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택시 기사 "구럼비 상황 답답해서 나왔어요"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앞에서 1인 시위 한 택시 노동자 유종천씨

등록 2012.03.15 11:27수정 2012.03.1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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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절차도, 주민 동의도 없이 밀어붙이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사업은 평범한 한 택시노동자마저 항의의 뜻으로 거리로 나와 1인 시위를 갖게 하고 있다. ⓒ 이국언


"답답하기만 하고, 그냥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한 차례 꽃샘추위가 가신 지난 14일 오후 광주 종합버스터미널 앞. 폭력이 난무하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광주 종합버스터미널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 지 이날로 7일째, 영업용 택시 기사 유종천(43)씨가 한 말이다.

강정마을 주민의 울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야음을 틈타 구럼비 바위 폭파계획이 주도면밀하게 진행되고 있을 그 시각, 그 역시 밤새 잠을 뒤척여야 했다. 그가 1인 시위를 시작한 것은 구럼비 바위가 야만의 손에 의해 마침내 폭파되고 사지가 들린 주민이 연행되기 시작한 그날 오후부터다. 누가 권한 것도, 주변 지인과 상의할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먼저 나서면 누군가 뒤따라 줄 것으로 생각한 것 역시 아니었다. 

한때 목사를 꿈꾸던 신학도였던 그가 택시 운전대를 잡은 지는 7년째. 순전히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회원으로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앞 1인 시위에 몇 차례 같이 동석해 본 것 이외에 특별히 사회적 문제로 누구 앞에 나서 본 경험도 없는 그가 이렇게 남들 앞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냥 너무 답답했어요. 작년 가을 무렵 강정마을에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어요. 다른 것 바라는 것도 않아요. 그저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란 순박한 주민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이 국책 사업이라는 이유 하나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잖아요? 국가가 나서서 순박한 사람들을 무더기로 범죄자로 만들고 있는 꼴인데,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었죠."

1인 시위 마치고 귀가하는 길, 홍보 패널 들고 버스타면 홍보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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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부터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는 택시노동자 유종천씨. ⓒ 이국언

그는 어차피 택시에 메인 몸이었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 1인 시위였다. 영업용 택시는 차량 1대를 2명의 기사가 번갈아 12시간씩 교대하는 방식이다. 오전 반은 새벽 5시, 오후 반은 오후 5시에 교대하는 시간을 감안한 것이 오후 5시 30분~오후 6시까지의 1인 시위였다. 새벽 5시부터 운전대를 잡고 하루하루 사납금 맞추기도 버거운 사정을 감안하면 비록 30분에 불과한 것이지만 혼자인 그로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


"홍보 패널은 알고 있는 형님한테 부탁했어요. 첫날은 한 번도 안 해본 일이라 여간 쑥스럽고 어색하더군요. 시작하기 전에 혼자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죠."

1인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 날마다 홍보 패널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불편한 일이다.

"집에까지 가려면 1시간 정도 시내버스를 타야 해요. 불편한 것도 있는데, 어차피 1인 시위를 통해 '이런 일도 있다'고 알리려고 한 것이었으니까. 괜찮아요. 시내버스는 손님들이 많아 그만큼 홍보 효과가 있다고 봐야죠."

그런 그에게 호의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바라고 한 것도 애초 아니지만 1주일 동안 어느 누구로부터 함께해 보자는 전화 한 통 역시 없었다. 더러 주변사람으로부터는 '혼자, 용 써봐야 바뀌겠느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농담이지만 '미친놈'이라는 핀잔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답답했죠. 물론 이것으로 큰 흐름이 쉽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우리가 모르고 지나가는 사이에 한쪽에서는 이런 문제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죠. 혹시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모이다 보면 또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연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한미 FTA 문제로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더 그것 때문일까. '그냥 답답해서' 나왔다는 내세울 것도 없고 치장도 없는 그의 그 말 한마디가 더 진솔하게 들려오는 것은 단순히 나만의 기우일까. 

1인 시위를 끝으로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친 그는 다시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총총히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 갔다.

덧붙이는 글 | 이국언 기자는'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1인 시위에 함께하실 분은 유종천 010-5532-6021 매일 오후 5:30분~6:00시.


덧붙이는 글 이국언 기자는'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1인 시위에 함께하실 분은 유종천 010-5532-6021 매일 오후 5:30분~6:00시.
#근로정신대 #강정 #구럼비 #유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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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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