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문화마당에서 열린 '방송3사(MBC, KBS, YTN) 공동파업 집회'에서 MBC노조원들이 "MBC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우성
언론계가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다. KBS·MBC·YTN은 동시 파업을 했고, <연합뉴스>는 총파업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모두 이명박 정권이 직접 심은 경영체제 탓에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망가졌다고 일선 기자, 피디들이 외치고 있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신문사 소유구조 탓에 언론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해 온 <부산일보>·<국민일보>의 노조원들은 실체가 분명하지 않는 '유령같은 사주'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이러한 싸움 과정에서 나오는 각사 노동조합의 특보를 보면, 지난 4년 동안 언론사라고 하는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가 자세하게 나온다. 그 내용들을 보면 도대체 이런 조직을 언론사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을 정도의 온갖 해괴한 일들이 있었다.
참고로 독자 여러분들은
KBS 새노조,
MBC 노조,
YTN 노조,
연합뉴스 노조,
국민일보 노조 부산일보노조 (부산일보 노조 홈피는 최근 해킹을 당해 카페를 이용중이라고 한다)사이트를 방문하여 그곳에 쌓여있는 자료들을 잘 점검해 보기 바란다. '즐겨찾기'로 지정해서 매일 들러 보면 이 땅의 언론현실이 어떤지 아주 분명한 그림이 보인다. 이보다 더 좋은 '언론공부'가 없다. 한편으로 처절하고 슬픈 이야기들인데, 조금 달리 보면 '해괴하다'는 측면에서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갖가지 동영상 볼거리도 많다.
한 가지 예만 들겠다. MBC·KBS·YTN에 이어 저항에 가담하기 시작한 연합뉴스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준비하면서 발행한 노보 특보(3월 9일자)에는 '해괴한' 일들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라는 노보 특보의 제목부터가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져 왔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데, 특보에 담긴 내용들은 이 제목보다 훨씬 직설적이고 괴이하다. 그 가운데는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의 '미친놈' 발언과 관련된 내용도 있다.
"'연합 찌라시' 기자로 들어온 게 아니다"박정찬 사장이 취임한 직후인 2009년 4월 말,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 간 몸싸움을 하는 대치상황이 벌어졌을 때 일이다. 당시 비준안 처리를 기다리며 국회 외통위 회의장에 나와있던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외통위에 나타난 민주당 천정배 의원을 보면서 "왜 들어와 있어. 미친 놈"이라고 옆사람에게 말했다.
유 장관의 이 말은 국회 내부방송으로 생중계되었는데, 몸싸움 소동으로 묻혀버려 자세히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기 어려운 톤이었다. 연합뉴스 기자는 이 대목을 정확하게 확인한 뒤 단독기사로 처리했다. 그러나 기사는 나가지 않고 죽어버렸다. 엿새 뒤 다른 언론사에서 대신 이를 '특종'했다. 연합뉴스는 '특종'을 하고도 '물을 먹은 신세'가 되었다. 이 사건 뒤 박정찬 사장은 유명환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연합뉴스의 위력을 알겠냐"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연합뉴스 노보 특보는 전하면서 "박 사장은 경위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정권 또는 그 정권 인사들의 이해관계를 먼저 생각하게 되면, 언론의 존재이유인 '사실보도'와 '권력 감시 비판' 기능은 발 붙일 자리가 없다. 이런 사실은 연합뉴스 노동조합에서 2010년 9월 말 조합원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확인된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연합뉴스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가"는 질문에 전체 조합원 가운데 65.9%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답했으며, 조합원 중 기자직만 따로 떼어 보니, "공정하지 못하다"는 응답이 무려 70.8%로 나왔다.
