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업체, 주인없는 집에 강제집행 공고 붙여

구럼비 바위, 용산, 북아현 문제는 현재 진행 중

등록 2012.03.12 09:15수정 2012.03.3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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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북아현 강제철거 중간’ 수요촛불문화제가 열리던 지난 7일, 북아현 1-2 구역에 사는 세입자 심씨의 집에 철거업체 직원이 문을 따고 들어와 ‘부동산 인도 강제집행 예고’장을 놓고 갔다. ⓒ 전민성


구럼비 바위, 용산, 북아현에는 ▲ 삼성과 대림이라는 건설사 ▲ 많은 불합리와 주민들의 반대에도 강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 ▲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는 것 외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그것은 바로 '현재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제주에서 정부·대림·삼성이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기 시작하던 지난 7일,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는 강제철거 중단을 요구하는 5차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그리고 촛불문화제가 진행되던 북아현 1-3구역과 접해있는 북아현 1-2구역에서는 이 구역의 철거업체 직원이 임의로 한 세입자의 집을 주인이 없는 사이 잠긴 문을 따고 들어와 '부동산 인도 강제집행 공고'를 놓고 간 일이 있었다.

4층 연립주택 지하에 살고 있는 어머니 조아무개(74)와 아들 심아무개(48)씨는 차상위계층으로 두 사람 모두 장애인이다.

몇년 전 중풍으로 중환자실에 있다 나온 어머니 조씨는 거동을 못하고, 아들 심씨는 대학졸업 직후 취업도 안 한 상태에서 당한 큰 교통사고로 공황장애를 앓아 혼자서는 버스조차 탈 수 없는 어려움을 갖고 있다. 심씨는 현재까지도 약을 복용하고 있다. 현재 식사며 생활전반을 복지관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지난 겨울 내내 철거업체 직원은 집을 방문해 '돈을 얹어 줄테니 집부터 계약을 하라'고 종용했고, 엄동설한에 집을 알아보러 돌아다녔지만 마땅한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허약한 체질의 아들은 상대적으로 몸집이 있는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어야 해서 언덕에 있는 집을 구할 수 없었고, 장애인 택시에 의지해 복지관에서 물리치료를 해야 하는 어머니는 골목 안쪽의 집도 구할 수 없었다.

임대주택을 받으려고 신청을 했었지만, 결국 받지 못했다. 수급자가 되면 임대주택 1순위가 되지만, 그것도 현재는 어렵다. 직장에서 받은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장애를 얻은 큰 아들이 수급자 신청 시 필요한 금융동의서에 서명하는 것을 극구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런데도 철거업체 직원은 "일단 나가라, 전동휠체어를 사면 되지 않느냐"는 말만 늘어놓으며 이사를 강요했다.


이제 이곳의 시공사인 'D건설'와 철거업체 'W미래로'는 명도소송을 끝내고, '합법'의 이름으로 이들을 집에서 몰아 낼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주인이 없는 사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함부로 문을 따고 들어와 '강제집행 공고'를 붙인 것이었다.

"문을 무엇으로 열었는지 모르겠는데, 오후 6시가 넘어 들어오려고 열쇠를 쓰려니까 열쇠가 잘 들어가지 않더라구요. 한두 시간 밖에서 문을 열려고 씨름을 하다가 겨우 들어왔어요."


아직도 심씨가 살고 있는 1-2구역 골목에는 교회의 목사님을 포함한 세 분의 세입자들과 7명의 집 주인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심씨는 철거업체가 우선 세입자들에 대한 강제집행을 동시에 진행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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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씨의 연립주택 입구에서 철거업체의 컨테이너 사무실을 바라 본 풍경. 기자가 집에 들어갔을 때는 없던 노란 테잎이 집을 나올 때쯤에 가로로 쳐져있다. ⓒ 전민성


심씨와 어머니가 살고 있는 연립주택은 서울역과 신촌역을 잇는 두 개의 굴다리 사이 철로 옆에 있다. 지하방에 살고 있어, 주인이 사는 옥상에는 올라가보지 못하다가 집주인과 다른 세입자들이 이사하고 나서 처음으로 이 집의 옥상에 올라가 보니 '별장이 따로 없더라'고 말한다. 옥상으로 올라가면서 멀쩡한 집들을 둘러보며 심씨가 말한다.

