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몰아줬는데...정몽구, 장자 노릇 낙제점"

[현대차의 그늘 ⑦] 이계안 전 현대차 사장이 본 '정몽구 체제 10년'

등록 2012.03.03 21:25수정 2012.03.0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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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국내서 가장 승승장구한 재벌은 단연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이다. 200조 원이 넘는 사상최대의 매출과 함께 20조 원에 달하는 순이익을 올렸다. 순이익 규모만 따지면 삼성을 앞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2000년 정몽구회장이 자동차 계열사로만 그룹을 독립한 이후 처음이다. 덕분에 현대차는 글로벌 빅4 자동차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화려한 성장 뒤편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공장에선 노동자들의 밤샘노동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여전하다. 이들의 잇단 자살과 분신도 이어진다. 중소협력 하청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정 회장의 아들 정의선 사장의 일감몰아주기 등 편법 경영권 승계도 논란거리다. MB정부 최대 수혜그룹으로 꼽히는 현대차 성장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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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안 전 민주통합당 의원 ⓒ 유성호


"가족들 희생 덕에 성공해 놓고 맏아들 노릇은 낙제점이다.… 현대차가 돈 버는 데 기여한 중소기업, 고객들은 놔두고 거꾸로 일감 몰아주기로 정의선만 10대 부자로 만들었다."

선거의 해, '재벌 개혁' 나아가 '재벌 해체'가 화두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 칼끝은 삼성, 현대기아차 등 재벌을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사장 출신으로 대기업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계안(59) 전 민주통합당 의원은 '구호'보다 '정밀한 시술'을 강조했다. 이달 초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횡령 사건 관련 ㈜한화 매매거래 중지 취소를 둘러싸고 '대기업 봐주기' 논란이 불거졌듯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제대로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대차 CEO 출신 정치인이 본 '현대차의 그늘'은?

"한화를 일벌백계 했어야 분식회계가 고쳐진다. 다른 기업은 처벌했으면서 한화는 처벌을 면제해주면 누가 법을 공정하다고 말하겠나. 재벌 개혁 골자는 크건 작건 관계없이 잘못하면 벌주고 회사와 회사 간의 연결고리를 끊어서 한 놈 죽으면 같이 죽는 것을 막자는 것이지 재벌 해체가 아니다."

현대차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규정한 최근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당연한 판결"이라고 환영하면서도 모든 비정규직을 없애야 한다는 식의 접근보다 "고용 안정성을 희생하는 대가로 비정규직에게 (정규직보다) 더 많은 임금을 주는 사회적 협약이 필요하다"고 좀 더 현실적 해법을 제시했다.

"정치도 경제 못지않게 살아있는 생명체다.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외과적인 정밀 시술이 필요하다. 정치 구호와 실제로 현장에서 일어나는 걸 고쳐서 공정한 질서를 만드는 일은 다르다. 재벌이 누구고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는 여야 통틀어 이계안이 제일 잘 알 거다."

이젠 '나꼼수' 정봉주식 '깔대기'도 마다않는 9년차 중견 정치인, 이계안 전 의원을 처음 만난 건 지난 6일 사당동에 있는 선거사무소였다. 이 전 의원이 4월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서울 동작을(사당1~5동·흑석동·상도1동) 현역 의원은 공교롭게 현대중공업 회장인 정몽준 새누리당 전 대표다.


"내가 1976년 3월 15일 현대중공업 재정부에 입사해 78년 정몽준 의원과 같이 대리가 됐는데 정 의원은 82년 사장이 됐고 88년 국회의원이 됐다. 이계안은 98년 사장이 되고 2004년에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사장도 16년, 의원도 16년 차이가 난 거다."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총예를 받았던 이 전 의원은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COO(최고운영책임자)를 거쳐 98년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는 등 오늘날 현대기아차그룹의 기반을 닦았다.

여기까진 현대건설 회장 출신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한 행보지만 2004년 재계를 떠난 이 전 의원은 당시 한나라당이 아닌 열린우리당을 택했다. 그동안 재벌과 대기업에 쓴소리를 내온 이 전 의원은 지난 10년 사이 재계 2위이자 글로벌 톱5 자동차기업으로 부상한 현대기아차와 정몽구 회장 체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 전 의원 인터뷰는 지난 6일과 27일 두 차례로 나눠 진행했다.

"외형 4배 컸지만 일자리 안 늘어... 장자 노릇 낙제점"

"현대차가 1998년부터 분기마다 이익을 내 주주나 종업원들은 처우가 좋아졌을지 몰라도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인 일자리에 관해선 어떤 일을 했나. 현대기아차 연간 생산량이 10년 사이 300만 대에서 600만 대로 늘었지만 그동안 국내 공장은 하나도 짓지 않았다. 혼자 살기도 어려울 때 맏아들만 대학 보내 출세시켰으면 형제나 누이가 희생했던 것 생각해서 그 조카들이라도 데려다 출세시켜야 하는데 이건 나쁜 며느리 만나 시댁 식구들과 발길을 끊은 격이다."

