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영화는 맥락상 100% 사실"

[대담] 김명호-박훈, 영화 개봉 뒤 첫 만남

등록 2012.02.16 09:19수정 2012.02.1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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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인물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와 박훈 변호사가 14일 창원에 있는 박훈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 윤성효


<부러진 화살>(감독 정지영)이 극장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실제 인물인 김명호(55) 전 성균관대 교수와 박훈(45) 변호사가 영화 개봉 이후 처음으로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난 건 6개월 만으로 김 전 교수가 14일 오후 경남 창원에 있는 박 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박 변호사는 오는 4·11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창원을'에 출마하는데, 김 전 교수는 그의 선거 상황도 궁금해했다. 최근 김 전 교수는 '석궁 사건'의 전모와 판사·검사·헌법재판관을 신랄하게 비판한 <판사 니들이 뭔데?>를 펴냈다. 대화는 책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박 변호사가 "책 한번 보자"는 말부터 했다. 박 변호사는 김 전 교수가 메고 온 배낭에 책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없어. 사서 봐."
"정말 안 가지고 왔어? 사인해서 한 권 줘."
"영업하는 친구한테 딱 10권 받았어. 책은 사서 보라구.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상한 문화가 있어. 야구장 티켓도 공짜로 받으면 좋아하구 말이야."

박 변호사는 더 이상 책을 달라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 "좀 팔릴 것 같냐"고 물었다. 김 전 교수는 "전체 비용이 700만 원가량 들어갔는데, 친구들이 좀 사주고 해서 본전은 뽑을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좀 팔리는 모양"이라고 대답했다. 김 전 교수는 '석궁김명호'라는 출판사를 차려 책을 냈다.

언론 이야기부터 나왔다. 김 전 교수는 "언론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똥냄새 나는 파리처럼 우르르 달려든다, 2007년에는 (나를)테러범으로 몰더니 이제는 사법부를 씹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사법 불신이라고 하는 게 호도하고 있다. 국민 소통과 관계없다. 한국 사람이 한국말 모르나. 판사들이 법을 안 지키는 게 문제다. 사법 불신은 판사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간단하다. 국민한테는 복잡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소통이나 권위와 상관없다. 오만해서 분노하는 게 아니다."

판사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 사례를 물었더니, 김 전 교수는 "그건 쉽다"고 대답했다. 그는 법전도 보지 않고 법률 조항을 줄줄 외며 설명했다.


"형사소송법(184조)에 보면 '공판기일 전에 증거보전 신청할 수 있다'고 해 놓았다. 1심(석궁사건) 때 박홍우(석궁사건 피해자)가 사건이 나고 나서 옷을 갈아입으려 아파트로 올라갔는데, 5~10분 정도다. 그 시간 안에 전화통화를 했는지 안 했는지 살펴야 하고, 그래서 전화통화 기록에 대한 증거보전을 신청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18차례나 증거보전신청을 모두 기각됐다. 왜 1차 공판기일 이후에 했느냐는 게 이유였다. 국어도 모르냐고 했다. 그 조항은 공판기일 후에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전에도 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었다. 법 220조에 보면 '기일 전에 한하여'라는 규정이 있는데, 기일 이전에 해당하는 사항은 별도로 있는 것이다."

김 전 교수는 "박홍우가 옷을 갈아입으러 간 다음에 사건 내용을 어딘가에 보고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 조작 시도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통화기록을 보려고 했던 것"이라며 "이것은 법리 문제도 아니다, 국어다"고 말했다.

"박찬종, 이번처럼 엉터리 재판은 처음 본다 하더라"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인물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 ⓒ 윤성효


최근 '재임용'에서 탈락한 서기호 판사 이야기가 나왔다. 박 변호사가 "서기호 판사는 사법부가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니까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 전 교수는 "이제 와서 안 지킨다고 바른말 하는 판사가 나오네"라고 대답했다. 박 변호사는 "법관의 평점 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전 교수의 '석궁사건' 1심 재판 때 최병모·박찬종 변호사 등이 변론을 맡았던 적이 있었다. 그는 "재판정에서 나온 말들은 공판기록에 다 있는데, 재판정 밖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제가 일기 형식으로 다 적어 놓았다"면서 "그래도 박찬종 변호사는 좀 낫더라. 책에도 써 놓았지만, 당시 박찬종 변호사는 '여태까지 이번처럼 엉터리 재판은 처음 본다, 재판 거부하자'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책에서 박훈 변호사의 활약상을 4쪽에 걸쳐 설명해 놓았는데, 정작 본인은 아직도 책을 사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박 변호사의 활약상을 설명했다.

