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게 없어도 괜찮고, 가난해도 좋다

34년 만에 만난 친구..."부디 건강해라"

등록 2012.03.15 11:49수정 2012.03.1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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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한 지 달포 만에 입대한 친구가 있습니다. 같은 과의 친구들은 겨우 얼굴을 익힌 그 친구가 입대하기 며칠 전 종로의 한식당을 빌려 환송회를 했습니다. 입시를 위해 욕구를 유보한 시간들, 입학하자마자 다시 군입대라는 상황을 앞에 두고 그날 밤 그는 술로 스스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종로 대로에 널브러진 채로 몸을 가눌 수 없는 그를 새벽까지 뒷수습한 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복학과 졸업은 모두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함께 수업을 받은 것은 입대 전 달포가 끝이었습니다.

종로에서의 대취했던 밤의 기억을 잊을 수 없었던 그 친구는 34년 만에 그 동기의 이름을 검색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모티프원의 블로그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34년 전 기억속의 모습과 그 블로그속 최근의 사진을 비교해보며 바로 그가 찾던 그 사람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는 내게 그 기억의 단서들을 담은 쪽지와 메일을 보냈고 나는 그가 찾는 동기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이 둘은 모두 내 동기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11일 일요일, 그간 우리가 만나고 있는 동기들과 더불어 모티프원에서 긴급히 상봉했다. 달포 만에 입대했던 병희가 천안에서 오고, 34년 전 종로바닥에서 만취한 그를 뒷수습했던 상준이가 분당에서 왔습니다. 우리가 한해도 걸러지 않고 만나온 또 다른 동기 창완이와 선엽이가 서울에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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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만난 동기인 병희와 병희로 인해 다시 불쑥 모습을 드러낸 선엽, 상준, 창완이. ⓒ 이안수


병희와 손 한번 잡는 것만으로도 금세 34년의 간극은 사라졌습니다.

서로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30명의 같은 과의 동창 중에 연락이 닿는 친구가 10여 명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 중에 두 친구는 척추암과 간암으로 세상을 떠 살아서는 더 이상 대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본인의 34년간의 역정과 부모님들의 건강과 자녀들의 성장을 궁금해 했습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의 색깔이 검은 것을 수상해했습니다. 모두가 염색이었습니다.

여전히 한 공공기간의 간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때 작곡도 하고 가수의 음반에 그의 곡이 담기기도 했던 오디오 마니어인 선엽이가 말했습니다.

"집에 쌓아 놓은 스피커를 처가 다 내버렸어. 좋은 소리가 그리울 때는 오디오매장의 청음실로 가곤 하는데 요즘은 고음부가 잘 들리지 않아. 사람의 귀도 고음부부터 난청이 온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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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들의 검은 머리는 모두 염색이다. ⓒ 이안수


시중은행의 지점장을 끝으로 명예퇴직하고 2년간의 시한부로 관계회사에 적을 두고 있는 상준이가 말했습니다.

"예전엔 옷을 대충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참 소박하신 분'이라고 말했어. 지금은 더 옷을 갖추어 입고 나갈 수밖에 없어. 예전처럼 후줄근하게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자꾸 불쌍하게 본다니까."

대학 때 암실 작업까지 함께했던 선엽이가 그때 쓰던 아날로그 카메라를 어찌할까 물었습니다. 다시 쓸 때 있을까 의문스러운 어조로... 제가 그 말을 받았습니다.

"그대로 두어라. 아무리 디지털이 발달해도 아날로그의 그 맛을 어찌 살릴 수 있을까. 그것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날 테고 필름의 생산과 인화도 계속 가능하게 될 것이다. 네가 은퇴하면 그 카메라를 다시 목에 메고 나가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예전 블랙디스크가 CD로 바뀐 때의 기억이 새롭다. 거의 1년 만에 모든 LP가 CD로 바뀌었지. 이제는 CD의 생산도 중단될까 싶네. 모두가 MP3의 저장매체를 사용하는데 10여곡의 CD가 견딜까. 하지만 LP의 맛을 잊지 못한 사람들이 생겨나고 다시 LP의 취입도 생겨나고 있다네. 사람의 본능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를 향하는 것 같아."

현재의 대통령이 난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창환이는 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일찍 회사를 등졌다. 그가 원하던 판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일찍 자영업의 길을 갔다. 그 친구가 물었다.

"앞으로는 죽기가 힘든데 너희들은 은퇴 후 무엇을 할래."

상준이가 답했다.

"내게는 종종 전화가 온다. 간부자리를 줄 테니 오라고. 그런데 나는 모두 거절하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나의 인맥과 퇴직금이거든. 그들은 몇 달간 내게 높은 월급을 줄 거야. 그렇지만 최종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거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래서 상준이는 자신의 경험만을 원하고 몸으로만 일할 곳이 있다면 몇 년 더 일할 용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병희는 영어교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10년 전까지 그가 다녔던 직장보다 훨씬 만족하고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상준이는 3년간 교직과목의 학점을 다 이수하고도 교생실습을 나가지 않아 '영어과목 2급 정교사자격증'을 받지 못한 것을 후회스러워했습니다.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우리의 만남을 끝내야 했습니다. 월요일날의 수업을 위해 천안까지 되돌아가야하는 병희의 밤운전을 고려해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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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환이는 방명록이 이렇게 글을 남겼다. "봄이 가까운 길목인데 오늘 쌀쌀하네요. 그래도 봄이 올 거니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어 좋습니다." 친구들이 하나 둘 은퇴하는 시점에 그는 오히려 희망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희망임이 분명합니다. ⓒ 이안수


"친구야, 부디 건강해라!"

이별의 공통된 인사였습니다. 헤어지면서도 친구들 서로 간에 당부하는 말은 모두 건강이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건강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자신의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통해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병희가 상준이를 찾는 한통의 쪽지로부터 시작된 이 만남은 정말 예외적인 것이었습니다. 매년 연말이 오기 전에 한번, 혹은 집안의 대소사에 한 두 번 등, 일 년에 두세 번씩 꼭 만나온 우리의 관례에 비추어서도 말입니다.

병희가 34년 전의 상준이를 갑자기 찾은 것이나 우리가 점점 LP의 소리를 그리워하는 것이나 같은 욕구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출발점을 그리워하는 것은 연어만이 아니니까요.

밤 11시 23분으로 찍힌 시간에 병희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좀 더 아는 게 없어도 괜찮고 좀 더 가난해도 좋다. 그게 동창이란건가 보다. 잘 도착했음. 고마우이_병희"

설렘으로 30년 넘게 멈춰졌던 시간을 잇고, 밤길에 차를 몰아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야 집에 당도한 병희의 무사도착을 알리는 배려가 정말이지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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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무사도착을 알리는 병희의 문자메시지 ⓒ 이안수


"그러니까 동창은 추운 날의 난로 같다는 생각이 드네. 먼 길 마다하지 않은 자네 발길 고마우이! 부디 건강하게! _ 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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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준이가 남긴 메시지 ⓒ 이안수


꽃샘바람부는 봄날
오래된 벗들과의 만남.

세월이 켜켜이 쌓여
정담마저 새롭다.

재회 기약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 자주들
건강하게 만나길...

2012. 3. 11.
봄날...

병희. 창환. 선엽. 안수.
한상준.

덧붙이는 글 | 모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덧붙이는 글 모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동기 #병희 #상준 #창완 #선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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