그리고 "연합뉴스 보도가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가 50.9%, "매우 그렇지 못하다" 36.5%로 모두 87.4%가 연합뉴스 보도가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답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연합뉴스 기자들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그 참담한 심정의 일단이 지난 9일 저녁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노조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드러났다. 이 자리에서 연합뉴스의 한 막내기자는 "내 기사 댓글에 '연합 찌라시'라는 표현이 있었다"며 "나는 연합 찌라시 기자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연합뉴스의 기자로 들어왔다. 다시는 연합 찌라시라는 말을 안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의 선임급 기자도 "이 추위에 여기 있는 이유는 쪽팔리고 힘들어서일 것"이라며 "기사 쓰고 '찌라시' 기자 소리를 들어야 하는 현실이 쪽팔렸고 기사를 써놓고도 자신의 이름을 쓰지 못하는 현실이 쪽팔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연합뉴스에서 무슨 일이 빚어졌는지 기자들의 참담한 심정이 담긴 고백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MBC와 KBS 고참 사원들의 고언제작거부와 파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MBC의 경우, 20년차 이상 되는 고참 사원들의 성명서(2월 21일)를 보면 MBC가 얼마나 망가졌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지난 2년 김재철 사장의 재임기간은 MBC에 유례없었던 갈등과 추락의 시간이었다…. 내곡동 사저 축소보도, 서울시장 선거 편파보도, 4대강 등 현 정부 주요 실책에 대한 비판 외면 등 이루 열거하기 힘든 공정성 침해논란이 있었고, 그 결과 MBC의 신뢰도는 현저히 저하됐다. 과거에도 편파보도 논란이 있었지만 그 질과 양 면에서 김재철 사장 재임기간과 비교할 만한 사례는 없었다고 우리는 단언한다. 또한 저항하는 구성원들을 징계와 인사발령으로 억압하고, 동조하는 일부 구성원들에게는 납득하기 힘든 정도의 즉흥적 시혜를 남발하는 비민주적인 사내 통치가 이뤄졌다. 그 결과 MBC의 자랑이었던 자율적, 창의적 문화는 사라지고 윗사람 눈치만 보는 해바라기 문화가 횡행해왔다. 따라서 김 사장 및 경영진이 자신들의 책임은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고 후배들의 항거를 탄압하는 것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우리는 김재철 사장이 92년 파업 당시 노조원으로서 파업특보를 돌리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현 경영진도 여러 차례의 소위 불법 파업에 함께 참여했었다. 그 때처럼 후배들도 국민을 위해 좋은 방송을 하고 싶다는 한 가지 염원으로 파업이라는 힘든 길을 가고 있다고 우리는 판단한다….김재철 사장에게 간곡히 요청한다. 더 이상의 파행은 김재철 사장이 MBC를 사상 최악의 파국으로 이끌었다는 역사적 기록을 남길 것이다. 이제 김재철 사장이 해야 할 마지막 일은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다. KBS에서도 고참 피디 44명이 'KBS 바로 세우기'에 나서며'라는 성명(3월 5일)을 발표하고 '김인규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들의 성명서에도 지난 4년의 세월이 어떠했는지가 나온다.
파업과 제작거부에 대한 후배들의 결의가 KBS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서슬 퍼런 징계와 무임금을 앞세운 회사의 회유에 오히려 당당한 이들의 몸짓은 지난 4년간 기자와 피디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못한 부끄러움을 떨치고 일어나 좋은 뉴스와 프로그램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서려는 처절한 몸부림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돌아보면 대통령 특보출신이 KBS 수장이 된 후,KBS에는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뉴스와 프로그램은 사라지고 일방적으로 정권을 홍보하는 관제프로그램들이 넘쳐났습니다.상식적으로 납득키 어려운 측근인사와 회사운영으로 기강은 무너지고 소통은 단절되었으며 상호불신과 허무주의의 상처가 너무나 깊습니다.여기에 도청의혹에 이르기까지 안팎으로 망신창이가 된 KBS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나꼼수><뉴스타파><제대로 된 뉴스>같은 형식과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공영방송이 제역할을 못해 생겨난 오늘 우리의 슬픈 자화상입니다.이들이 상징하듯 2012년 올해 혁신과 변화,새로운 가치에 대한 폭발적인 국민들의 욕구와 목소리를 우리의 뉴스와 프로그램에 담아내지 못한다면 더이상 공영방송 KBS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오늘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뉴스,자율과 창의가 담보된 좋은 프로그램 제작이 KBS와 우리 구성원들의 존재이유라는 분명한 목표를 다시 세웁니다.그리고 KBS를 다시 바로 세우는 대장정의 첫단추가 김인규씨의 퇴진임을 천명하며 그가 더이상 KBS를 망치지 말고 물러날 것을 요구합니다.YTN 해고자들의 '모진 세월'8일부터 사흘동안 KBS, MBC와 함께 파업에 동참한 YTN에는 이 정권 출범 뒤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는 투쟁 과정에서 노종면 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6명의 기자가 해직을 당한 '모진 아픔'이 있다.
8일 오전 있었던 YTN 노조 총파업 출정식에는 200여 명의 노조원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 해직자들과 함께 참석한 노종면 전 위원장은 파업 현장에서 남다른 감회를 보였다고 노보 특보는 전했다. 3년 전인 2009년 3월 파업 당시 그는 파업 바로 전날 체포·구속되어 파업 현장을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그랬기에 그는 이날 "2009년 당시 투쟁을 제대로 끝내지 못한 이유가 못난 위원장이 구속됐기 때문이 아니었는지, 지금도 제 어깨의 짐과 멍에로 남아있다. (그러기에 지금) 다시 일어나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이번 싸움은 누가 적이고 동지인지 가려 미래의 YTN을 짊어지고 나아갈 주인을 명확히 하는 투쟁"이라고 밝혔다.
이날 파업에 참여한 공채 12기 막내조합원들은 파업투쟁에 처음으로 참석한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김도원 조합원은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싸우기 때문에 이긴다. 이기는 그날까지 선배들과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KBS·MBC·YTN·연합뉴스의 싸움 대상은 정권이고, 그 정권이 심은 사장들, 그러니까 <한겨레21>의 표현을 빌리면 '언론계 친MB '빅4' 사장님들'이다. "정권과 언론계 노동자들 사이에 '3월 대전'이 임박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모두 정권과 밀착한 경영진이 기자와 PD들의 입에 재갈을 물린 것이 화근이 됐다. 가장 큰 문제는 배후의 청와대이고, 그 다음 문제는 정권의 입맛에 맞춰 뉴스를 '요리'한 사장님들이다. 말하자면, 언론계 친MB '빅4'다"(3월12일자 901호).