"항소심(석궁사건) 과정에서 소방대원의 구급일지가 나왔다. 거기에 보면 '화살이 배에 맞고 튕겨져 나왔다'는 내용이 있었다. 구급대원을 불러 '듣고서 썼느냐'고 하니까 '네'라고 대답한 것이다. 그 상황을 정리한 기사가 나왔을 때 댓글이 900개나 달리면서 난리가 났다. 1심 변호사들은 찾아내지 못했는데, 2심에서 박훈 변호사가 밝혀낸 것이다. 박 변호사가 소방서에서 구급대 활동 문서를 내놓으라고 했던 것이 주효했다."

김 전 교수는 지난해 고려대 미디어관에서 열린 시사회 때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본 소감을 물었더니, "왜 기자들은 꼭 소감부터 묻느냐"는 말부터 했다. 그러면서 그는 "감흥이 별로 없었고 영화는 맥락상 100% 사실이다"라며 "허구라고 하는데, 그러면 안성기가 연기한 것 자체가 허구 아니냐, 허구가 아니라면 제가 연기해야지, 그렇게 따지면 진실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영화를 비판했던 진중권씨에 대해, 그는 "상대할 필요도 없다, 영화 키워 준 셈이다, 진중권 때문에 영화는 떴다"고 했다.

자신의 역할을 맡았던 배우 안성기씨에 대해, 그는 "그 사람이 멋있다, 냉정하게 했다, 관객들은 그 사람을 보고 끌렸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만들기 전에도 개봉한 뒤에도 안성기씨를 만난 적이 없다. 김 전 교수는 "영화 만들기 전에 안성기씨를 만나지 않았던 게 잘됐다"고 말했다.

이에 박 변호사는 "박원상(박훈 역)씨가 돋보여야 하는데 안성기씨한테 밀리니까 좀 그랬다, 박원상씨가 더 주목을 받아야 하는데 말이다"고 하자, 김 전 교수는 "인터넷에 보니 박원상씨가 연기 잘했다고, 후련하다는 반응을 보인 글들이 많더라"고 대답했다.

박 변호사는 "안성기씨가 영화 전에 김 전 교수를 만났다면 상당한 제약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 역할을 할 박원상씨는 꼭 만나봐야 했다"며 "변호사에 대한 선입관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제 캐릭터를 알아야 하고 저를 보고 영감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영화 제작 전 창원에서 박원상씨를 만나 술을 나누기도 했다.

"사법부는 개혁 대상 아닌 타도 대상... 일부가 아니라 전체"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인물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왼쪽)와 박훈 변호사(오른쪽) ⓒ 윤성효


영화 흥행을 예감했을까. 박 변호사는 "영화를 처음 제작한다고 했을 때, 관객 300만 정도면 충분하다고 봤다"고 하자, 김 전 교수는 "처음에는 100만 정도만 봤다, 갈수록 되는 거 보니까 욕심이 생긴다, 실제는 1000만 명 이상의 파급효과다, 여기서 만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영화를 통해 사법부가 바뀔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 전 교수는 "사법부는 바뀌지 않는다, 사법부는 개혁 대상이 아니라 타도 대상이다, 일부가 아니라 전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법정 분위기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김 전 교수는 "판사, 검사, 공무원한테 굽신거리는 노예근성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피고인도 권리가 있다, 재판을 받는 사람도 권리를 적극 활용해야 하고 재판 풍경도 바뀌어야 한다"며 "법정에서 판사와 변호사가 묻는 말에 예, 아니오 답변만 할 게 아니라, 재판받는 사람도 검사와 판사에 대해서도 따져 묻고 하는 풍경이 벌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교도소에 있으면서 수용자한테 들었던 갖가지 사례를 열거했다. 그는 "피고인들이 따지고 들면, 판사들은 반성의 빛이 없다고 해 형량을 높이니까 주눅든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만약에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면 형을 더 무겁게 때리기도 한다"고 거들었다.

