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아내보다 이놈들이 더 좋았어요

[나만의 명품②] 똑딱이부터 저가 DSLR까지... 사진작가 등용시켜준 오래된 카메라들

등록 2012.03.23 12:14수정 2012.03.2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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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명품이라서 비싼 것일까 비싸서 명품일까? 맨 처음에는 명품이라서 비쌌을 터이지만, '자본의 세상'이 되면서 비싸면 명품이 되는 그런 세상이 도래한 것은 아닐까? 명품을 갖지 못하면 단 며칠이라도 임대를 해서 쓰는 시대가 되었으니 가히 '명품전성시대'이다.


나는 카메라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물론 작다고 기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름신은 강림하는데 능력이 안 되니 살짝 '나사가 풀리면' 신세 한탄을 하기도 한다. '그것도 못사는 신세!'하며 말이다. "도대체 가격이 얼마기에?" 아내가 물었다가 나의 대답에 뒤로 자빠질 뻔했다.

중형 DSLR카메라 펜탁스를 검색해 보시라. 당신도 깜짝 놀랄 것이다. 거기까지는 못 가도, 경제적인 능력만 된다면 족히 3000만~4000만 원은 카메라와 렌즈를 사는 데 투자하고 싶다. 이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내 삶의 정황은 이런 꿈과는 먼 중산층(?)이며, 중산층이라는 생각마저도 착각일지도 모르는 계층이니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나의 첫 번째 명품, 똑딱이 카메라 '후지 A303'

a 후지필름 A303 나에겐 최초의 디지털카메라, 300만 화소 독딱이 카메라였지만 내겐 명품이었다.

후지필름 A303 나에겐 최초의 디지털카메라, 300만 화소 독딱이 카메라였지만 내겐 명품이었다. ⓒ 화면캡처

후지 A303은 내게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였다. 비록 똑딱이 카메라였지만, 필름카메라였다면 비용 문제로 엄두도 못 냈을 일들을 감당하며, 제주도 촌구석(?)에 살던 나를 세상으로 끌어내 일약 스타(?)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 때는 디지털 카메라가 막 출시되던 시기였고, 생소했다.
제주의 풍광은 아시다시피 수평만 맞추고 초점만 맞추면 작품이 되는 수준이다. 5일장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 종달리 해안도로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담아 모니터로 확인을 했다. "세상에!" 인화과정 없이 곧바로 볼 수 있는 편리성에다가 모니터에 떠있는 사진은 환상(?)이었다. 지인에게 자랑하니, 곧바로 회신이 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제주의 야생화를 주제로 작업하면서 300만 화소 '후지 A303'은 수명을 다하기까지 나와 동행했다.

그를 발판으로 나는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렸고, 그 덕분에 출판제의가 들어와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책을 여섯 권이나 낼 수 있었으며, TV와 라디오 출연, 생방송 고정출연(제주MBC), 각종 월간지에서의 원고청탁과 사진청탁, 초청전시회 등을 가졌다. 최근엔 이 카메라는 아니었지만, 한겨레신문사에서 실시한 사진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공식 사진작가로 등용하기도 했다.


5년 동안 아내보다도 더 친밀했던 '캐논 EOS 300D'

a 캐논 EOS 300D 나의 첫번째 DSLR 카메라, 단종되었지만 중고시장에서 대략 15만 원선이면 구입할 수 있다.

캐논 EOS 300D 나의 첫번째 DSLR 카메라, 단종되었지만 중고시장에서 대략 15만 원선이면 구입할 수 있다. ⓒ 화면캡처

맨 처음에 출시되었을 때에 거반 130만 원을 주고 산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단종되어 중고시장에서 A급을 15만 원이면 구할 수 있다.
대략 이 카메라는 5년 정도 나와 함께 했으며, 그 기간엔 아내보다도 더 나와 친밀했다. 셔터박스를 세 번이나 고칠 정도로 혹사를 당했지만,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몇 컷은 찍을 수 있는 상태로 장롱에 골동품으로 자리하고 있다. 제주의 야생화는 거반 이 친구가 담았다.


내 주종 카메라였기에 다른 식구들을 위해 소위 똑딱이 카메라도 두어 대 장만했지만, 눈을 감고도 가장 빠른 시간에 피사체의 결정적인 순간을 담을 수 있는 것은 그였다. 아내보다도 더 가까이했던 카메라였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봇물처럼 진화되면서 내게도 지름신이 강림하기 시작했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시름시름 앓더니만 숨을 놓아버렸다. 그리하여 한 단계 높은 기종의 카메라를 사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오기가 생겼는지 다시 부활하여 한두 컷 정도는 찍을 수 있는 상태로 복귀했다.