부산일보와 국민일보의 싸움이에 비해 부산일보와 국민일보의 싸움 대상은 정권이 아니라 실체가 분명하지 않는 유령같은 존재의 사주다. 두 신문사 노조의 힘겨운 싸움을 '나꼼수'의 김용민 시사평론가가 <한겨레> 칼럼 '조용기와 박근혜'에서 잘 정리했다.
1988년에 창간한 이 신문(국민일보)의 종잣돈은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들의 헌금이었다. 그러나 이 신문의 실질적 주인은 이 교회 조용기 원로목사로 정평 났다. 그도 그럴 것이 동생, 큰아들, 사돈, 작은아들이 경영자로 나선 기간을 비율로 환산했더니 창간 이래 85%라고 한다. 나머지 기간 사주 역시 조 목사의 신임을 득했던 이들이다. 그런데 조 목사나 그 가족의 국민일보 지분은 0%이다.결국 교회가 조 목사고, 조 목사 돈이 곧 교회 돈이라는 의구심을 떨치기 힘들다. 물론 국민일보 역사의 85%를 장악했던 이들이 좋은 경영 실적을 냈다면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조 목사와 아내 김성혜 한세대 총장, 희준, 민제, 승제 등 일가 5명 중 막내 승제를 뺀 4명은 개인 비리와 관련해 재판을 받거나 검찰과 경찰에서 각자 조사를 받고 있는 형편이다. 혐의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이나 횡령 같은 경제범죄들이다. 이 신문의 한 기자는 "'사주' 일가가 이 꼴인데, 누가 누구보고 '똑바로 살라' 이야기할 수 있겠나"라며 탄식했다. 노조는 조 목사 일가에게 국민일보를 떠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실 조 목사가 떠나면 상황은 심각하다. 주요 스폰서 중 하나인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상시적·공식적 지원이 끊기게 될 공산이 크니까. 국민일보는 독자를 상대로 자립 경영을 해야 한다. 노조원들은 어렵지만 그 길을 택하겠다고 분연히 나섰다. 조 목사가 한국 개신교계에서 차지하는 상징성과 위상을 고려한다면 종국에 개신교인을 주 독자층으로 삼아야 하는 국민일보로서는 버거운 싸움을 벌이는 셈이다.부산일보 사례도 주목해야 한다. 이 신문은 지방지 중 가장 큰 규모와 발행호수를 자랑한다. 그런데 박정희의 '정', 육영수의 '수'를 딴 정수장학회의 지분이 100%다. 지금은 자신과 무관하다지만 부산일보 구성원 대부분은 '실소유주'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꼽는다. "(계속 사원들이 투쟁하면) 부산일보를 팔아버리겠다"는 상식 밖 발언을 하고 있는 사주 최필립 이사장은 박 위원장의 30년 넘는 측근. 이 신문이 성역으로 삼는 대상이 박 위원장임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이들은 구성원들로부터 신문사 경영에서 손 떼라고 요구받고 있다. 그리고 용기 있는 데스크의 주도로 정수장학회와의 일전을 지면 안팎에서 벌이고 있다. 방송 3사가 1년 뒤면 정치적 식물이 되는 이명박과 싸운다면, 부산일보는 유력한 대권주자로 차후 5년의 이 나라를 거머쥘지 모를 박근혜와 싸우는 셈이다.지금 벌어지는 언론사들의 싸움은 권력(정치권력과 그 친위대 또는 사주 권력)에 의해 침탈당한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되찾자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적지 않은 국민들이 과거와는 달리 이들 언론사의 '독립언론 싸움'을 조금은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인식의 근저에는 '오해'도 상당부분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가령 MBC의 경우, 종종 듣는 이야기가 "그동안은 가만 있다가 정권 말기인 지금에 와서"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사실 MBC는 이 정권 들어서만 다섯 번째 파업에 들어갔다. KBS 경우에도 "과거 정연주 사장 쫓아내려고 안달했던 노조가 지금 와서 무슨"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나를 쫓아내기 위해 한나라당, 조중동과 함께 강고한 삼각동맹을 맺었던 KBS 노조는 기술직종 중심의 '옛 노조'이고, 지금 파업 중인 KBS '새 노조'는 '옛 노조'의 수구적 행태를 비판하면서 분리 독립한, 젊은 기자 피디 중심의 노조라는 사실을 아직도 잘 모르는 국민이 적지 않다.
노조와 언론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다면 국민의 지지 폭도 넓어질 터다. 그래서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지금 열심히 싸우는 언론사 노동조합의 웹 사이트를 자주 찾아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동영상 볼거리와 그곳 아니면 들어볼 수 없는 재미있는 '괴이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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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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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했어? 그거 빼'... 기자들은 참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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