"둘 다 비겁하다. 교도소 안에 보면, 사기 치고 들어와서 반성문 적는다. 매일 같이 반성문 써서 보낸다. 그런 반성문 형태가 교도소 안에서는 족보처럼 돌아다닌다. 반성문을 베끼는 것이다. 반성문을 저한테 써달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거절했다. 피고인들은 판사를 욕하면서도 법정에 가서는 반성문을 읽고 눈물을 보인다. 그런 반성문을 갖고 판사는 반성의 빛이 보인다며 감형 사유로 삼는다. 기가 막힌다."

박 변호사는 "변론을 하다 보면 치고 가야 하나, 좀 반성한다고 해야 하나 갈등에 빠질 때가 있다"며 "만약에 치고 나가게 되면 전면 대결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형을 높게 받을 수도 있어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영화 개봉 뒤 전화를 많이 받는다, 특히 사법 피해자들이 전국에서 전화를 걸어온다"면서 "오늘도 사람이 무작정 찾아왔다, 10년, 20년 전 사건을 들고 오는데, 난감하다"고 말했다.

교도소 생활 이야기도 나왔다. 김 전 교수는 "법정에서는 욕을 못하지만 글로서는 많이 했다, 바깥사람한테 편지를 보낼 때 판사 욕을 써 놓았는데, 교도소에서 편지를 뜯어보고 해서 뜯어보지 말라고 한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에 박 변호사는 "저한테도 편지를 보낼 때 만약에 편지가 뜯겨진 흔적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판사 욕하는 걸 글로 써 놓으니까 그것을 읽으며 속이 얼마나 상할까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다"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지난 10일 석궁사건 항소심 판사 역할을 맡았던 배우 문성근씨도 만났다고 했다. 문성근씨는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 이번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한다. 그가 문성근 예비후보한테 했던 요구사항을 들려주었다.

"재판권의 주인을 회수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해달라고 했다. 국민이 재판을 해야 한다. 재정신청을 포함한 모든 형사사건은 '국민참여재판'을 해야 한다. 국민참여재판을 의무화하고, 판사는 거기에 무조건 복종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형사재판참여에관한법률'을 개정해야 하는데, 그것을 민주통합당 당론으로 해달라고 했다. 문성근씨는 해보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유연하고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 있지만... 후회는 없다"

김 전 교수에게 "1995년 1월 성균관대 수학입시 문제의 오류 지적 이후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느냐"거나 "순간마다 다른 판단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 전 교수는 "후회는 없다"고 바로 대답했다.

"조금 더 유연하고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은 있다. 그러나 석궁사건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 같은 상황이 온다면 조금 더 제대로 했을지 모르겠다. 무엇인가는 했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앞으로 계획을 물었더니, 김 전 교수는 "내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 자신을 찾는 것이다, 제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를 찾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수 복직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런 것은 아니다"고 대답했다. 김 전 교수가 "수학에 재능이 없다"고 하자, 박 변호사는 "수학이라면 세계 최고 수준으로 하는 것 정도 아닐까, 나름대로 독창적인 것을 할 정도가 아니라는 말로 들린다"고 말했다.

김 전 교수와 박 변호사는 오는 24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리는 '영화 <부러진 화살> 자축연'에 참석한다. 정지용 감독과 배우 안성기씨 등도 참석할 예정인데, 김 전 교수는 "많은 친구들이 감독과 배우를 보고 싶어 해서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 전 교수와 박 변호사는 이야기를 마치고 오랫만에 회포를 풀기 위해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이들이 펼칠 세상이 궁금했다.
#부러진 화살 #김명호 #박훈 #정지영 #석궁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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