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깊은 한숨을 토했다. 그리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민주통합당 핵심 당료들은 '민주진보의 야권연대'를 둘러싸고 날마다 밤늦도록 회의를 하고 있지만 이 문제의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수도 없이 이어지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다 됐다" "곧 발표한다"는 말로 상황을 모면하는 중이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활발하게 야권연대를 주장했던 민주통합당은 4·11 총선을 앞둔 야권연대 협상에는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지율이 높아지고, 다수 의석이 예상되니 오히려 야권연대에 적극적일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돌아선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돈다. 급기야 16일 오전에는 민주통합당에 입당한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민주당이 지지율 1위가 되니 야권단일화를 뒤로 미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이날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나 "내일(17일)까지 이미 제안한 양당 대표간 회동을 통한 협상개시선언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민주통합당은 야권연대에 뜻이 없다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며 "야권연대는 민주진보진영의 총선승리와 정권교체의 필수사안인데 이렇게 소극적일 수가 있느냐"라고 지적했다.
또한 심 대표는 "민주통합당의 시민참여 경선 일정이 20일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그전에 이 일이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도 야권연대는 이뤄지기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통합진보당의 요구가 많고 내부 의견조율이 안 돼 협상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없는 구더기 때문에 장 못 담그겠다고 하는 격"이라고 쏴붙였다.
민주통합당에 24시간을 줄 테니 그 안에 협상대표를 결정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처럼 들린다. 이처럼 민주통합당이 야권연대를 둘러싸고 통합진보당으로부터 온갖 비판을 받고 있으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우선 민주통합당의 핵심 당료들에게는 이번 야권연대 전략의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반드시 '이기는 전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6·2 지방선거와 4·27 재보궐선거 때처럼 기껏 야권연대 협상을 해놓고도 새누리당에게 지는 결과를 초래했던 경험을 걱정했다. 6·2 지방선거 때의 경기지사 선거와 4·27 재보궐선거 당시 김해을 지역구 문제를 거론한 게다.
둘째, 통합진보당 내부의 의사수렴이 통일돼 있지 않다고 보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통합할 때 구 민주노동당 55%, 국민참여당 30%, 통합연대 15%로 각각 지분을 나누고 대의기구 등에도 이 지분이 적용됐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의 얘기를 근거로 협상할 수 없다는 얘기가 흘러 다닌다. A파의 입장을 근간으로 협상을 했을 때 다른 파벌에서 우린 그 입장이 아니라고 하면 그때는 그 협상결과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셋째,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간 연대만으로 야권연대 문제가 모두 정리될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예컨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를 끝냈으나 진보신당 후보가 출마해서 득표한다면 지난번 6·2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선거 때 한명숙 후보와 노회찬 후보의 경우처럼 0.6% 차이로 민주진보가 패배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실제 최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 동작을 지역구의 경우 새누리당 후보와 민주통합당 후보의 지지율이 각각 36%, 진보신당의 후보가 7.1%를 얻었다. 이럴 경우에는 사실상 진보신당의 김종철 후보가 민주통합당의 야권연대 주요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종철 진보신당 부대표는 15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현재까지 예비후보 등록자는 24명"이라며 "전국적으로 40~50명의 후보가 등록하고 이번 총선을 뛸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 부대표는 "야권단일화에 대해 통합진보당도 민주통합당도 별 제안이 없지만 야권연대는 이번 선거에서 중요한 의제"라며 "소수 정당에 대한 호혜의 원칙이 있다면 우리도 야권연대에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야권연대를 모두 중앙당 차원에서 컨트롤하지는 않을 생각"이라며 "민주당 독점체제를 극복해야 하는 호남지역, 민주당의 파괴력이 약한 영남지역 등 지역별로 야권연대 전략을 정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전했다.
