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부 능선을 넘었던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간 야권연대 협상이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문제는 이 숨 고르기가 잠깐에 그칠지, 상당 기간 교착상태에 빠질지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이다.
8일 밤까지만 해도 타결이 임박한 것으로 보였던 양당 간 협상은 9일 새벽 중단됐다. 대부분의 쟁점에 합의하고도 경선 지역 선정 문제를 놓고 양당이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당 협상 대표는 이날 다시 물밑 접촉을 시작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협상 중단의 책임을 놓고 진실게임마저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의 욕심이 협상을 교착상태에 빠뜨렸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협상 초기엔 전략지역, 즉 민주당이 후보를 양보할 지역을 쟁점으로 삼아 얻어낼 것을 다 얻어내자 막판엔 다시 경선 지역을 대폭 늘려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민주 "협상 공개하고 국민 판단 받고 싶어"... 통합진보 "민주당이 번복"
민주당에 따르면 최대 12곳에서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수도권 30여 곳에서 경선을 치르기로 양당이 합의했다. 하지만 협상 타결 직전 통합진보당이 경선 지역을 수도권 60여 곳, 전국적으로는 100여 곳으로 늘려달라 요구했다고 한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통합진보당이 요구하는 양보 지역을 고심 끝에 수용하자, 협상 막판 갑자기 경선 지역을 늘리겠다고 나온 것은 협상에 임하는 도리가 아니다"라며 "상대 당 협상 대표가 당에 협상 결과를 보고하고 돌아올 때마다 요구하는 경선 지역이 늘어나는데 어떻게 정상적인 협상이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이 당직자는 "협상 과정을 있는 그대로 모두 공개하고 국민들의 판단을 받아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답답해 했다.
물론 통합진보당의 주장은 다르다. 민주당이 원래 수도권 60~70곳, 전국적으로는 90~100곳의 경선에 합의했다가 갑자기 번복했다는 것이다.
이정희 대표는 "민주당에서 보내온 문서 초안에 수도권 60~70곳, 전국적으로 90~100곳 정도 경선을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고 했고 우위영 대변인도 "상당한 의견 접근이 이뤄졌지만 8일 밤 10시쯤 민주당이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번복안을 가져왔다"고 반박했다.
쟁점된 '경선지역', 양과 질 모두 의견차
양당의 경선지역 협상이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은 양과 질에서 모두 의견차가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할 지역으로 수도권 10여 곳을 거론하고 있다. 고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부인 인재근씨가 출마하는 서울 도봉갑을 비롯해 영등포갑, 성북을, 금천, 경기 과천·의왕, 광명, 수원 장안, 이천, 여주, 인천 남동갑 등에서 만큼은 경선을 치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은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출마한 도봉갑 등 일부 지역에서는 반드시 경선을 치러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통합진보당 핵심 관계자는 "경선 쟁점 지역도 깔끔하게 정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당 양보 지역으로 확정된 경기 덕양갑(심상정), 서울 노원병(노회찬)의 경선 수용 가능성을 열어 놓고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심상정 공동대표와 노회찬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해 야권연대 협상에 필요하다면 경선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심상정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통합진보당은 지지율 격차의 불리함을 감수하고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 경선을 수용했다"며 "민주당 후보들이 뭐가 두려워서 경선을 수용할 수 없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민주 "합리적 조정안 가져와야"... 통합진보 "한명숙 결단만 남아"
양당은 현재 협상 타결의 조건으로 양보를 꼽고 있다. 문제는 서로 상대가 더 많이 양보해야 한다는 요구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양당의 후보 경쟁력이 비슷한 곳에서만 경선을 실시하자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후보간 현격한 경쟁력 차이로 경선을 해봐야 결과가 뻔한 지역에서는 굳이 힘을 뺄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통합진보당이 판을 깨려는 게 아니라면 현실 가능하고 합리적인 경선 지역 조정안을 제시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반면 통합진보당은 민주당이 수도권 60여 곳에서 경선을 치르기로 한 당초 합의한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통합진보당 핵심 당직자는 "한명숙 대표의 결단만 남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지리한 줄다리기... '국민 감동' 줄 수 있을까
양당이 지리한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야권 연대의 진정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야권연대가 양당만의 '지분 먹기' 게임으로 비쳐지면서 극적 타결을 이룬다 해도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미 총선 유권자들은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지지율 50%의 안철수가 5%의 박원순에게 한 '통 큰' 양보를 기억하고 있다.
시민사회 대표단으로 구성된 비상시국회의 대표단은 이날 오후 국회를 찾아 "양당이 오후 6시까지 협상을 타결 짓지 못하면 직접 중재안을 내겠다"고 압박했지만 저녁 7시가 넘도록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 이미 국민과 약속한 협상 타결 시한을 하루나 넘겼지만 양당 모두 "오늘 내 협상 타결을 장담할 수 없다"는 태도다.
진통 끝에 중단된 야권연대 협상이 짧은 숨고르기 후 막판 도움닫기로 멋진 피날레를 장식할지 기약 없는 시간 끌기로 초라한 야권연대로 전락할지 갈림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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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어기고 진실게임만... 야권연대 감동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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