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권 '거짓말', 노무현과 너무 달랐다
여의도-청와대 돈봉투 악취 진동... 분통 터져

[정치 톺아보기] 파탄난 조중동-MB 연대, '막장'의 끝이 보인다

등록 2012.02.13 09:32수정 2012.02.1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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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0일 UAE 공항에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
2월 10일 UAE 공항에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청와대

"하금열 대통령실장은 오늘 중동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께 김효재 정무수석의 사의 표명 사실과 관련 상황에 대해 보고를 드렸다. 이에 대해 대통령께서는 아무 말씀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으셨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10일 김효재 정무수석의 사의 표명과 관련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브리핑한 내용이다. 골자는 '아무 말씀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정무수석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관련돼 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바로 이런 국정 최고책임자의 무반응이 국민을 분통 터지게 하는 대목이다.

대통령이 가타부타 아무 말씀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으니 국민은 그 속을 알 길이 없다. 불통 그 자체다. 국정 운영도 운동경기처럼 잘할 때도 잘못할 때도 있다. 잘못했으면 잘못을 인정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잘못이 없는 데도 야당과 언론이 다그치면 국민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면 된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니다. 그저 '싸고 뭉개기'만 있을 뿐이다.

대통령도, 국회의장도, 정무수석도 '싸고 뭉개기'만

하기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기는 하다. 지난해 9월 30일 대통령이 앞장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며 "임기 끝까지 열심히 일하겠다"고 물색없는 자기 암시를 내뱉은 이후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것이 친인척과 측근 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쥐 잡기의 달인'인 명진 스님은 "포항에서는 '도둑'을 '도덕'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고 일갈했지만, 그 도덕적 완벽의 절정은 대통령이 아들 명의로 매입한 내곡동 사저 땅 의혹이다. 이 악재 탓에 10월 재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을 민주당에 '헌납'했으니 대통령이 입이 열 개라도 '꿀 먹은 벙어리 신세'일 수밖에.

대한민국 정부 수반이자 국군 통수권자로서 공식 의전서열 1위인 대통령이 이 지경이니, 돈봉투에 연루된 서열 '넘버 투' 국회의장은 한 달이 넘도록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 흐릿하다. 국회와 정당 관련 업무를 대통령에게 보좌하는 정무수석은 한 달 넘게 거짓말로 대통령 뒤에 몸을 숨기는 비겁한 행태를 보여왔다. 여의도와 청와대에서 돈봉투 비리의 뚜껑이 열려 한 달 넘게 냄새가 진동했지만 치우는 사람은 없고 그저 '싸고 뭉개기'만 있을 뿐이다.

 9일 오전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책임을 지고 전격사퇴를 발표한 박희태 국회의장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을 나서고 있다.
9일 오전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책임을 지고 전격사퇴를 발표한 박희태 국회의장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어쩌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대통령의 인지부조화가 이들을 '끝까지 싸고 뭉개는' 쪽으로 이끌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일국의 국회의장이 직접 국민 앞에 서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도 모자랄 판인데 대변인을 통해 5줄짜리 사퇴서를 읽게 하고 떠나는 것으로 끝이다. 그의 언행에서 돈봉투를 돌린 것에 대한 죄의식은 전혀 찾을 길 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처럼 운 나쁘게 들켜서 신세 조졌다는 푸념만 넘친다.


정무수석이라는 사람은 거짓말을 해놓고 들킨 다음에 고작 한다는 얘기가 마치 큰 결단이라도 내린 듯 "모든 정치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뿐이다. 돈봉투 의혹을 폭로한 "고승덕 의원과는 눈길 한번 나눈 적 없다"는 강한 부인으로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한 사죄와 그에 따른 도의적, 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없다. 그의 언행에서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찾을 길 없다. 재수가 없어서 들통 났다는 '운 타령'만 있을 뿐이다.

대통령과 청와대 반응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면, 청와대 일부 참모들은 '순방 징크스'를 탓하는 모양이다. 이를테면 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뉴욕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 대한 사전영장이 청구됐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지난달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는 돈봉투 사건이 터지는 등 순방 중 '악재'가 계속 터지곤 했다는 것이다.


