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둥이, 새만금에서 왜 인기 어종 되었나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100차 모니터링 및 한·일 워크숍 개최

등록 2012.03.05 16:28수정 2012.03.0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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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한 시민조사단원들이 기념 사진을 남겼다. ⓒ 배만호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지난 3일과 4일에 100차 모니터링과 한·일 워크숍을 진행했다. 새만금을 아끼는 시민의 자발적인 모임인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지난 2003년부터 9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하게 정기적인 조사활동을 진행해 드디어 100번째를 맞이했다.

2003년 12월 6일, 30여 명으로 시작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새만금 지역에 벌어질 생태계 대량학살과 지역 주민의 삶의 변화를 기록하고자 만들어진 자발적인 시민 모임이다. 시민의 눈으로 새만금의 생태를 기록하고 조사하자는 목적으로 시작된 그동안 모니터링 작업은 참가 누적인원이 2000여 명을 넘었다. 이들은 군산, 김제, 부안 등 새만금 연안을 돌아가며 숙박하고 조사하였다.

이들은 그동안 조사 내용을 담은 보고서 4권, 석사논문 1편, 동화 1편을 내었으며 새만금 바닷길 걷기 7년의 기록을 담은 고등학생이 <소년, 갯벌에서 길을 묻다>라는 책을 내기도 하였다. 또한, 새만금 지역의 모니터링을 통해 축적된 경험을 지역 모니터링으로 확대하여 한강 하구, 인천, 강화 갯벌 등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전남 신안군 신안문화원에 근무하는 김경완씨는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한 문화 변화'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새만금 주민들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공개하였다. 그는 100차에 이르는 조사활동으로 새만금 주민과의 친밀도가 높아졌다며 성과를 이야기하였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내초도에 사시는 강홍 할머니의 경우 새만금이 막히기 전인 2006년까지는 갈퀴 하나로 하루에 6~7만 원의 수입이 있었지만, 이제는 폐기물 매립장 재활용 센터 근무자에게 일을 시켜 달라고 사정을 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또한, 심포 마을에 사시는 김춘자 할머니는 아무런 재산이 없이 맨손어업으로 백합을 채취하며 하루 10만 원가량의 수입을 올렸지만, 새만금 물받이 공사 이후 감자 하우스, 공장 등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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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문화원에 근무하는 김경완. 그는 주민들의 삶이 변화되는 것을 가장 안타까워 하고 있다. ⓒ 배만호


하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자연의 생태인 '물때'의 의미가 새만금 주민에게서 사라지고, 방조제 문의 개폐 여부가 '물때'를 대신하고 있는 점이다. 또한, 초기에는 수문의 개폐 여부를 알려 주지 않아 사고 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새만금 연안 2만여 명의 주민은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의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만금 주민으로 현재는 택배 일을 하고 있지만, 새만금지역 생태공간인 '그레'를 운영하기도 하였던 고은식씨는 "새만금의 교훈을 끌어내고 조직화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며 "어민들의 마음이 바뀌어야 새만금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어민이 살려면 새만금이 열려야 한다"며 지난 9년간 애쓴 것에 대한 고마움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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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를 운영하였던 고은식씨. 그는 현제 계화도에 살면서 택배일을 하고 있다. 한때는 거친 바다와 싸우던 어민들이 이제는 택배기사, 청소원 등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다. ⓒ 배만호


다음날 진행된 100차 모니터링은 물새, 저서생물, 문화팀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문화팀은 군산공항 확장으로 집단 이주가 예정된 하제항으로 갔다. 하제항은 지난 세월 항구였던 추억을 간직하듯 폐선들이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있었다. 어촌계 사랑방에서 만난 지역 주민은 작은 연탄난로를 벗 삼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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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제마을 어촌계 사랑방에 모인 어민들. 이들 가운데 가장 젊은 분은 50세인데, 생계를 위해 예멘으로 어업기술 전수라는 이름으로 3개월간 일을 떠난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야 하는 마음을 알 수 있을까? ⓒ 배만호


"전에는 버리던 망뎅이(망둥어)가 지금은 주 어종이 되부렸어."

왜, 망둥어가 그렇게 인기가 좋냐고 물으니 망둥어는 어느 정도의 민물에서도 살 수 있어  송어를 포함하여 새만금에서 잡히는 몇 안 되는 어종이라고 한다. 또한 "마을 전체가 쓰레기통이 되었다"며 "새만금을 막으면서 마을이 쇠퇴하고, 생계문제로 주민이 이주를 하면서 빈집은 쓰레기장이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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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제포구. 한때는 비린내와 조개가 넘쳐나는 항구였을텐데... 작은 실개천이 생겨나고 버린 배들만이 에 추억을 생각하게 해 준다. 상전벽해는 글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 배만호


문화팀은 점심을 먹은 뒤 내초도로 갔다. 새만금 공사로 인하여 육지가 된 내초도 노인정에는 할머니만 모여 긴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84세라고 하시는 할머니 한 분은 "지금도 조개를 캘 수 있다며 조개를 캐러 다니면 아프지가 않은데, 가만히 있으니 다리가 아파 못 살겠다"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또한 "새만금으로 인하여 수입이 전혀 발생하지 않아 돈벌이가 없다"며 "새만금사업단에서 하는 환경지킴이, 폐기물 재활용 등의 일터에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재산이 조금 있다는 이유로 끼워 주지 않는다"며 불평을 늘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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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초도 노인정의 할머니들. 몸과 마음은 청춘인데, 놀고만 있는 신세가 안타까운 분들이다. 포대만 들고 나가면 5만5천원을 벌 수 있는데, 나이가 많다고 안 시켜준다며 불만이 많은 분들이다. ⓒ 배만호


오후 다섯 시가 되자 시민조사단들은 청하면에 있는 작은 식당으로 모였다. 그곳에서 이른 저녁을 먹으며 하루 조사를 간단히 마감하였다. 인천저어새네트워크에서 온 김용대씨는 "가슴 아프면서 아름다운 동행이었다"며 "순박한 희망이 이루어지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간단한 소감을 말했다.

한편 일본에서 100차 모니터링을 맞이하여 온 사토 신이치 도후쿠대학 교수는 "지난 12년 동안 새만금의 12곳을 지속하여 관찰해 왔는데, 무려 11곳이 사막화 되었다"며, "이사하야만에는 여름이면 모기가 용오름처럼 날아다니곤 했는데, 새만금도 조만간 그럴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새만금 내해뿐만 아니라 외해의 모니터링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사하야만의 수문이 개방된 것처럼 새만금의 개문도 얼마나 걸릴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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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먼 길을 오신 사토 신이치 교수와 통역을 맡아 주신 김복녀씨 ⓒ 배만호


새만금 물막이 공사 관련 변호를 맡았던 연유로 조사단으로 활동하게 된 박태현 변호사는 정리하는 자리에서 "국제인권조약 제1조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생계수단을 박탈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는데, 지금 새만금의 주민은 생계수단이 박탈당하고 있다"며 토로했다.

이번 100차 모니터링에는 30여 명이 참가하여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열정을 각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곧 다가올 10주년을 맞이하여 모니터링 결과물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숙제도 남게 되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새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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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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