이 시절엔 다른 카메라에 적응을 해보려고 시도도 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주는 것은 항상 그였다.

다양한 기능 탑재한 카메라... 하지만 연장 탓은 말자!

a 캐논 EOS 40D 최근에도 이 카메라로 작업하고 있다. 나의 애마이자, 명품이다.

캐논 EOS 40D 최근에도 이 카메라로 작업하고 있다. 나의 애마이자, 명품이다. ⓒ 화면캡처

이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다. 여러 가지 경제적인 측면까지 고려하여 한 단계 상위기종으로 갈아탔지만, 이때부터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너무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카메라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면서 오로지 한 카메라에만 집중했던 마음이 흐트러진 것이다.
이맘 때 즈음 과거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필름카메라를 다시 집어들었고, 이런저런 실험적인 사진을 담으면서 핀홀카메라까지 영역을 넓혔다. 이 과정은 지리했고, 결국엔 필름카메라 '니콘 FM2'와 'EOS 40D'가 내 사진작업의 주종을 이뤘다. 지난 6개월여 동안 필름카메라 니콘 FM2, 캐논 EOS 40D, 니콘 D70 등 저가의 카메라로 사진작업을 했다.

최근엔 1:1바디와 필름카메라 중에서 광각사진을 담을 수 있는 후지TX-1, 니콘 FM2와 휴대성이 간편한 미러리스카메라로 사진작업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갖추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기에 그냥 꾸는 꿈이다. 내가 원하는 사진을 얻으려면 거기에 맞는 기종의 카메라가 있어야 한다. 연장 탓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경우에는 연장이 뒷받침을 해줘야만 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어떤 경우'이며, 대부분은 그 연장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품(品)이 문제가 아니라 인(人)이 '중요한 문제'

a 니콘 D70 캐논과의 색감이 달라 니콘의 색감이 그리울 때 사용한다. 이 카메라는 렌즈가 생기는 바람에 중고시장에서 10만 원을 주고 구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명품이다.

니콘 D70 캐논과의 색감이 달라 니콘의 색감이 그리울 때 사용한다. 이 카메라는 렌즈가 생기는 바람에 중고시장에서 10만 원을 주고 구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명품이다. ⓒ 화면캡처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명품보다는 그 명품을 가진 '사람'의 문제다. 비싼 명품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고 좋은 결과물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비싼 명품 카메라가 아니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 따라 좋은 결과물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명품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나는 개인적으로 명품을 선호하는 것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 사람이 명품과 잘 어울리느냐의 문제에는 민감하다. 명품의 대중화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본다.

명품의 대중화는 결국 가격의 문제와 맞물려 있기에, 이전에 가질 수 없었던 명품을 좀 더 쉽게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명품=비싼 것'이라는 도식에는 반대하지만, 명품은 동시에 제 값을 받아야 하고, 그 명품을 손에 쥔 사람에 따라 빛을 발하기도 하고 퇴색되기도 하는 것이니 명품 그 자체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가슴 한 켠으론 새로운 카메라를 꿈꾼다. 단순히 더 상위기종이고 비싸서가 아니라, 나의 사진작업에 '적합한' 카메라를 찾다 보니 눈높이가 그 정도로 맞춰진 것뿐이다. 그것도 인연이면 맺어질 것이요, 인연이 아니면 맺어지지 않을 터이다. 또 내가 원하는 카메라를 가지고 작업한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나의 이런 욕심과는 상관없이 내게 있어 진짜 명품은 지금의 나를 여기에 있게 해준 앞서 소개한 카메라들이다. 주인을 잘못 만나 셔터박스를 몇 번이나 갈아치우고 더는 수리할 수 없어 장롱에 들어가 있는 카메라들. 고가의 카메라도 아니며, 상위기종의 카메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카메라요, 무엇보다도 손때가 묻은 소중한 카메라다. 손의 감각만으로도 착착 감기는 나의 카메라들,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나와 찰떡궁합인 이 명품들의 힘으로 앞으로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길 기대한다.
#후지파인픽스 #니콘카메라 #캐논카메라 #펜탁스 #니콘F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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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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