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엉 울던 아이들, 자장면 한 그릇에 '방긋'

사람들을 울린 시골학교 졸업식 풍경

등록 2012.02.17 13:11수정 2012.02.17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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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충남 서천군 문산면 문산초등학교 73회 졸업식

충남 서천군 문산면 문산초등학교 73회 졸업식 ⓒ 이덕숙

충남 서천군 문산면 문산초등학교 73회 졸업식 ⓒ 이덕숙

2012년 2월 10일. 충남 서천군 문산면 문산초등학교에서 73회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학교 아래 위치한 문산마을도서관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저는 아이들을 만나러 졸업식에 갔습니다. 이번에 졸업하는 학생들은 전부 네 명입니다. 남학생이 두 명, 여학생이 두 명. 기현이,유화, 하리 세 아이는 6년을 내리 공부했고, 성민이는 3학년 때 도시에서 전학을 와 아이들과 지냈습니다.

 

졸업하는 아이들은 각자 준비한 '이별의 말'을 전합니다. 덩치가 큰 기현이가 일어섰습니다. 기현이는 담담하게 그동안 친구들에게 고마웠고 중학교에 가서도 잘 지내자는 말을 했습니다. 유화가 나섰습니다. 유화는 친구들과 보낸 지난 6년 시간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가 봅니다. 목소리가 떨리더니 이내 훌쩍훌쩍. 유화가 졸업식에서 읽었던 답사원고를 옮겨 봅니다.

 

a  충남 서천군 문산면 문산초등학교 73회 졸업식. 네 명의 졸업생.

충남 서천군 문산면 문산초등학교 73회 졸업식. 네 명의 졸업생. ⓒ 이덕숙

충남 서천군 문산면 문산초등학교 73회 졸업식. 네 명의 졸업생. ⓒ 이덕숙

지난 6년 동안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 우리 모두 같이 했던 일, 정말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함께 했던 야영, 현장체험학습 갔던 일 정말 잊지 못할 것입니다. 되돌아보면 그동안 웃고 울고 화내고 싸웠던 일들이 지금 되돌아보면 어느새 추억이 되어있습니다. 서로가 함께했기에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6년 동안 가르쳐주신 것들 중학교에 가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기현이, 성민 그리고 하리야, 6년 동안 잘 못해줘서 미안해. 너희들 때문에 학교생활이 즐거웠어. 같은 중학교에 다니지는 않아도 우리 가끔씩 만나자! 부모님 제가 못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6년 동안 가르쳐주신 여러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후배들아, 정든 학교에서 떠나 헤어지려고 하니 섭섭하구나. 그동안 모범이 되지 못한 점이 후회되는구나. 미안하다.

 

자나 깨나 학교 생각 저희들 교육에만 전념하시는 선생님,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중학교에 가서도 문산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여러 선생님들 친구들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a  충남 서천군 문산면 문산초등학교 73회 졸업식

충남 서천군 문산면 문산초등학교 73회 졸업식 ⓒ 이덕숙

충남 서천군 문산면 문산초등학교 73회 졸업식 ⓒ 이덕숙
a  충남 서천군 문산면 문산초등학교 73회 졸업식

충남 서천군 문산면 문산초등학교 73회 졸업식 ⓒ 이덕숙

충남 서천군 문산면 문산초등학교 73회 졸업식 ⓒ 이덕숙

유화의 절절한 마음이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어서인지 어른들도 아이들도 여기저기서 훌쩍입니다. 여선생님들도 여럿 울고, 새로 오신 면장님도 정년퇴임을 앞둔 교장선생님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습니다.

 

73년 동안 문산학교는 많은 아이들을 키워냈지요. 함께 생활했던 학교 후배들은 언니, 오빠를 멀리 떠나보내야만 하는 자리입니다. 꺼이꺼이 울어대며 언니랑 사진 찍을 때 눈물을 보인 유화의 동생 옥화가 안쓰럽습니다. 버스가 다니지 못할 때는 1시간을 넘게 걸어 다녔을 두 자매는 각자 학교에 다녀야하지요. 졸업식 노래를 끝내고 앉아 있던 아이들이 펑펑 울어대니 졸업식장이 순간 울음바다가 됩니다. 아이들 등을 토닥여 줍니다.

 

a  충남 서천군 문산면 문산초등학교 73회 졸업식

충남 서천군 문산면 문산초등학교 73회 졸업식 ⓒ 이덕숙

충남 서천군 문산면 문산초등학교 73회 졸업식 ⓒ 이덕숙

두 시간 남짓 진행된 졸업식이 끝나고 전교생 스물다섯 명의 아이들은 면소재지에 있는 작은 중국집으로 향합니다. 복작대는 공간 한 켠에 학부모, 방문객들이 아이들 틈에 끼여 앉아도 한 끼 식사를 정겹게 나눌 수 있는 곳. 학교선생님들이 서빙을 하고 1년에 한 번 먹을 수 있는 특별한 탕수육이 식탁에 올라옵니다.

 

언제 울었냐는 듯 아이들은 재잘대며 자장면을 먹으며 오후 시간 문산마을도서관에 가서 뭘 하며 놀까 이야기합니다. 사랑스럽고 명랑한 아이들입니다. 내년에는 몇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자장면을 먹게 될까 생각합니다. 20년 전에 이 학교를 졸업한 나는 어느새 열세 살로 돌아가 아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습니다. "냠냠 쩝쩝" 입 주위 가득 자장면 소스가 묻어 있습니다. 마주보며 "이히히" 웃습니다. 울다가 웃는 재미난 하루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덕숙 기자는 문산마을도서관지킴이입니다.
#문산마을도서관 #작은도서관 #서천 #공부방 #시골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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