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남소연
한명숙 대표가 행정 경험만 있고 정치 경험이 없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박근혜 위원장은 정치 경험만 있을 뿐 행정 경험이 없다. 필자의 눈에 박 위원장은 모든 일을 정치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그가 '무서운' 것은 불리해졌을 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점에 있다. 일례로 그는 과거 이회창의 한나라당에서 갑자기 뛰쳐나가 북한에 가서 김정일을 만나고 온 일이 있다.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 알다시피 그는 18대 총선 공천에서 이른바 '친박' 인사들이 대거 탈락했을 때 이 대통령을 향해 이런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번 공천에서 자기가 탈락시킨 인사들에게는 '그분들도 새누리당의 귀중한 자산'이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그는 정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정치인'의 자격이 충분한 것 같다.
필자는 민주통합당에 비해 새누리당의 공천에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번 공천을 통해 새누리당은 공당의 모습을 포기한 것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 이번 새누리당의 공천은 처음부터 끝까지 박근혜 위원장의 대선을 위한 공정(工程)이었다.
81명의 공천이 확정된 2차 발표의 주안점은 '친이계 탈락'에 있다. 현역 의원만 하더라도 16명 탈락자 중 13명이 범 친이계로 분류될 정도다. 공천이 무난할 것으로 예상되던 현역 의원은 물론 청와대 핵심 참모까지 무더기로 떨어져 나갔으니 '친이계 학살', '피의 월요일'이라는 수사가 나올 법도 한 일이었다.
이렇게 된 것은 박 위원장이 '이명박의 흔적'을 씻어야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특유의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것은 특유의 신념이 아니라 '구태의 재연'일 따름이다.
199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은 실패한 대통령 김영삼의 흔적을 씻으려고 온갖 무리수를 감행했다. 심지어 대선 직전 대구에서 열린 당 공식 행사에서 현직 대통령의 화형식을 거행하는 엽기적인 사태까지 연출했다. 하지만 이회창은 대선에서 패배했다. 그런데 이명박은 김영삼에 비해 실패한 대통령일까, 아닐까? 박 위원장의 앞날이 어떠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대선 경쟁자 철저히 축출... 박근혜의 '대선 공정'다음으로 이번 공천의 특성은 당내 대선 경선 경쟁자를 철저히 축출했다는 점에 있다. 이번 공천에서 정몽준, 이재오 의원과 가까운 인사는 전멸 중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장 하나씩만을 살려둔 것은 나머지 계보원을 되도록 많이 자르기 위한 명분 축적용인 동시에 수장을 무력해제시키려는 지극히 정치적인 양수겸장처럼 보인다.
박근혜 위원장은 지난 번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함으로써 다 거머쥔 대권을 놓친 기억을 선명히 가지고 있다. 지금은 여론 지지율이 낮지만 정몽준과 이재오 그리고 김문수까지 합세하여 박 위원장에게 도전한다면 결과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새누리당의 공천은 반개혁성을 띤다는 점을 지적한다. 도덕성 검증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인지 의심받던 사람들이 무난히 공천되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금품 수수혐의를 받은 사람(이성헌), 수해 골프 파문의 당사자(홍문종), 심지어는 KBS 도청논란에 휩싸였던 사람(한선교)에게까지 공천을 주었다. 이 사람들이 공천을 받은 것은 박 위원장과 가깝다는 이유 말고는 없다는 점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개인의 사당(私黨)이 아니라면 이런 일만은 생기지 않았어야 했다.
덧붙이자면, 부산 사상구에 20대 여성 정치 신인을 공천한 것은 야권 유력 대선후보 문재인의 당선에 김을 빼기 위한 얕은 수로 보인다. TK의 대표적 인사 홍사덕을 대구에서 서울 종로로 옮겨 공천한 것은 정치 1번지에서 친노 정세균을 제압함으로써 박근혜가 노무현보다 우위에 서보고자 하는 욕망이 발현된 것이 아닐까? 이처럼 이번 새누리당의 공천은 시종일관 '박을 위한 행진곡'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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