"이렇게 멀쩡한 집들을 보면서, 서울역에 계시는 분들이 겨울동안 만이라도 이곳에서 지낼 수 있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스름한 저녁 시간, 신촌역에서 서울역으로 향하는 열차 한 대가 전조등에 불을 켜고 달려간다. 잠시 후 서울역을 출발한 기차 한 대가 신촌역으로 달린다. 이 기차 길은 서울역과 신촌, 문산, 그리고 개성, 연백, 평양을 이어주던 기찻길이다.

굴다리 위로 철거된 집들의 콘크리트 잔해들이 보인다. 또 기찻길 건너에 아직 운영 중인 어린이집 건물도 보인다. 북아현동을 쉽게 떠날 수 없는 생명들은 노인, 실향민, 어린이, 장애인, 여성, 그리고 고양이, 강아지, 비둘기, 산새 등 수없이 많다.

심씨와 인사를 하고 헤어지며 나오는 길에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철거업체 콘테이너 사무실 근처로 걸어가고 있다. 2주 전 1-3구역 철거업체가 상가세입자 농성장 뒤 건물을 부수려고 했을 때 없어진 2층 건물에는 35년 동안 이곳에서 시계방을 하던 아저씨와 책방을 하던 아저씨의 가게가 있었다. 유난히 오전의 햇살이 따뜻했던 이 건물 2층 난간에는 언제나 비둘기들이 모여 있었고, 시계방 아저씨가 쌀을 던져주면 내려와서 먹느라 분주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지난 주 우리 동네 골목 찻길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차에 치어 죽어 있었다. 길 위에서 무언가를 먹다가 차에 친 것이었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는 고양이도, 강아지도, 비둘기도, 산새도 살 수가 없다. 구럼비 바위, 용산, 북아현은 닮은 꼴이며 또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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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씨의 집에서 북아현3구역 쪽을 바라본 풍경. 멀쩡하고 튼튼한 지은 지 얼마 안 된 연립주택들이 즐비하다. ⓒ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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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씨가 살고 있는 연립주택 옥상에서 바라 본 앞집. 왼쪽 첫 번째 연립1층에도 아직 세입자가 살고 있다. ⓒ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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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씨의 옥상에서 바라 본 왼쪽 앞 건물. ‘감나무집’이라고 불리는 이 집에는 아직 할아버지, 할머니, 5살·초등학생·중학생 손자들이 함께 살고 있다. ⓒ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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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북아현3구역의 집들이 보이고, 가깝게 유리창이 뜯긴 1-2구역의 건물들이 보인다. 이 지역에는 아직 자동차정비업체가 영업을 하고 있다. ⓒ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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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건너편 1-2구역의 건물들. 멀쩡하고 튼튼한 집들이 즐비하다. 급하게 이사를 하느라 버리고 간 장롱이며 가구들이 건물 안에 있다. ⓒ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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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역으로 이어진 굴다리의 모습. 굴다리 위의 집들은 이미 부서져 콘크리트 잔해가 되었지만, 아직 오른편의 집들은 멀쩡하다. 아직 운영 중인 어린이집도 보인다. (드문드문 아직 창문이 달린 집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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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씨가 살고 있는 연립주택 2층 방 벽에 학생의 필체인 듯 보이는 글귀가 남아있다. ⓒ 전민성


#북아현 #뉴타운 #재개발 #구럼비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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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동네의 성미산이 벌목되는 것을 목격하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이주노동자방송국 설립에 참여한 후 3년간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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