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1월 26일 오후 학생인권조례를 발의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자문위원, 교육청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시교육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권우성
1월 26일 서울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이후,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의 이상한 행보가 시작되었다. 재의를 지시할 생각이 없다고 발뺌했다가, 곽 교육감이 풀려나자 그때서야 기한 다 지난 재의를 지시하질 않나, 학생 간 폭력을 근절해보겠다면서 엉뚱하게 학생들 게임시간을 제한하겠다고 하질 않나….
학생인권조례는 나오는데 무언가는 해야겠고, 마음만 급해진 교과부의 지난 행보는 정말 엉뚱하기 그지없었다.
3월 개학을 코앞에 둔 지금, 교과부는 더욱 더 급해진 모양이다. 과감히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이쯤되니 교과부의 조급한 마음이 우습다 못해 측은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들의 행보와는 달리 개정안의 내용은 전혀 웃을 수가 없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학생 복장과 용모, 그리고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의 사용 등을 학칙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규칙의 제·개정 시 학생, 학부모, 교원 등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과부는 이번 개정안을 두고 "학교규칙 제·개정이 학생들의 의견에만 치우치지 않고 학부모, 교사 등 학교 구성원 전체가 정하도록 규정하기 위함"이라 한다. 얼핏 들으면 평등하고 민주적으로 보일 것이다. 학교규칙에서 구성원들이 토론을 통해 정한다니, 충분히 민주적인 것 같이 들려온다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말에 내포된 불합리성과 비민주적인 요소는 학교규칙에 얽힌 학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교육이란 이름으로 버젓이 이뤄져 온 '학교 인권 침해'
아직까지도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반인권적 행태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반인권적인 경쟁교육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방학 때조차 교복을 입고 학교에서 저녁까지 자습을 해야 하고, 수시로 소지품을 검사 당하고 얻어맞는 학교의 풍경이 21세기 대한민국 교육에선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학교 현장에서 학생집단을 향하는 반인권적 행위들이 제도적으로 정당화되고 용인돼 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학교규칙에는 두발·복장 규제, 소지품 검사부터 시작해서 학생자치기구 무력화, 학생의 표현의 자유 제한 등 반인권적인 행위들에 대한 제도적 근거가 조목조목 마련되어 있다. 이 제도들은 교육이라는 이름만 걸치면 모든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게 현실이었다.
이러니, 그동안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자신의 인권을 보호받기는 쉽지 않았다. 교사에게 맞고 욕지거리를 들어도 대부분의 경우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다시 학교에 나오는 것 뿐이었다. 학생이 이를 부당하게 여기더라도, 그런 행위가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학교규칙에 근거되어 있으니 말이다.
교사가 소지품을 뒤져도, 그들의 언론을 검열해도, 그들에게 특정 종교 행위를 강요해도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학교로 나가는 것 아니면 도망치는 것이다. 이마저도 뒤쳐질까봐, 낙오자가 될까봐 두려워 다시 학교에 나오게 되는 것이니 선택이라고 할 수도 없는 셈이다. 이렇게 학교 안에서 행해진 학생에 대한 '폭력'은 당연하게, 또 정당하게 여겨져 왔다.
사실상 상당수의 학교규칙은 '어떻게 학생을 규제하고 제한할까'에 그 목적이 맞춰져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학교규칙에 학생이 참여할 수 없는 구조 때문이다. 어떠한 규칙을 정하는 데에 있어 당사자가 참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어쩌면 이것을 민주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가령,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법과 제도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을 독재라고 하는 것처럼, 민주주의 사회의 법과 제도에는 당사자의 참여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그것이 민주주의의 주된 척도가 된다.
허나 학교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학교규칙의 제·개정안은 교장이 발의하도록 되어있고, 이것을 검토·심의하는 기구 역시 학교운영위원회로 정해져있다. 물론 학생들의 의사를 '수집'하지만 대부분 이 과정이 설문조사에서 그치고 설문조사 이후 이것의 행방을 전혀 밝히질 않으니 한다는 시늉만 하는 셈이다.
학생회라는 학생들의 학내 자치기구가 존재하지만, 애초에 발의할 수 있는 권한도 없고, 의제로 올리려 해도 학생회 지도 교사, 부장 순으로 승인을 받고 최종적으로 교장의 승인이 있어야만 하니 따지고 보면 '자치 기구'도 아닌 허수아비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학생들이 학교규칙 제·개정에 참여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선 의견을 내는 것 역시 무의미한 행위 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그동안 학교규칙 제정, 개정은 몇몇 학부모들과 교원, 교장이 밀실에서 의사봉 치고 끝나는 그들만의 제도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학교규칙에 학생들은 전전긍긍하며 학교를 다닌다.
당사자들의 참여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법과 제도가 그대로 당사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렇게 규칙의 당사자가 소통할 수 없는 절차와 구조는 매우 비민주적이며 이것이 학교 현장의 반인권과 반민주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이다. 이것이 학교규칙에 얽힌 학생들의 억울한 이야기이다.
인권을 학교규칙으로 규정?... 교과부, 제발 정신 좀 차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