대기업들에게 이른바 '장자 역할론'을 주문해온 이 전 의원은 자신의 친정인 현대기아차에 '낙제점'을 줬다. 정부의 고환율 정책 덕에 수출을 늘렸고 기아차를 인수해 국내 자동차시장을 독과점 체제로 만들어 많은 이익을 냈지만 정작 국가 경제와 나누는 데는 인색했다는 얘기다.

"현대차가 돈 버는 데 기여한 많은 중소기업들이 있다. 또 국내에 생산 공장을 짓지 않아 희생된 일자리도 많다. 수출차와 국내차 간 품질과 가격 차이 의혹에도 차를 사준 고객들도 있다. 현대차는 이들과 번 돈을 나눠야 했다. 그런데 현대차는 거꾸로 모비스를 통해 부품업체 이익을 다 가져가고 글로비스를 만들어 물류비용까지 챙겨 일감 몰아주기의 표본이 됐다. 덕분에 정의선 부회장은 10대 부자가 됐는데 거기에 상응하는 세금을 냈나? 조그만 회사 차려주고 일감 몰아줘 떼돈을 벌었다. 현대차의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를 모두 몰아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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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회장. 사진은 지난 2009년 3월 신형 에쿠스(EQUUS) 신차 발표회. ⓒ 유성호


"정규직 고용 유지됐지만 비정규직-하청업체가 뒷감당"

이 전 의원은 현대차그룹 성공에 가린 가장 짙은 그늘로 서슴없이 '노사 문제'를 꼽았다. 현대차 사장으로 있으면서 노사 문제를 직접 경험한 이 전 의원은 최근 대법원 판결로 이슈가 된 비정규직과 사내 하청 노동자 차별이 사측과 정규직 노조의 '결탁'에서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98년 당시 숱한 사람을 명예 퇴직시키고 1만여 명을 정리해고 하면서 노사 간에 신뢰가 없었다. 정규직노조는 고용 안정을 보장하는 '완전 고용 각서'를 요구했고 난 거기에 '여러분의 완전고용을 보장하는 것은 사장이 아니라 시장'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때부터 정규직은 고용 유지가 됐지만 대신 비정규직을 끌어들였다. 지금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존하게 된 건 사용자와 정규직 노조가 결탁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시장 변동에 대응하려면 정리해고를 통해 노동 유연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여의치 않자 정규직 자리에 비정규직을 임시로 고용하는 '편법'을 썼다는 것이다. 또 노동자 해고할 때 나중에 들어온 사람을 먼저 해고하는 '후입선출법'을 적용하다 보니 차종별 수급 변화에 따른 공장 간 전환 배치가 어렵게 된 것도 비정규직을 늘리는 요인이 됐다.

"정규직 노조가 임금을 올리려고 하면 현대기아차는 공급 독점이어서 자동차 가격에 전가할 수 있다. 또 부품 회사에 대해선 수요 독점이기 때문에 인건비가 5원 늘면 부품 값을 5원 깎으면 된다. 덕분에 정규직 근무여건은 강화됐지만 하청업체는 납품 가격에서 현대-기아차 합병에 따른 규모 경제분과 기술 향상분 외에 완성차 회사 인건비 증가분을 추가로 부담하는 악순환이 생겼다. 하청업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 비정규직을 착취하고 하다 안 되면 산업연수생을 쓰는 먹이사슬이 생겼다."

이 전 의원은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회사 못지않게 정규직 노조의 책임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침 대법원은 지난 23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하청으로 일하다 해고된 최병승씨가 낸 부당해고구제 소송에서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 파견이고 2년 이상 일한 최씨는 현대차 정규직 직원"이라고 판결했다. 현대차 정규직 노조 역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당연한 판결이다. 세계적인 현대차 경쟁력의 원천은 우수한 노동력에 있다. 경기 변동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하는 완성차 업체로선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경기 순환의 모든 리스크를 노동력에 전가해선 안 된다. 이제 현대차 노사관계도 선진화해야 한다. 비정규직은 고용 안정성을 희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대가로 비정규직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는 사회 협약이 필요하다."

다만 이 전 의원은 "모든 비정규직을 없애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정규직 노조도 비정규직 문제에 경영진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필요하다면 고통을 분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대차에도 "법적으로, 개별적인 사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하지 말고 전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고용 친화적 기술 개발로 노동자와 함께하는 경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노동 강도 증가에 대한 저항이 분신 사태 불러"

지난 1월 초 현대차 울산공장 정규직 노동자 분신 사태는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도 '안전지대'가 아니란 걸 보여준다. 현대차가 해외 현지 공장을 늘리면서 국내 공장 의존도가 떨어지는 만큼 정규직 노조의 교섭력도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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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 7일 오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고 신승훈 노동해방열사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노동조합장'에서 영정과 부활도를 앞세운 운구행렬이 공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 아래)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 선적부두에 모여 있는 수출용 승용차들. ⓒ 권우성


"옛날에는 파업하면 수출과 내수 시장이 다 막혀서 노조의 저항이 100% 먹혔는데 이제는 5대양 6대주에 공장이 생기면서 우리나라에서 파업해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갑-을 관계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사용자가 노동 강도를 높이게 되고 노동자는 수입은 줄고 근무 강도만 높아져 저항하게 된다.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분신으로 갔다고 생각한다."