야권연대, 경남은 속도를 내고 싶다
지역 차원에서 가장 야권연대가 활발한 경남지역은 이미 야권연대가 성사된 단계이지만 도장을 찍지는 못한 채 홀딩 상태다. 백두현 민주통합당 경남도당위원장은 "우리는 이미 야권단일화 일정을 공천심사위원회에 알려드렸다"며 "당내 경선룰에 따라 후보가 결정되면 야권단일화 프로세스를 밟기로 이미 통합진보당과 경남의 힘 등 지역시민사회 모두와 협의를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백 위원장은 "민주통합당 입장에서 볼 때 거제, 창원, 진주는 노동자와 농민 밀집 지역으로 조직적으로 통합진보당을 이길 수가 없는 지역"이라며 "통합진보당 중앙당은 전국을 협상해야 하기 때문에 이 지역의 야권연대 협상을 묶어둔 상태인데 민주통합당처럼 빨리 마무리해서 지역별로 마무리 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일임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하 통합진보당 경남도당위원장도 "이번 총선에서의 야권단일화는 매우 중요하다"며 "선거가 두 달도 채 안 남은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후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빨리 서둘러서 공개하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이 위원장은 "경남지역은 전체 야권단일화에 매우 적극적이고 합의가 잘 되고 있다"며 "중앙당에서 전체 판을 보면서 협상을 하기 위해 좀 늦어지고 있기는 하다"고 말했다.
지역별로는 야권연대가 속속 진행되기도 하고, 이미 결론을 내고 언론을 통해 공개 기자회견까지 마친 곳도 있지만 중앙당 차원에서는 속도가 안 난다. 민주통합당은 통합진보당에, 통합진보당은 민주통합당에 각각 책임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민주통합당 내부에서 야권통합을 부르짖었던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나 이인영 최고위원은 지난달 16일 통합진보당이 낸 성명서 한 장에 상당히 마음이 상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이 1·15 전당대회를 끝내고 대표와 최고위원을 뽑자마자 공개서한으로 조건을 걸고 협상을 하자고 한데 대해 빈정이 상한 것이다.
충분한 내부 검토와 물밑대화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협상을 시작해도 늦지 않은데 숨쉴 겨를조차 주지 않고 밀어붙이는데 대한 섭섭한 마음이 담긴 게다. 통합진보당의 입장은 4·11 총선을 코 앞에 둔 마당에 그 어떤 의제보다 야권연대가 중요하기 때문에 선제구를 날릴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마음 속 응어리가 덜 풀린 듯하다.
어쨌든, 양당은 지난 1개월여의 시간동안 물밑대화를 통해 의견접근을 이뤄보려고 했으나 그 점에 상당한 공감을 이루지는 못한 눈치다. 양쪽의 기대와 입장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민주통합당 입장에서는 협상개시선언을 해놓고 막상 협상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불거져 퇴로가 없을 때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적이 걱정하는 눈치다.
그러나 이미 통합진보당은 지난 1월 16일 성명을 통해 공개적으로 협상의 원칙과 기준을 정했으며 그것을 천명했다. 지지율을 비율로, 방식은 전략공천으로, 전국적으로 원샷 야권연대를 하자는 게 통합진보당의 입장이고, 반대로 민주통합당은 지난 4·27 재보선이나 6·2 지방선거 때처럼 할 수는 없다는 게 입장이다.
민주통합당 입장에서는 누가 됐든 이번에 총대를 멘다면 악역을 맡아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누구에게나 '독배의 잔'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선뜻 나서 "내가 그 역을 맡겠다"고 자임할 사람이 없는 게다.
통합진보당은 지금까지 해온 야권연대의 결정판이 4·11 총선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어떻게든 민주통합당과의 협상에서 많은 과실을 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무엇보다 통합진보당은 세 정파가 결합된 정당으로 그 이해관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 셋을 조율하고 맞추는 것도 민주통합당으로서는 버거운 문제다.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것처럼 이명박정권심판을 위해서는 야권연대는 필수조건이다. 이처럼 복잡한 함수가 얽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이유는 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안다. 솔로몬의 지혜가 그래서 필요한 때다.
2012.02.16 14:13 | ⓒ 2012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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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야권연대' 총대 멜 사람 없다...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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