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 없는 강당1960년대 중반 태안천주교회의 옛 강당(지금은 없음)에서 열린 무슨 행사 모습이다. 강당 천장에 전등이 없다. 태안에는 전기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지요하
나도 스피커 소리에 심취하곤 했습니다. 1959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누님이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가난한 집에서 한꺼번에 둘을 중학교에 보내기는 너무 벅찬 탓에 나는 중학교 진학을 1년 뒤로 미루고 1960년 한 해를 집에서 그냥 놀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무료하지는 않았습니다. 누님이 중학교 도서실에서 빌려다 주는 책을 매일 읽는 재미도 여간이 아니었고, 또 마루 끝에 앉아서 스피커 소리를 듣다 보면 금새 하루가 가곤 했습니다.
나는 임택근, 이광제, 최세훈, 박종세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누구인지 분간할 수 있었고, 성우 구민, 이창환, 주강현, 남성우, 고은정, 김소원, 임옥영 등의 목소리도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연속극 <삼별초>를 매일 들으면서 역사에 관심도 갖게 됐습니다.
유선방송사에서는 라디오 방송 대신 밤에는 계속적으로 노래 레코드를 틀어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나운서의 멘트가 없으니 처음에는 가수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함께 노래 듣기를 좋아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알려줘 고복수, 남인수, 현인, 김정구, 이난영, 황금심, 백설희 등을 알게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담가인 장소팔과 고춘자도 알게 됐습니다.
임택근 아나운서와 이광제 아나운서가 담당하는 축구 중계도 열심히 들어서 최정민, 문정식, 정순천, 차경복, 함흥철 선수 등의 이름도 내 뇌리에 명확히 입력이 됐지요.
1961년의 5.16도 스피커를 통해서 아침에 알게 됐습니다. 방에서 가족과 함께 조과(천주교 '아침기도'의 옛 이름)를 하고 나서 방송을 듣던 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군인들이 정권을 빼앗았다"라는 말씀을 하셨고, 장면 국무총리의 안전을 걱정하던 모습이 지금도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무슨 고차원적인 의식이 있어서 장면 박사의 안전을 걱정한 것이었기보다는 장면 박사가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당시 우리 집에서는 <경향신문>을 구독하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경향신문>이 천주교 재단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어려운 살림 가운데서도 <경향신문>을 구독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신문을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당시에는 신문의 인쇄 형태가 가로 아닌 세로였는데, 한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한자말은 거의 대부분 한자였습니다. 그래서 나로서는 신문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아버지가 알려주기도 하고, 어림짐작으로 때려잡기도 해 한자 공부를 제법 한 게 됐지만, 신문으로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 수 없어 스피커를 통해 듣는 라디오 방송에 열중하곤 했습니다.
나는 그때 군사정권이 내세운 '혁명 공약'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당시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혁명 공약 6개 항을 외워오라는 숙제를 내기도 했습니다. 나는 달달 외운 혁명공약 6개 항 중에서도 맨 마지막 항에 부쩍 흥미를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