이 전 의원 자신이 기아차 인수에 큰 역할을 했고 작은 부품들을 모아 큰 부품으로 만드는 '부품 모듈화' 아이디어를 내놓는 등 오늘날 현대기아차 독과점을 만든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자동차회사가 규모의 경제를 통해 대규모 생산을 해서 성장하는 게 야단맞을 일은 아니지만 정도가 지나쳐 독과점이 돼 가격에 전가하는 건 문제다. 공급과 수요를 모두 독점하게 돼 하청업체에 대해 일방적 통제권를 갖게 됐다. 하청업체도 생산성을 높여서 이익을 내는데 수요 독점으로 완성차업체가 하청업체 이익을 단가 조정을 통해 빼앗아가니 누가 혁신을 하겠나. 자동차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종합 조립업이어서 각종 부품업체와 더불어 잘 살아야 하는데 모비스 수익률이 타사보다 현저하게 높다는 건 뭘 의미하겠나."

"포드식 수직계열화, 하나 망하면 다 망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이 화두로 등장했다. 민주통합당뿐 아니라 새누리당마저 대기업 순환출자를 차단할 '출자총액제한제' 부활을 거론하고 있고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지난 2일 재벌 해체를 목표로 10대 그룹별 맞춤형 개혁안을 내놨다. 순환출자를 전면 금지하면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되고 불필요한 계열사가 매각된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장자 기업으로서 공정 경쟁하라는 경제 민주화지, 이정희 대표처럼 재벌을 죽이겠다는 건 아니다. 황금알을 낳는 닭을 죽일 이유가 있나. 재벌회사가 고칠 것, 아쉬운 건 많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경제를 끌고 가는 부분도 인정할 건 인정하고 고치게 해야 한다."

이 전 의원은 지주회사 체제를 '차선책'으로 보는 한편 철강회사(현대제철)부터 부품업체(현대모비스), 물류업체(글로비스), 완성차에 이르는 현대차 수직계열화 체계와 현대건설 인수 등 문어발 확장에 대해서는 매우 우려했다. 

"포드는 타이어 공장과 타이어에 쓸 고무 농장까지 있었고 자동차를 운반하는 해운회사, 조선소도 가졌다. 범현대가로 보면 포드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직 계열화되면 한 기업이 어려우면 다 어려워진다. <삼국지> '적벽대전' 예를 많이 드는데 조조 군사가 물에서 약해 배를 다 연결해 육지처럼 만들었지만 화공을 당해 폭삭 죽는다. 일사불란한 지휘체계가 효율성이 있을지 몰라도 리스크 분산 차원에선 하나가 넘어지면 다 망하는 거다."

"노동자 이익배분제 도입 기회 놓쳐... 국내 공장 늘려야"

이 전 의원은 국내 공장 증설 등 장기적 투자 관점에서 현대차그룹 오너 경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전문경영인과 파트너십 경영을 주문했다.

"내가 사장 맡았을 때가 행복한 기간이었다. 1998년 IMF 통제 하에 구조조정을 해야 했고 오너들을 엄격하게 통제할 때라 전문 경영인들에게 간섭하지 않았다. 계속 사장으로 있었으면 삼성보다 먼저 PS(초과이익배분제)를 도입했을 거다. 이익을 노동자, 자본가, 회사 미래투자분으로 나누자는 것인데 사장 자리가 끝나 더 이상 못했다."

이 전 의원은 현대차에서 노사 교섭을 할 당시 이익이 나면 3할은 주주에게 주고 3할은 노동자 인센티브로, 4할은 기업의 미래에 투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삼성은 초과 이익 20%를 직원 연봉의 최대 50%까지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초과이익배분제를 시행하고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이익 공유 대상을 노동자에서 협력업체까지 확대하는 '이익공유제'를 제안했지만 대기업의 반발에 부딪쳐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현대기아차가 1998년과 비교해 외형은 4배쯤 늘었지만 고용자수는 40%도 늘지 않았다. 경영 합리화를 통해 투자를 한 게 결국 일자리를 줄이는 역할만 했다.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 같은 우리나라 전체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대차 같이 고환율 정책 같은 제도적인 뒷받침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그 돈의 얼마를 써서 중소기업과 동반성장도 하고 일자리도 만들어야 한다. 장자 기업 역할을 해야 한다. 국내 공장을 짓는 게 해법이다."
#현대차 #이계안 #정몽구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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