MB와 역대 대통령들의 '순방 징크스'

 지난 2005년 4월 당시독일-터키 순방길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이 전세특별기 안에서 출입기자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다.
지난 2005년 4월 당시독일-터키 순방길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이 전세특별기 안에서 출입기자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다.김당

따지고 보면 역대 대통령들도 외국을 방문할 때면 대형 사건-사고나 정치적 악재가 터지곤 했다. 그러나 이런 '순방 징크스'는 어떤 인과관계가 있어서가 아니고 갈수록 국제관계가 중요해져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잦기 때문에 해외순방 중에 국내에서 사건-사고가 터질 '확률'도 그에 비례한 것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2003년 10월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 도중에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 비리 사건이 터지는 등 '순방 징크스'라고 이름붙일 만한 악재들이 많았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귀국 비행기 안에서 순방에 동행한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해외에 나가면 일정도 빡빡하고 몸은 고단하지만 기분은 좋은데 귀국할 생각을 하면 골치부터 아프다"고 푸념하곤 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순방 징크스'가 더 많았다. 1998년 3월 취임 한 달만에 영국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했을 때 한나라당의 김종필 총리서리 국회 인준 '발목 잡기'를 시작으로 ▲간첩선 침투사건(1998년 11월 APEC정상회의) ▲한일어업협상 비준동의안 파동(1998년 12월 아세안정상회의) ▲옷로비 사건(1999년 5월 러시아-몽골 국빈방문) ▲이회창 총재의 '제왕적 대통령' 비판(1999년 9월 APEC정상회의) ▲한빛은행 대출 사건 및 한나라당 장외투쟁(2000년 9월 유엔 '새천년 밀레니엄 정상회의') 등으로 거의 예외 없이 정국이 시끄러웠다.

문제는 해외순방 중에 발생한 국내의 정치적 악재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여론을 존중했지만 여론에 끌려 다니지는 않았다. 여론이 반드시 진실인 것은 아니며 여론은 또한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99년 5월 러시아-몽골 국빈방문 후 귀국길에 야당과 언론이 '옷 로비' 사건에 연루된 김태정 법무장관의 퇴진을 주장한다는 보고를 받고 "마녀사냥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김 대통령은 참모들을 옹호하다가 여론의 압력에 밀려 김태정 장관과 박주선 법무비서관의 사표룰 수리했지만 이후 법원은 옷 로비를 실체 없는 사건으로 결론지었다.

노무현 대통령 "대통령이 난감해 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3월 6일 아침 아프리카 3개국 순방 출국을 앞두고 이백만 홍보수석을 대통령 관저로 불렀다. 당시 한나라당은 이해찬 국무총리가 3.1절에 골프를 친 것을 문제삼아 사퇴를 요구하는 '골프 정국'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백만 수석에게 "순방중에 '골프 정국'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니 '대통령이 난감해 하고 있다'는 수준에서 메시지 관리를 하는 게 좋겠다"고 지시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출국하자 '골프 게이트'라고 명명하며 더 강경하게 이 총리의 사퇴를 주장했다. 기자들도 총리 거취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뭐냐고 다그쳤다.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고 있다가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여론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을 지경이었다. 이백만 수석은 다음날 기자들을 만나 "대통령은 시시각각으로 국내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면서 "총리 골프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난감해 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든 언론이 '대통령, 난감해한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노 대통령은 귀국 후 이 총리의 사의를 수용했다.

노 전 대통령도 임기말에 이명박 대통령처럼 인기는 없었지만 측근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국민을 속이지는 않았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돈봉투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혹시 보좌관 등 누가 했나 싶어서 알아봤는데 아무도 돈을 준 사람도 돌려받은 사람도 없다고 한다"고 잡아뗐다.

지금 와서 보면, 보좌관 등 아랫사람들에게 검찰에서 허위진술을 하도록 지침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조선일보> 출신인 김효재 수석은 버젓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후배기자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이쯤 되면 거의 '막장 수준'이다. 그런데 대통령 지지율은 아직 '막장'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 아직 '막장'이 아니어서 심각

국정지지율 변화 추이
국정지지율 변화 추이EAI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중 '소통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보수언론 등 한국 사회의 주류층이 거의 대부분 등을 돌린 상황에서도 노 대통령은 임기 후반기 30~35% 수준의 국정 지지도를 유지했다.

