5월 러시아-몽골 국빈방문 후 귀국길에 야당과 언론이 '옷 로비' 사건에 연루된 김태정 법무장관의 퇴진을 주장한다는 보고를 받고 "마녀사냥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김 대통령은 참모들을 옹호하다가 여론의 압력에 밀려 김태정 장관과 박주선 법무비서관의 사표룰 수리했지만 이후 법원은 옷 로비를 실체 없는 사건으로 결론지었다.
노무현 대통령 "대통령이 난감해 하고 있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3월 6일 아침 아프리카 3개국 순방 출국을 앞두고 이백만 홍보수석을 대통령 관저로 불렀다. 당시 한나라당은 이해찬 국무총리가 3.1절에 골프를 친 것을 문제삼아 사퇴를 요구하는 '골프 정국'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백만 수석에게 "순방중에 '골프 정국'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니 '대통령이 난감해 하고 있다'는 수준에서 메시지 관리를 하는 게 좋겠다"고 지시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출국하자 '골프 게이트'라고 명명하며 더 강경하게 이 총리의 사퇴를 주장했다. 기자들도 총리 거취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뭐냐고 다그쳤다.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고 있다가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여론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을 지경이었다. 이백만 수석은 다음날 기자들을 만나 "대통령은 시시각각으로 국내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면서 "총리 골프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난감해 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든 언론이 '대통령, 난감해한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노 대통령은 귀국 후 이 총리의 사의를 수용했다.
노 전 대통령도 임기말에 이명박 대통령처럼 인기는 없었지만 측근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국민을 속이지는 않았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돈봉투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혹시 보좌관 등 누가 했나 싶어서 알아봤는데 아무도 돈을 준 사람도 돌려받은 사람도 없다고 한다"고 잡아뗐다.
지금 와서 보면, 보좌관 등 아랫사람들에게 검찰에서 허위진술을 하도록 지침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조선일보> 출신인 김효재 수석은 버젓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후배기자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이쯤 되면 거의 '막장 수준'이다. 그런데 대통령 지지율은 아직 '막장'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 아직 '막장'이 아니어서 심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