이에 비해 보수적인 여론 분석-연구기관인 동아시아연구원(EAI)의 1월 말 여론조사(전국 성인남녀 1천 명 대상 유선전화 RDD 전화면접조사, 95%신뢰수준±3.1%) 결과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25.2%, 잘못하고 있다는 여론은 71.2%다. 국민 4명 중 1명만 지지하고 3명은 잘못을 질책한다. 직접선거로 뽑힌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제외하곤 최하위다.

지난 4년간의 국정 지지율 추이를 보면, 2009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국면에서 28.5%로 일시적으로 20%대로 떨어진 적은 있지만, 두 달 연속 20%대 지지율에 머문 것은 2008년 촛불시위 정국 이후 처음이다. 현 정부의 정치적 기반이 되어온 보수층에서조차 긍정적인 평가는 32.5%, 부정적 평가는 64.3%로 지지층 이탈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현재의 하락세가 일시적 현상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초부터 불거진 대통령 부인 사촌오빠의 저축은행 구명로비 청탁에 이은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실의 불법 로비자금 수수 의혹,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측근 비리 의혹과 중도 사퇴, 박희태 국회의장실의 돈봉투 살포 의혹 등 친인척 및 측근 비리와 선관위 디도스 공격 파문에 이르기까지 모두 대통령과 청와대가 관련돼 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6인 원로회의'의 한 사람으로 참여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을 제18대 총선 공천 탈락에도 전폭 지원으로 원외 당대표를 만든 사람은 이 대통령 자신이다. 또 이명박 대선캠프의 모태인 안국포럼 시절부터 참여한 '친이 직계'인 김효재 의원을 당대표 선거캠프의 좌장(상황실장)으로 보내 문제의 '돈봉투'를 만지게 한 사람도 이 대통령 자신이다.

이 대통령의 물색없는 인사가 제 발등 찍는 망사(亡事)

 이명박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할 '완주조'로 받아들여졌던 김효재 정무수석(사진 왼쪽)과 김두우 홍보수석(사진 오른쪽).
이명박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할 '완주조'로 받아들여졌던 김효재 정무수석(사진 왼쪽)과 김두우 홍보수석(사진 오른쪽). 남소연/연합뉴스

김효재 의원을 청와대로 부른 것도 이 대통령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교체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참모진 개편을 단행했다. 총선 출마 예정자들을 교체하고 국정운영의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한 것으로 사실상 이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할 '완주조'의 진용을 꾸린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김 의원이 뱃지를 떼고 정무수석으로 기용되었으며, 김두우 청와대 기획관리실장은 저축은행 로비의혹에도 홍보수석으로 승진 기용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가장 신임한다는 김두우 수석은 불과 석 달도 안 되어 저축은행 구명 로비와 관련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김효재 전 정무수석은 그로부터 8개월 만에 당대표 선거에서 돈봉투를 살포한 혐의로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있다. 이 대통령 임기 '완주조'로 진용을 짠 지난해 6월 인사는 결과적으로 '비리 완주조'를 뽑은 셈이다. 그러니 누굴 탓하랴. 결국 이 대통령의 물색없는 인사가 제 발등을 찍는 망사(亡事)였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각각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잔뼈가 굵은 언론인 출신이다. <동아일보> 정치부장와 한국 갤럽 대표를 지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까지 포함하면 '조중동' 출신이 사이 좋게 끼어 있다. 역시 <조선일보> 출신으로 뇌물 혐의로 구속된 신재민 전 차관과 보좌진이 디도스 공격 사건에 연루된 최구식 의원까지 합치면 MB 정권에 참여한 '조중동' 출신 언론인들의 몰락이다. 그나마 국민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조중동-MB연대'라는 '막장의 끝'이 보인다는 점이다.
#돈봉투 #이명박 #박희태 #김효재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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